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국가는 소중한 공유 신체를 하나 잃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지어야 했다. 그 죽음에 진짜로 책임이 있는 자가.(83) "


 '네가 있는 요일'은 정말 독특하다. 박소영 작가가 만들어 낸 '인간 7부제'의 세계는 놀랍도록 신선하고 또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때부터 두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나는 어떤 요일의 사람이 될 것인가이다. 일주일에 하루만 선택해서 현실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요일을 고르고 싶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요일의 사람들에 대해 의심했다. 신체를 공유한다면, 누군가는 그 신체를 아낄 것이고, 누군가는 관심을 잃을 것이고, 누군가는 욕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낭비할 것이고, 누군가는 못견뎌 할 것이고, 누군가는 훼손할 것이고 결국 누군가는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사건은 일어난다.  


 " 호라 넌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거 같아?

 언니는?

 음, 그날 그 여자 굉장히 행복해 보였잖아. 곧 보디메이트를 죽일 사람이 그렇게 신나 있었다는 건, 믿고 싶지 않긴 해. 

 원수를 죽이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

 복수라. 그럼 죽은 여자가 나쁜 사람이었던 거네?

 글쎄 그건 모르지. (272) "


 화인이 왜 수인을 없애려했을까! 화인인 지나의 메시지는 다정해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수인 울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억울한 자신의 죽음이 계획 살인이었음을 밝히려 노력하는 울림의 여정은 김달과 젤리, 최사장과 함께 여울시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큰 흐름을 타게 된다. 가진 것이 없다면 자신의 몸마저 포기해야 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세계에서 이들이 얻게 되는 결말은 무엇일까. 대체 지나는 왜 울림을 죽이려 한 것일까. 과거로부터 얽혀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무재와 강이룬의 정체가 드러나며 풀려간다. 결말이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권선징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7부제 세계가 주는 갑갑함과 섬뜩함은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 "인류가 번식해 온 이래로, 하늘이 감동할 만큼 헌신적이고 자식밖에 모르는 부모조차 아이의 동의를 구한 뒤에 아이를 낳는 경우는 없어. 너도 나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니잖아. 그저 우릴 낳은 이들의 결정이었어. 그중에 이기적이지 않은 결정이 어디 있는데? 나를 닮은 작은 존재를 낳아 무한한 사랑을 줘야지,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싶다, 뭐 이런 결심은 덜 이기적인 거야?"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은 존재해."(57) "


 독특한 상상의 세계는 차가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출생 감소에 대한 문제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기로 하는 것도, 낳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이기적인 결정이 되는 현실을 나타낸 부분이었다. 예전에 처음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요즘은 그리 충격적인 생각이 아닐 것이다. 뭐가 더 옳고 그르다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씁쓸하다. 이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여 공멸을 막기 위해 인구 수를 조절하기로 한 설정은 지금껏 외면하고 있는 세계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든 현실과 다름없다. 


 "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 남편이 커다란 꽃다발을 등 뒤에 숨겨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남편과 아이가 똑 닮은 웃음을 지을 때, 여자는 그 순간을 영원히 저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즉시 여자의 왼쪽 눈에 설치된 렌즈가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여자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눌러 그날 일어난 행복을 되감아 보다 스르륵 잠에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이 왜 불법일까, 하는 생각이 깨진 건 딸 때문이었다.(141) " 


 이 부분은 가끔 혼자 상상했던 일이 표현되어 있어서 신기하고 반가워서 옮겼다.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에도 영화나 티비처럼 배경 음악이 입혀지고 촬영되듯 저장되어서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나도 눈에 렌즈를 넣는 시술이 있다면 받을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순간, 보고 싶은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저장해서 간직할 수 있다니 한쪽 눈알이 빨갛게 빛나는 부작용 쯤이야 어떠랴.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신작을 읽고 있는데도 박소영 작가의 다음이 자꾸만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해 낸다니. 벌써 영상으로도 보고 싶다. 영화나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잘 만들어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요일을 선택할까 궁금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더구스의 노래가 떠올랐다. 월요일의 아이는 예쁘고 다정하고, 화요일의 아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열정적이고, 수요일의 아이는 호기심과 재능이 많고, 먼 길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는 낙천적이고, 매력적인 금요일의 아이는 예술에 재능이 많고, 토요일의 아이는 불가능에 도전하여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당신은 어떤 요일의 사람일까. 어떤 요일의 당신이든 매일이 충실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돌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달면 어떻겠습니까?"

