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서수지 옮김, 김석현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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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오랫동안 찾았던 유형의 책이었어요. 사회현상, 인간행동 등을 과학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융합과 통섭의 책이지요. 검색해 보니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였고 유명한 저자네요. 원서 제목이 "물리학자의 대단한 사고법"인데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신박한' 사고법이라고 명명하고 싶어지네요.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물리학자의 신기한 관점이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에 담긴 과학자인 저자의 생각에 마음 속으로 문과적 시각 혹은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딴지를 걸어보는 것도 큰 재미였습니다. 아마 저자도 자신의 뇌내에서 일어나는 '사고법'을 기준으로 쓴 것이지 그것이 답이라거나 어떤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기에 독자로서도 마음속으로 딴지를 걸어보며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자는 1973년 출생으로 교토대학교에서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며, 이론물리학, 초끈이론, 소립자론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교토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왜 우주에 그렇게 많은 수의 원자가 존재하는지를 묻는 게 소립자 물리학이다. (38쪽)

☞ 홍콩 에스컬레이터의 빠른 속도


가장 첫 챕터에 저자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행위가 위험하므로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에스컬레이터의 계단 높이를 높이거나 계단의 폭을 줄이는 등의 궁리를 합니다. 그러다가 홍콩에서 본 빠른 속도의 에스컬레이터에서 해답을 찾기도 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는 답일 수도 있지만,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큰일 날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홍콩의 에스컬레이터의 빠른 속도가 걷는 행위 방지인지도 알 수가 없지요. 그리고 설령 걷는 행위를 막기 위해 그렇게 속도를 높였다가 행여 누군가 시도하다가 크게 다치거나 하면 오히려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일 수가 있죠.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굳어져 온 것이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아무 불만이 없고, 실제로 저자의 생각대로 걷는 행위가 방지가 된다면 좋은 것이긴 하죠.

실은 홍콩은 아니지만, 저도 싱가포르의 큰 쇼핑몰, 전철역 등에서 우리나라나 일본의 에스컬레이터의 1.5배속 정도 되는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싱가포르와 홍콩, 특히 중국에의 반환 이슈가 없는 싱가포르는 글로벌 회사, 특히 금융기업들의 아시아 허브이고, 화교들이 중심이 된 사회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도심에서는 나이 든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젊은 커뮤니티'라는 것이 저의 인상이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당시 20대였던 저조차도 조금 겁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면 사회적 반발이 크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젊은 사회여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던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폭이 좁은 에스컬레이터는 우리나라에도 설치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인분의 공간만이라도 있으면 걸어서 오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는 옆에 찰싹 붙어서 가방도 앞으로 안고 있어요. 누군가랑 부딪히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미리 방지한다는 면에서요.

☞ 한자에 좌우 대칭 글자가 많은 이유는 중력

한자라는 문자는 원래 표의문자, 즉 뜻을 글자로 표현하는 문자다. 가장 직관적인 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시각적 이미지다. '뫼 산(山)'이라는 한자는 산의 형상을 나타낸 글자다. 이 세상과 자연의 사물들 중에는 좌우 대칭이 많다. 그래서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도 좌우 대칭이 많고, 한자에도 좌우 대칭인 글자가 많은 것이다. ... 그렇다면 자연의 사물은 왜 좌우 대칭일까? 그것은 물론 중력이 존재하기 떄문이다.(67쪽)

한자를 보면서 중력을 떠올리다니 정말 물리학자의 두뇌구조가 신기한데요, 사실 생각해보면 저자의 생각이 아주 이치에 맞습니다. 한자 중에서도 '부수'로 사용되는 아주 기본적인 상형문자의 경우,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형, 즉 실제 모양을 딴 문자이므로 좌우 대칭이 많겠다 싶었어요. 사실 좀 더 복잡한 한자들은 여러 가지 기본 한자들을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낸 것들이 많지요.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가장 안정적인 형태가 좌우 대칭의 형태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코야키와 장수풍뎅이의 공통점 : 겉바속촉의 비밀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며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형태를 유지하려면 반지름에 상한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겉 표면의 두께를 유지하면서 다코야키 반지름을 늘릴 수는 없을까? (98쪽)

