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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I didn't mean to.... but I'm sorry...
내가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야, 미안해.
살다 보면 이런 말 해야 할 때가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의도로 한 거였는데, 결과는 그 역으로 나오는 때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려고 손 내밀었는데,
도리어 물 속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낳는 때가...
이 책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전쟁을 어차피 해야 한다면
기술과 미국인다운 패기, 선량한 의도로
당시 독일과 영국이 일삼았던 무차별 폭격이 아닌,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설물을 파괴함으로써
사람들(특히 민간인)의 생명에 해를 주지 않으며
적군의 병력을 마비시키고자 했던 미 공군의 폭격기 마피아들입니다.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들을 읽어보면
영국인들은 방공호 같은 시설을 정원 같은 데 두고
야간 공습 경고가 발령되면 그 속에 들어가 숨었다가
공습이 끝나면 나와서 그들의 일상을 살아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뉴베리 수상작인
<맨발의 소녀(The War That Saved My Life)>입니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도 부족했기에
어느 대상을 조준할 필요 없이 공중에서 무조건 폭격을 퍼부었죠.
그러나 미 공군의 일부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은 돈키호테에 비유했는데,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야망찬 계획을 세웁니다.
"미국의 기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에는 강력한 도덕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싸울 방법을 찾되 도덕적인 국가, 이상과 이념의 나라,
개인의 권리에 대한 헌신, 인간 존중의 나라라는
미국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는
깔끔한 방법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것 같습니다."(62쪽)
"그가 인류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폭격 조준기를 개발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뭘까 궁금할 겁니다.
그는 폭격을 더욱 정확하게 만듦으로써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87쪽)
배후에는 9km 상공에서도 피클 담은 드럼통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폭격 조준기를 설계했던 천재 수학자이자 발명가인 칼 노든이 있었죠.
그리고 공군에는 헤이어드 헨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에는 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독일 군대를 마비시키는 데 주효할 것으로 보았던
볼베어링 공장에 고고도 조준 폭격을 시도하지만,
독일군의 관심을 돌릴 다른 도시에의 폭격은 큰 사상을 가져왔고,
날씨, 특히 바람 등의 통제/예측 불가능한 변수의 영향,
당시 기술적 한계 등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높은 이상과 가열찬 패기를 품은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쳐 원하는 것을 이루려 했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 무르익어가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응징해야 하는 전쟁 상황 속에서
그들은 일본의 주요 군사 시설, 군수물품 공장을
조준 폭격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당시 군사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헤이어드 헨셀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현실적이고 냉혈한, 그러나 결단력 있고 유능하기도 한
커티스 르메이는 그런 돈키호테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허황된 기술에 의존하느니,
무차별 폭격을 하더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는 편이
아군, 적국 쌍방에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1945년 도쿄 대공습을 감행합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금지한 소이 무기(목표물을 불살라 없애는 무기)를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것이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
그 전에 이런 소이탄 폭격을 여러 도시에서 경험하며
이미 무조건 항복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양심과 의지를 적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련의 도덕적 문제가 있다.
그것들은 대단히 어려운 종류의 문제이다.
반면 인간의 독창성을 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폭격기 마피아의 천재성은 그 차이를 이해한 것이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태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이 옳았다.(233쪽)
커티스 르메이는 전투에서 이겼다.
헤이우드 헨셀은 전쟁에서 이겼다.(234쪽)
말콤 글래드웰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음으로써
돈키호테 같은 폭격기 마피아 헤이우드 헨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선량한 의도, 꿈, 이상,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발전,
그것이 적재적소에서 발휘된다면 인류는 진보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인정,
악하고 기회주의적이며 타인의 약점을 파고드는 동료 인간의 존재 또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전의 저서들보다 장대한 사건들을 다루었지만,
역시 인간의 본질,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시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엄지를 치켜들게 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