 "매, 매달아? .......뭘?"

 "사형숩니다." (11) "


 솔직히 무슨 내용일지 감도 잘 오지 않는, 제목이었다.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죽게 된 마당에 뭐가 맛있을까 싶기도 하고, 사형수가 형 집행 전에 먹게 된다는 마지막 식사 레시피가 아니라, 그 레시피가 아니라, '집행'에 대한 레시피일지도 몰라 싶어지니 음모론도 떠오른다. 누구하나 요리해서 보내게 되는 소설인가. 감방에 들어간 사형수의 '슬기로운 감방생활' 얘기만 읽게 될지도 모르거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에 대한 신파 가득한 '감동실화'를 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조금 웃긴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초반부터 얄팍한 나의 웃음취향에 걸린다.


  " "그럼, 뭐...... 괜찮은 거 아니오?" 대통령은 어쩌면 '내 임기 안에는'이라는 말을 애써 삼켜 버렸는지도. (13) " " 다들 괜히 청와대에 있는 건 아닌가 보네!(23) " " 문과네, 문과야!(72)" "살려 준대도 싫대......(119)" "아이참! 오라, 가라......(177)" 이런 부분들이. 한번 웃기기 시작하니까 그냥 사소한 부분들이 웃겼다. 대부분 '아재'일 인물들의 대사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교수형 로또(143)'의 등장이나 '솔리드의 <천생연분>(45)'을 불렀다는 건 쓸데없이 구체적이라 웃기고 하필 오래된 노래라 웃기고 현실반영이라 웃겼다.  


 바닥으로 내려가다 못해 뚫게 생긴 지지율을 회복시키고자 사형집행이라는 각본을 만들어내려는 뒷공작 자체가 블랙 코미디인데, 본격적으로 형집행이 준비되면서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진다. 사형집행까지의 과정을 줄줄이 설명한 내용도 진짜인가 싶고,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된다면 '매달리는' 방법을 쓰는 것이 맞나 궁금했다. 영화에서 본 것은 전기를 흘리는 방식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외국영화 뿐이었다. 사실 내 취향인 '지옥 삼거리 마지막 주방장(75)'이라는 작명 센스가 어디서 온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지옥 삼거리 마지막 주방장이 아닌 '요리사X'가 내놓는 마지막 식사를 받은 사형수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벼운 개그코드로 관심을 끌었던 초반부에서 벗어나 이 레시피가 사실은 요리사X가 벌이는 심리전에 이용되는 도구인 것인지, 음식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요리사 X는 어떻게 이런 식사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 책 내용에 빠져들어 읽게 된다. 각 사형수들마다의 사건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라면 연재로 몇 편이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0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 짧게 느껴졌다. 바란대로 사형수마다의 에피소드가 더 길게 이어지지 않더라도, 조금 성급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마무리를 더 고민했더라면 어땠을까 재미있게 읽은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 "듣자 하니까 그놈들 노역도 안 하고, 혼자 쓰는 방에서 하루 세끼 다 찾아 먹는다고 하데요. 우리 형철인 아직도 밤마다 제 흘러나온 장기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는데...... 쪼끔 시원하다 말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지......"(95) "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요즘 연이은 인면수심 사건들을 보며 더더욱. 범죄자들의 식단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인권을 위해 냉난방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는 뉴스들을 접한 적이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생활하는 빈곤층도 다 지원하지 못하는데,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인권의 보호와 피해자 구제, 범죄자 교화는 다 마땅한 가치 판단의 기준 아래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 체감하는 불균형을 외면할 수는 없는 탓이다. 재밌게 읽다가도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들에서 한걸음 떨어진다면 선선한 날씨에 머리를 식히며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파격과 재미, 자극과 반전을 적당히 버무려 내었다. 분량도 많지 않으니 한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편한 마음으로 읽어보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마주의 책 표지를 보였을 때 누군가 제목이 왜 마주인지 물어왔다. 제목이 말의 주인으로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 뒤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계속해서 마주가 왜 마주일까 생각했다. 이래서 마주였을까 싶은 어림짐작만이 남은 지금, 그 안의 모든 것들이 과거에서 왔을까 코로나라는 팬데믹에서 왔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2023년이고, 사람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고 다니지 않는다. 코로나가 남긴 상흔이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일상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되찾은 일상 앞에서 마주를 읽으며 이게 정말 우리에게 있었던 현실이 맞았었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번호가 붙여져 격리되는 확진자, 대중앞에 공표되는 동선, 기피되고 비판받는 장소와 사람들. 잊고 있었던 것인지, 잊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기억들을 마주하는게 편치 않았다.