이 생각을 하면서 초시류, 갑충류라는 장수풍뎅이, 딱정벌레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갑충류는 앞날개가 딱딱하고 속에 비늘 같은 날개가 숨어있지요. 정말 대단합니다. 장수풍뎅이가 아무리 커도 반지름이 어느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며 다코야키의 겉바속촉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크기가 그만큼이 아닐까 하는 논리에 이르는데 정말 공감이 되었습니다. 다코야키를 먹으면서 장수풍뎅이 생각을 하면 그 다코야키가 맛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너무 재미있고 기발한 발상이었죠.

☞ 히스테리시스 현상

자석이 아닌 강철에 다른 강한 자석을 붙이면, 그 강철이 자석이 된다. 붙였던 강력한 자석을 떼도 강철은 자성을 계속 띠고 있다. 다시 말해 자성이 없던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자석을 한번 갖다댔다는 지금까지의 이력을 강철이 '기억'하고 있다. 이 현상을 '히스테리시스'라고 부른다. (73쪽)

히스테리시스 행동 현상과 그 이론을 깨닫고 나서 이 이론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인간의 온갖 행동 배후에 숨은 물리 이론을 탐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인생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단순한 물리 이론에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74쪽)

뼈속부터 문과생인 저에게 큰 감동을 준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독서에 큰 영향을 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이 물리라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독서도 많이 하고 깊이와 폭이 넓은 친구여서 늘 본받으려고 하는 친구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 심오함을 제가 헤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애들 물리 관련 책부터 좀 쉬워 보이는 물리 책들을 조금씩 접해 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주가 곡선에서도 아무리 오르거나 떨어지더라도 이전의 최고점 최저점이 저항선으로 작용하듯이, 인간의 행동에는 우리의 경험이 '기억'이 되어 그 경험을 하기 전과 후는 분명히 다른 겁니다. 각 개인에게 어떤 특정한 경험은 인생을 뒤흔드는 변곡점이 되기도 할 테죠. 저에게는 그런 경험이 무엇이었을까 생각도 해 보기도 하고요.

'히스테리시스'는 기억하기도 쉬워서 앞으로도 잘 안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저자는 수트케이스 바퀴가 굴러가며 내는 소리에도 보도블록의 기하학 패턴을 생각하며 여행의 맛을 느낍니다. 저는 유럽을 여행해 본 적은 없어서 모르지만, 유럽의 유서 깊은 거리들의 돌로 깔린 보도들은 수트케이스를 끄는 여행자들에게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공항에서 매끈한 바닥을 끌고 가는 느낌도 좋고, 보도블록 위를 덜커덩거리며 걷는 느낌도 좋습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일본의 느낌이 다른 것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인천 공항 전반에 흐르는 냄새, 그리고 일본 공항, 지하철, 전철 등에서 나는 냄새들이 각 지역을 갔을 때 묘한 향수와 반가움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외에도 너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습니다. 그 에피소드들에서 물리학적 개념과 사고법을 이끌어내니 깊이 들어가는 공식 등은 모를지라도 거시적으로 이해가 정말 잘 됩니다. 저자는 유튜브 등을 통해서 일반 독자들, 학생들과도 열린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물리학이라면 문과생도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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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작은 생물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 자연이 알려준 나를 사랑하는 법
래니 샤 지음, 김현수 옮김, 최재천 감수 / 드림셀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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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자연이 알려준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되어 있어요.

동식물에 관한 잡학사전 같은 느낌이어서 호기심이 많이 들었는데,

동식물의 습성을 관찰하며 우리 인간에게 주는 시사점을 주는 책입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판형에 두께도 두껍지 않고,

무엇보다 커버페이지 아래에 최재천 교수님 추천이라고 인쇄되어 있어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래 목차를 보시면 책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어요.

