#첫문장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할머니 자신이나 자신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다정한 분이셨다. 이런 점이 할머니의 눈길 속에 미소로 어우러졌고,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과는 달리 자신에 대해서만 냉소적이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눈길로 열렬히 애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이 눈으로 키스하셨다. - 31쪽


비겁함에 있어서는 이미 어른이었던 나는, 고통과 불의에 처했을 때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면 하는 식으로,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터뜨리기 위해 지붕 밑 공부방 옆에 있는 아이리스 꽃 향기를 풍기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바깥 벽돌 틈 사이로 나온 야생 까막까치밥 나무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꽃핀 가지를 내뻗고 있어 향기로운 방이었다. 보다 특이하고도 속된 용도로 쓰이는 이 방은 낮에는 루생빌르팽 성탑까지도 내다보여 오랫동안 내 유일한 은신처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곳만이 독서, 눈물, 쾌락같이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을 요구하는 내 탐닉이 시작될 때마다 내가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32쪽

* 주) 이 곳은 화장실로, 어린 마르셀이 자위 행위를 통해 처음 성에 눈뜨는 곳이다.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관념들이 그 사람의 두 뺨을 완벽하게 부풀리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콧날을 정확하게 그려 내고, 목소리 울림에 마치 일종의 투명한 봉투처럼 다양한 음색을 부여하여, 우리가 그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 관념들인 것이다. -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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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 출생

아드리앵 프루스트(부) : 파리 의과대학 교수
잔 베유(모) : 부유한 유대인 증권업자 딸

1909년(38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
- 여러 출판사 거절 후 자비로 출간

1919년(48세)
-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콩쿠르상 수상

1920년(49세)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

1922년(51세)
- 기관지염 악화, 폐렴으로 사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사후 5년만에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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