 서로 마주하는 관계들 속에서 약간 무서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현미경으로 해부하는 듯한 적나라함, 왠지 모를 불편함을 빤히 바라보는 것 같은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남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늘어놓는 장단점들, 다른 관계를 회피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고 다시 여자들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했다는 토로, 은채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엄마의 시선인, 나리의 말. 


 " 그애가 내 거였을 때, 십년 전 오늘에, 십이년 전 오늘에, 나는 아이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보며 우는지 본 적이 있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주문처럼 중얼거린 적이 있다. 크지 말라고. 여자아이가 되지 말고 내 아기로 있으라고. 나만 보라고. 

 소나무랑 소나기는 무슨 사이야, 엄마?

 이제 그애는 그런 걸 묻지 않는다.

 내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하지도 않는다.

 앞니가 흔들린다고 울지 않고, 쥬쥬기타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혼자 운다.

 여자아이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운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문 너머에서 내 아이가 우는데, 나는 아이를 안지 못한다.

 어느 날은 생각한다.

 너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싶다.

 어느 날은 애걸한다.

 은채야, 나 좀 안아줘.

 어느 날은 홀로 사무친다.

 은채야, 사랑해! (163) "


 아이를 혼낼 때, 아이를 울리고 또 달래주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나리의 내면을 무섭게 여기다가도 커가는 아이가 자신에게서 멀어짐을 느끼는 섭섭함과 어쩔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 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문득 나도 언제부터 엄마, 하고 울지 않게 되었더라 생각한다. 내가 혼자 울던 때 내 엄마도 저렇게 나를 달래주고 싶었을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는 건 마음의 빗장을 쉽게 풀어낸다. 마냥 불편하게, 어색하게 마주를 읽다가 이내 마주가 좋아졌던 한순간이었다. 나리가 롯데월드 투썸에서 어색하게 여기던 수미를 받아들였던 것에도 그런 계기가 있었겠지 싶었다. 그러고나니 민들레가 심어졌을 비탈사과밭과 지금쯤이면 한창 빨갛게 익어갈 사과들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추석을 앞두고 어쩌면 딴산의 그이들이 벌써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가옥 앞 정자에 앉아 있으려니 여름에는 수박바가 제철이고 가을엔 바밤바가 제철이라면서 여자가 바밤바 세개를 가져왔다. (218) "


 나리가 만조 아줌마가 하는 말에 흐흐흑 웃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어쩐지 재밌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철지나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말들도 유독 인상깊고 재밌게 느껴지는 말들. 어쩌면 마주 안에서 봤던 어떤 말들보다 이 싱거운 말장난이 가장 오래도록 또 빈번히 여름과 가을에 떠올라 사용되겠다. 나는 마주를 코로나로 인한 혼란과 상흔보다도 이 가벼운 웃음과 사과밭 풍경으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에 살던 집에서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악몽은 혼자 잠에서 깨어나는 때를 노리듯 반복됐다. 온몸에 돋아난 소름이 목덜미와 다리, 팔등을 타고 돌아다닐때 어두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잠들면 또 악몽을 꿀지 모른다는 불안이, 악몽을 꾸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의식되어 견딜수가 없었다. 단순히 어느 날 어두운 집에 들어왔을때 반은 장난 삼아 반은 불안을 떨치려 큰소리로 '나와, 여기 있는거 다 안다'하고 말해보는 것과는 달랐다.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불면을 토로했더니 절에서 부적을 몇 장 받아와 문에 몇 장 붙이고 불사른 연기를 집안 곳곳에 입혔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악몽을 더는 꾸지 않았다. 진짜 효과가 있어서인지, 그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음과 생활에 안정이 찾아왔고 만족스러웠다. 