주로 동물들이 주인공이고 가끔 식물들이 나오는데 이렇게 목차도 귀엽고,

각 일러스트레이션이 좀 더 자세하게 각 장 들어가는 페이지에 나와 있어요.

저는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궁금한 생물 먼저 찾아서 읽으셔도 아주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는 자기 돌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 돌봄이란 궁극적으로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야 함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다." (15쪽)​

자기 돌봄, 자기 자비 등 현대 사회가 각박하고 엄혹해서인지

이전부터 있었던 개념들인데 최근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고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은 각 장의 해당 동식물의 특이하고 흥미로운 습성을 먼저 설명하고,

그에 대한 해몽(?) 혹은 해석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통찰력을 줍니다.

그렇게 하는 기저에 깔린 전제는, 생긴 그대로,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동식물과 달리,

우리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가고 있고, 자기 돌봄의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에게 깊이 다가왔던 몇 부분을 소개하면 제각기 다른, 꽃들의 개화시기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튤립은 밤에 꽃잎을 오므리고, 재스민은 밤에 활짝 피우며, 마리골드는 온종일 꽃잎을 열고 있다.

밤에 꽃을 피우는 선인장의 꽃은 햇볕을 누리고 살지는 못하는 대신 햇볕이 필요하지 않도록 적응했다."

(55~56쪽)

꽃들에게서 도출해낸 자기 돌봄의 원리는 '루틴'의 중요성입니다.

너무 엄격하여 본말이 전도되어 우리 삶을 옥죄고 자유를 빼앗는 루틴이 아니라 융통성 있는 루틴,

그럼으로써 삶의 자잘한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자신의 강점을 불러내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기 돌봄은 루틴과 밀착돼 있다.

왜냐하면 하루 중에 진정으로 기다려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의 창의력, 가족, 그리고 목표에 윈윈이기 때문이다." (59쪽)

미라클 모닝이 아닌 미라클 나잇, 미라클 미드나잇을 즐기는 편인데,

그건 하루의 분주하고 오만 가지 생각들이 오가는 머리를 비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그 '기다려지는 시간'이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루틴은 정말 단순하여 무슨 재미로 사나 싶을 수도 있지만, 꽤 알차고 재미있습니다.

가족의 삶을 돌보는 중요한 일상 속에서 콤팩트하고 강렬하게 일하는 반나절의 시간,

그리고 조금은 피곤하고 나른하지만, 고요하고 평온한 밤시간이 삶의 낙이지요.

또 귀여운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 우파루파, 멕시코도롱뇽 혹은 액소로틀은

우리가 어렸을 때 생물 시간에 배웠던 플라나리아처럼

몸의 일부가 절단되어도 다시 자라납니다.

액소로틀의 모습에서는 캐롤 드웩 박사의 성장 마인드셋,

즉, 자라나고 회복할 기회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아주 촌철살인 같은 부분은 기생충에 대한 부분입니다.

숙주에 붙어서 양분을 빼앗아 먹으며 숙주의 뇌까지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 기생충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톡소포자충, 모양 선충은 정신까지 조종하며 숙주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저자는 우리 삶의 기생충 같은 사람들에 관해 경계하라고 합니다.

그 신호는

이 사람과 시간을 보낸 다음 기분이 나빠진다!

나의 결정이 이 사람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끊임없이 걱정한다!

내 친구가 가십 대마왕이다!

입니다.

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 성찰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기생충을 박멸하듯 관계를 끊기보다 먼저 열린 대화를 하라고 권고합니다.

하지만, 유해한 우정일 뿐이라면 관계를 끊는 것도 득책일 수 있습니다.

자기애가 너무 강하여 다른 사람을 얕보고 무시하고 개, 돼지로 만드는 사람이 너무 싫고요,

평가질, 지적질, 비교질하는 사람이 너무 싫어요.

