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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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실제로 스님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는 광덕사에서 내 멋대로 머리를 깎고, 스님옷을 입고 스님생활을 시작했어요.- 18~20쪽



막연하지만 그 의미가 통달케 되면서 펼쳐지는 광막한 사유의 세계, 전 우주가 나의 의식권 내에서 기발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나는 정말 무지막지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 의미가 짚어지는 순간, 나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나의 정신세계에 던져진 미증유의파문이었습니다.(...)
저의 반야심경에 대한 최초의 느낌은 50년간 저를 지배한 학문적 탐구보다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것이었지요.- 20~21쪽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한,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 아니 심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태산 같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의 대오였지요. 제도화 된 종교의 규범은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라는 것! 껍데기는 가라!
나는 그 체험을 통하여 목사의 옷도 벗었고 승려의 옷도 벗었습니다. 그리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27쪽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 68쪽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짓고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또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83쪽



그리고는 다음에 경허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본방 강주스팀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듯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나무는 삐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96쪽



선이나 삼매니 요가니 하는 말들이 뭐 대단히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신집중‘ 정도의 아주 비근한 인도말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죠. -116쪽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자각의 종교이지 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기의 구제만에 전심하여 타인의 구제를 등한시하는 소승의 종교가 아닙니다. 철저히 구도의 과정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177쪽



대승불교는 일체 재가자와 출가자의 구분이 없는, 양자가 일관되는 체제와 경지에서 출발한 새로운 종교운동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비구승가를 특별한 권위체로 인정하는 모든 체제는 사실 소승이지 대승이 아닙니다. 비구는 빌어먹기만 할 뿐,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비구는 돈, 권력, 절깐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177쪽



반야심경의 전체 주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설법의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202쪽



존경스러운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1927~2001:동경대학에서 화엄학을 전공하고 동경대학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뭐 별것이겄냐, 바로 너 자신이다! 네가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으면 이 경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야심경의 소리는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 205쪽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도 뭘 모르는 자들이 그렇게 ‘안다고‘ 떠들어대는 데 있습니다.
반야는 앎을 버림으로써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얻음, 즉 ˝득˝이라 하는 것도 인간이 반야를 통해 뭘 자꾸만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반야를 통해서는 ˝얻는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지는 것도 없고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요. <논어>에도 공자말씀에 이런 말이 있어요 ; ˝사람이 늙어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뭘 자꾸만 얻어야 한다고 욕심내는 것이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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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되어 반야심경을 몸으로 체득, 오독송을 7글자로 남기고 (˝나는 좆도 아니다˝), 사도 바울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로마서경해를 편찬하고, 이 두 종교의 근원과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철학에 매진해온 도올.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며 지혜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이념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반야의 부정‘을 평생 실천해온 그의 단단함과 유연함이 존경스럽다.

<반야심경>하면 일반인뿐만 아니라 타종교를 믿는 신앙인도 모르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경전이지만 260글자에 온 우주가 담겨있을 줄은 몰랐다.
한 글자 한글자 어원과 뜻에 쉽게 다가서고 수많은 문학과 철학에서 다룬 인간의 삶과 죽음의 덧없음을 되돌아볼 수 있게끔 도올은 역시 영리하게 반야심경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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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국민 모두에게 방영된 내용을 가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에게 고소당하여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고 살아온 도올 선생이 겪었을 그 번거로운 프로세스에 한없는 모멸감과 배신감, 그리고 울분의 심사에 대해 팬으로써 분노하고 허탈감을 느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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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1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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