 집이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이 궁금하기도 하고 읽기 무섭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그 때의 두려움이 다시 머리 속에 심어져서 또 악몽을 꾸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부분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암시하는 묘사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공포에 바탕을 두고 있어 염려했던 것보다는 편안히 읽었다. 가장 첫번째 작품인 '누군가 살았던 집'이 책을 읽기 전 예상했던 공포와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 묘하게 의식되었던 화장실 냄새라는 요인이 읽는 내내 신경쓰여서 결국은 책을 읽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구석에 청소용으로 둔 목초액 병 때문에 나는 냄새였다. 두려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는 걸 알면 허탈하면서도 과학과 문명이 승리한 기분이 들곤한다. 책에선 현실과 환상이 섞인 채 끝났지만.


 두번째 작품인 '죽은 집'은 한동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져 책도 찾아 읽어봤던 '특수청소업체'에 대한 내용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빌라왕 전세사기'에 대한 내용이 얽혀있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유일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 특별하고,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죽은 집'은 초자연적인 존재, 악몽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고 가장 현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등장 인물들이 희망을 봤다는 이유로 비현실적이라 느껴진다니, 어떤 허구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고 무섭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안 어울리는 건 아닌가 싶지만,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곳으로 여겨질 집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표현되는 제목처럼 아이러니함을 짚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한 결로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반송사유'는 약간 거칠게 느껴져서 섬세한 공포를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메일을 주고 받는다는 재미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비어진 여백이 공포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힘을 잃어서 아쉬웠다. 양현이 반복해서 말하던 '낚시바늘'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늦은밤, 새벽시간의 메일에서 보이는 이상한 언동이 점차 낮에도 보이는 변화, 양현의 집에 대해 염려하던 김혜가 어느 시점부터 메일을 수신하지 않게 된 이유같은 것들이 무어라 주어지는 것 없이 보여지다 마무리되어 버린다. 좀 더 주의깊은 독자가 되어 숨겨진 공포를 찾아내 읽어야했던 걸까 아니면 좀 더 친절하게 두려움으로 독자를 이끄는 요소들이 필요했을까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다른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집보다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더 중점이 되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어느 정도 활용했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는 철저히 인물들의 내면이 공포가 된다. 죄책감, 괴로움, 상실감, 슬픔, 고통 같은 감정이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집은 그들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장소의 역할만 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주제에 더 맞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무서움이 와닿았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가족이 아프거나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몇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막연히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에 좀 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동반한 내용이었다. 진혜의 엄마가 헬스장에 다시 운동하러 가도 되는지 죄책감을 가지는 현실적인 내용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작부터 집이 무서웠던 경험담을 풀어놨지만 책의 위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집은 여전히 다른 어떤 곳과도 비할 수 없는 '홈 스위트 홈'이다. 우리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픈 심정을 경험한 공부하는, 일하는, 지쳐본 현대인들이니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며,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인 집을 비틀어 봤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도였던 책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 때문에 비일상, 공포, 불안과 곁들였을때 더 자극이 크게 다가오는 효과도 있었다. 마침 주말에 본 영화에서 나왔던 노래를 떠올리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의 서평을 썼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집이 가장 무서운 책을 읽고, 멸망한 세상에서 집이 가장 중요한 영화를 본 주말이다. 모두 집에서 읽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 행복하며 생활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몽과 망상 - 어느 인턴의 정신병동 이야기
무거 지음, 박미진 옮김 / 호루스의눈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헤맨 사람에게는 어둠이 바로 그 사람을 단련시키는 무공이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 증상은 환자가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증상은 생존을 위함이다'라는 인식은 정신분석의 기초이다. 환자에게는 이 증상이 필요하기 대문에 있으며, 불필요해지면 증상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쓸모없는 기관이 스스로 퇴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p81 (망상 속의 괴물 중) "


 나는 무던한 사람이다. 강박적이거나 예민한 부분이 좀 있지만 대체로는 무심하고 게으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고, 그런 이유로 주변과의 마찰이 있던 적도 있으니 열에 여덟 정도는 나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싶다. '악몽과 망상'을 읽으면서 섬세함과 예민함에 대해 주로 떠올렸다. 인물에게는 '악몽과 망상'이었겠지만 읽으면서 '슬픔과 절망'을 가장 많이 느꼈다. 누군가의 내면에 고통스러운 사건이 새겨진 흉터를 바라보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정신병동 이야기라니, 심리와 정신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해볼 수 있을테니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호기심은 타인의 병증을 자극적인 소잿거리로 삼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어려운 지식에 대해 좀 더 쉽게 알아보려는 욕구와 닿아있는 면이 크다. 무슨무슨 증후군이나 트라우마, 가스라이팅 같은 심리학 용어들이 한 번 알려지면 유행처럼 번져나가 사용되지 않는가. 읽어가면서 호기심이 이해와 공감으로 번져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용 자체가 단순 케이스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삶과 내면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 처음 팡위커를 만났을 때, 고양이에 관해 물었던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애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바로 엄마였다.