인간의 존엄을 뭘로 보고 사람에게 함부로 지잡대, 듣보잡 이런 말 하는 사람도 너무 싫고요,

보스 기질 충만하여 자기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다 알고 있으려는 사람도 싫어요.

모계 집단인 코끼리들의 리더처럼 구성원을 신뢰하고 공감하며 함께 성장하길 원해요.

나에 대한 자기 돌봄이 중요한 만큼, 타인 돌봄도 중요하다는 걸 다같이 느꼈으면 좋겠고요.

해파리처럼, 나무늘보처럼 조금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쉼을 소중히 여기는 자기 돌봄 속에서

창의성과 자유로움,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 인생을 조망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70% 정도 채우고 30%의 완충지대를 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합니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자는 주장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채식을 하고, 소비보다는 재활용을 실천해봐야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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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실험, 무엇이 문제일까? 10대가 꼭 읽어야 할 사회·과학교양 14
전채은.한진수 지음 / 동아엠앤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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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원숭이의 눈꺼풀을 봉합해 1년간 실명 상태로 두고, 갓 출산한 어미 원숭이에게 새끼를 떼 놓고 봉제 인형을 내밀었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마거릿 리빙스턴의 연구실이 행한 실험에 학자들은 연구윤리 위반이라며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동물보호단체는 실험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하버드대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인신공격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낸 채 일부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출처:"멀쩡한 눈꺼풀 봉합 1년간 실명"…실험한다고 원숭이에 몹쓸 짓 - 매일경제 (mk.co.kr))

바로 며칠 전에 읽은 생생한 기사입니다. 기사에는 원숭이의 눈을 붕대로 친친 감아둔 사진까지 실려 있어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동물 생체 실험에 대한 과학자들과 동물보호단체의 첨예한 대립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사였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마크 트웨인의 단편 소설 《어느 개 이야기》를 읽고 나서 동물 실험에 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사회 문제에 이렇게 실제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을 보면 문학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느 개 이야기》는 과학자 클로드 베르나르가 했던 실험에 관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클로드 베르나르가 말한 인용문까지 실려 있어서 독서가 연결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아래 목차를 보면 동물 실험의 역사부터 논쟁 이슈, 찬반양론, 실험동물의 복지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잘 기술이 되어 있고, 각 부의 마지막 부분 '꼭꼭 씹어 생각 정리하기'에서는 한 페이지로 핵심 내용이 요약되어 있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차례]

1부 동물 실험의 역사

1장 동물 실험이란?

2장 동물 실험의 역사

2부 동물 실험 관련 법률 및 논쟁

1장 동물 실험 관련 법률

2장 교육용 실험에 관한 논쟁

3부 동물 실험의 종류

1장 의학용 실험

2장 독성 실험

4부 동물 실험에 관한 찬반양론

1장 동물 실험을 둘러싼 철학적 쟁점

5부 실험동물 복지

1장 실험동물 복지 위반 사례들

2장 실험실 내 3R의 실현

동물 실험은 의학, 생명 과학 연구, 교육용 실습, 독성 테스트, 의약품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됩니다. 사실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감정적으로 절대 안 된다, 인간의 효용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경도되기 쉬운데 예로부터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 치료제 등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윤리적, 철학적 잣대만을 들이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서술된 이 책에서도 동물 실험 자체를 최소화하고 동물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되 완전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몽주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과 함께 동물 실험도 활성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저에는 인간의 호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개 이야기》를 탄생시킨 과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세기는 생명 과학이 발전하는 시기였다. ... 베르나르는 "과학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과학적 사상에 전력하여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도 듣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한 생체 해부학자는 외과 의사가 어려운 수술에 들어갈 때와 같은 기쁨과 흥분 상태에서, 그리고 즐거운 느낌을 가지고 어려운 생체 해부에 접근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물에 칼을 대는 것을 겁내는 사람은 결코 생체 해부의 명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동물 실험에 아마도 반대 입장이었던 마크 트웨인은 그를 광기 어린 과학자의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실제로 클로드 베르나르는 근대 생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업적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으로 인한 동물 실험의 무용성을 뒷받침하는 예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습니다. 입덧 치료제인 탈리도마이드는 동물 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부작용으로 팔과 다리가 없는 기형아들이 태어난 것을 들고 있습니다.