 "다가가면 도망가버릴까요?"

 (.)

 "그럼 제가 저 멀리 가면 따라올까요?"

 (.)

 "글쎄,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무슨 사이라면요?"

 (.)

 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팡위커라고 두려움과 아쉬움이 없었을까. 다시는 수영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던 말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싶은 게 당연하다. p139 (동생이 만들어낸 형 중 내용 일부 가림) "


 '동생이 만들어낸 형'은 가장 마음 아프게 읽은 내용 중 하나이다. 다중인격은 소설, 영화같은 창작물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라 여기서의 내용도 약간 클리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책의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개인적인 경험과 엮어 확장해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가끔 형제자매를 둔 지인과 부모님은 자식들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물론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듯 부모님에게 '우리 중 누가 제일 좋으세요' 물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지인들은 대체로 분명히 형제자매 들 중 누군가를 꼽아냈다. 그게 자신이든 아니든. 


 자식에게는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여럿 존재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헌신은 대체로 자식이 부모를 향하는 것보다 크다. 이런 일반적인 속설들만 나열해봐도 관계는 복잡하다. 자신의 필터로 걸러둔 그동안 겪어왔던 사건들을 모아서 속단해서는 안될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철없이 우리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애정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된다. 팡위커의 이야기를 읽으며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 사랑받기 위해 경쟁했던 것들, 여전히 가장 사랑받고 싶다고 갈구하는 마음을 은연 중에 드러냈던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질문의 본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이 누군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타인과의 교류로 인한 병증이 있었고 그 상황에 대해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추신의 이야기는 나말고도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 추신은 매일 음식을 극소량만 섭취하면서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보통 신체 이상형태성 장애를 겪는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이미 너무 말라서 아름다움을 잃은 수준까지 갔는데도 정작 본인은 더 마를수록 보기 좋다고, 아직 더 살을 빼야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른 몸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과 지각이 완전히 왜곡된 상태이다. p177 (침묵의 폭식증, 속죄의 거식증 중) "


 추신의 식이장애는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식이장애를 가지게 되는 이유가 마른 몸에 대한 미적기준 때문이다. 나 역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절식과 폭식을 하는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건강적인 문제 때문에 식사를 조절하고 있는 이유가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여전히 섞여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면, 호감을 얻고싶다는 욕망이 외양이 아닌 내면으로 집중된다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인에게서 얼마나 더 초연해져야 이런 욕망이 다스려질까?


 " 그가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무식했지만. 천진난만함과 잔인함은 본래 유의어가 아니던가. p301 (내 바지 어딨어? 중) "


 다시 돌아가서 처음에 나는 내 무심함에서 비롯된 주변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 좋게 포장하기 위해 무심함이라고 했을 뿐 무신경함, 이 책에서의 무식함과 다를 바 없는 언행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주변인들의 범위를 많이 줄이고, 단정적인 어조로 공개적인 곳에서 말하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과거 가까운 상대에게서 '너의 이런 언동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말이 내심 충격으로 작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으로 집중을 옮겨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는 점점 더 좁고 내밀한 곳으로 집중되는데 타인의 관심과 호감을 얻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SNS의 좋아요를 확인하거나, 내 겉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지금 어떤 냄새가 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 헤아려보게 되는 행동은 사회와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행동들은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부자연스러운 욕망일까? 책을 읽으며 상충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궁금함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이 앞섰다면 읽으면서 점차 책에서 자신으로 생각을 확장하도록 만드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면서 조금 흐름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마무리를 위한 사건을 만들고 매듭 지은 수순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책은 재밌다. 거의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잘 읽힌다. 날이 더우니 책과 함께 시원한 카페로 피서를 떠나 독서라는 행위를 보여주기 해도 좋을 것 같다. 내면을 가꾸는 행위를 보여주기로 이용한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가책을 느껴도 될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