'동물복지를 위한대학연맹'의 창립자 찰스 흄이 동물학자인 윌리엄 러셀과 미생물학자 렉스 버치에게 의뢰하여 실험실 동물에 대한 인도적 취급에 관해 연구하도록 한 결과 도출해 낸 원칙이 '3R 원칙'이다. 3R 원칙은 동물 실험의 숫자를 줄이고(Reduction, 감소), 비동물 실험으로 대체(Replacement)하며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하는 것에서 앞머리 문자를 따온 것이다.

동물복지를 위해 도입된 3R 원칙은 아직까지도 동물 실험에서 가장 보편적인 시금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전과 함께 동물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보다 세포를 배양하여 실험을 하거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방법도 도입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움직임도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동물 실험의 예로 소개된 것 중 우리가 기계적으로 암기해 온 '최초로 우주로 간 개 라이카'의 뒷얘기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만 외웠지 라이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로켓 발사 5~7시간 내에 고음과 진동, 고열 등으로 사망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수중 변사체 부패 정도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인간의 피부 조직과 가장 유사한 돼지를 사용했는데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실험하여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실험에 사용된 후 옥상에 처참하게 유기된 개들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의 전 세계적인 정보 공유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동물 실험을 하더라도 정보 공유가 되어 똑같은 실험에 동물들이 여러 번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1차 정보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소유를 원하며, 자국 이기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작금의 세계 정세를 보아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게다가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일본군들이 그랬듯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기반으로 그들의 기초과학 분야가 발전했다는 것을 볼 때 그런 야욕을 품는 자들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두렵습니다.

실험 동물로 사용되었다가 생명을 건질 수 없는 경우는 인도적 종료 시점에 안락사를 시키지만, 건강을 회복한 동물은 일반적인 반려동물로 입양도 한다고 하니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찬반양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대안 없는 주장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복지 모두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저자 두 명의 입장 역시 최대한 동물 실험을 자제하되, 실험을 해야 할 경우는 3R 원칙을 지키는 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게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대인 아이들과도 심도 있게 토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 도서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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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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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의 작가가 어떤 공간에서 집필활동을 했는지, 그들의 공간 취향은 어땠는지, 집필 습관은 어땠는지 엿볼 수 있는 너무나 근사한 책이에요.

작가들의 성향을 따라 다섯 부류로 분류한 목차는 일목요연하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는 어땠는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찾아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첫 번째 방 - 오직 홀로, 영감에 귀 기울이는 곳

두 번째 방 - 추억과 개성이 가득한 공간

세 번째 방 -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

네 번째 방 -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곳

다섯 번째 방 -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집스럽게

저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방의 주인공들이 궁금해지네요. 세 번째 방의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아요.

마거릿 애트우드(집필실이 왜 필요하죠?),

J.K.롤링(좋은 카페가 중요한 이유),

실비아 플라스(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쓰기),

제임스 볼드윈(진정으로 혼자가 되는 밤),

거트루드 스타인(소와 자동차),

아서 코넌 도일(책상으로 변신하는 트렁크),

힐러리 맨틀(온 세상이 책상),

제이디 스미스(인터넷 멀리하기)

좋은 카페, 아이들이 잠든 시간, 진정으로 혼자가 되는 밤, 온 세상이 책상......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들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작가들의 공간에 대한 애착도 그들의 집필 습관도 참 흥미로웠습니다.

헤밍웨이는 침실에서 작업할 때면 벽에 붙여 둔 책장을 책상처럼 썼습니다. 가슴 높이까지 오는 책장 위에 타자기를 두고, 그 옆에는 책들과 종이 더미를 쌓아 놨죠. 작업량을 기록하는 차트도 가까이에 뒀는데, 하루에 500단어씩 성실하게 쓰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쓸 때는 하루에 거의 2000단어를 썼대요. (101쪽)

헤밍웨이는 요즘 입식 책상처럼 그리 놓지 않은 책꽂이 위에 타자기를 두고 책상처럼 썼다고 하니 참으로 앞서나갔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마치 할당량 있는 직장인처럼 성실하고 꾸준하게 썼다는 것이 무척 통찰력 있었어요. 뭔가 섬광처럼, 계시처럼 영감이 떨어질 것 같지만, 하루하루의 성실한 집필 속에서 명작이 탄생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티핑 포인트》의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커피숍이 글쓰기 소재를 떠올리는 데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죠. (156쪽)

본서에서 다룬 작가는 아니지만, 부록처럼 사이사이에 들어간 칼럼에서 제가 무척 좋아하는 말콤 글래드웰 작가가 살짝 언급됩니다. 커피숍이 글쓰기 소재를 떠올리는 데 좋다고 하네요. J.K.롤링이 유모차 끌고 카페를 전전하며 해리 포터를 썼다고 하던데 커피숍에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맨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영국 소설가 힐러리 맨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든 다른 사람의 차에 타고 있든 상관하지 않고 메모를 하는 등 글을 쓰는 장소에 대해 아주 유연합니다. 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을 기록할 정도로 메모가 글을 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166쪽)

또 한 명의 작가 힐러리 맨틀은 온 세상이 책상이라고 했다는데 늘 메모하고 글을 썼다고 하니 열정도 대단하고, 유연함도 대단합니다.



자연 속에서 글을 쓴 작가을 중에서 <샬롯의 거미줄>을 쓴 E.B.화이트는 간소함을 즐겼다고 합니다. 별다른 가구 없는 오두막은 원래는 보트 창고였다고 합니다. 정말 샬롯의 거미줄의 모델이 되었을 법합니다. 정말 잘 어울립니다.

E.B.화이트는 작가이자 자연주의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을 좋아하여 영감을 받아 자연 속의 오두막 생활을 즐겼습니다. <월든>이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작가들의 작가가 소로인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 작가들만 있는 것 같아도 인터넷, SNS를 멀리하고 글을 쓰려 한 제이디 스미스의 이야기도 있고, 영미권 작가가 아닌 작가 중에는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도 있습니다. 재즈광으로 재즈클럽을 운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재즈 팬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외 작품을 투고한 후 받은 거절 편지를 다 모아두었던 커트 보니것, 소를 보며 오르가슴, 섹슈얼리티, 레즈비언 탄생의 신화적 개념 등의 영감을 얻었다는 거트루드 스타인, 반려동물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디스 워튼, 하루에 커피를 50잔 정도는 마셨다는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확실히 시대가 다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타자기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타자기 브랜드까지 세세하게 나와요. Delete와 Backspace가 없는 거죠? 수정할 수 없는 타자기를 어떻게 썼을까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필 등 필기구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잉크와 깃펜으로 글을 쓰면 너무 멋질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침대에 잉크를 쏟는 작가 이야기도 나와요. 침대에서 글을 쓴 작가들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뒤에 부록으로는 작가들이 집필한 곳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위치 정보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학 순례 같은 것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문학으로 만족하고 그들의 방을 글로 엿보는 것으로 족하지만요.

매력적인 장소를 그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런던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오시스의 삽화가 책의 매력을 더해준 것 같습니다.

소중히 간직하며 숨 돌릴 때마다 들춰보고 여기 수록된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어보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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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템페스트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예용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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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은 풍랑을 만난 배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난파당하여 한 이름 모를 섬에 표류하게 되는데 이 섬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유쾌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때로는 달콤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집니다.

서술을 통해 배경 설명과 캐릭터 구축를 할 수 있는 소설과는 달리, 거의 대사로 처리해야 하는 희곡이니만큼 아래 제시한 인물 관계도는 책을 읽어가며 계속 들춰보게 되는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관계도를 넣어주신 편집자님의 센스가 탁월합니다.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밀라노 공국의 공작이었는데 그는 백성들을 돌보는 치세보다도 자신의 지식욕, 탐구욕을 채우려고 마법 연구에 몰입하다가 가장 믿었던 남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을 당하고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작은 섬에 갇혀 지냅니다. 곤잘로라는 늙은 충신 덕분에 목숨만은 건졌지요. 프로스페로는 그 섬에서 설욕의 시간을 기다리며 생활합니다. 그 사이 미란다도 많이 커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되었지요.

난파당한 배에 탄 이들은 프로스페로의 동생 안토니오와 손을 잡고 나폴리의 왕이 된 알론조, 안토니오 일행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희곡의 제목이기도 한 템페스트, 즉 폭풍우는 자연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프로스페로가 마법으로 일으킨 복수의 전주곡이었지요.

섬의 한쪽에서는 알론조와 안토니오 일행이 왕자인 퍼디넌드가 풍랑에 휩쓸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퍼디넌드가 프로스페로의 아리따운 딸 미란다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요. 한쪽에서는 프로스페로에게 앙심을 품은 괴물 캘리번이 프로스페로를 죽이기 위해 섬에서 난파당한 자들을 부추겨 프로스페로를 해치려고 합니다.

대사들이 역시 주옥 같습니다. 극중에서 프로스페로가 요정 에어리얼을 시켜 준비한 가면극에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 대지의 여신 세레스,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가 등장하는데 대자연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세레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안녕하시죠, 다채로운 빛깔의 전령이여. 그대는 한 번도 제우스의 부인인 주노 여왕님의 말씀을 어긴 적이 없죠. 샛노란 날개로 꽃들 위에 감미로운 물방울과 신선한 물줄기를 뿌려 주고 푸른 활로 우거진 숲과 밋밋한 땅도 축복해 주지. 내 자랑스러운 대지에 화려한 스카프를 둘러주고요. 당신의 여왕이 왜 저를 이 풀이 짧은 초원으로 부르셨지요?"(세레스의 대사, 100쪽)

셰익스피어는 대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사에 자연스럽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능통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제가 지식이 모자라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괜히 초조하더라고요.

이 희곡은 통쾌하게 한 방 날려주는 복수극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밋밋하게 윤리적인 모범답안을 이끌어내는 것으 아니지만, 인간의 고매함, 고상함을 극도로 승화시키는 형태로 '용서'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이고 실리적으로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반역자들을 용서하고, 자신의 딸 미란다와 퍼디넌드 왕자를 결혼시켜 나폴리 왕가에 자신의 자손을 들여보내고 자신은 원래 자신의 공국이었던 곳으로 가 평온한 만년을 보내려고 하지요.

"공기일 뿐인 너도 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같은 인간이며 저들 못지않게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내가 어찌 너만큼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느냐? 저 자들이 저지른 큰 잘못으로 뼈아픈 상처를 받았지만 고귀한 이성으로 분노를 잠재우겠다. 용서가 복수보다 더 가치 있는 행동이니까. 저들의 뉘우친다면 나의 유일한 목적은 더 이상의 피해를 끼치지 않는 걸로 바뀔 거다."(프로스페로의 대사, 113쪽)

인간의 권력, 믿었던 사람의 배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환경 등이 씁쓸하게 그려지지만, 저는 그래도 해피엔딩인 희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들의 과장스러고 골계미와 익살 넘치는 대사들과 함께 서정적이고 색채와 빛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대사가 역시 셰익스피어로구나 싶었고, 동시에 그의 희곡의 묘미를 제가 100% 이해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을 특히 좋아하여 어려서부터 희곡으로도 읽었습니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한국 독자들에게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것 같고, 저도 처음 접해봤는데 그의 희곡의 매력이 십분 살아있고 인간의 추함과 선량함이 동시에 잘 그려져 있어서 매료된 작품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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