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서수지 옮김, 김석현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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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오랫동안 찾았던 유형의 책이었어요. 사회현상, 인간행동 등을 과학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융합과 통섭의 책이지요. 검색해 보니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였고 유명한 저자네요. 원서 제목이 "물리학자의 대단한 사고법"인데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신박한' 사고법이라고 명명하고 싶어지네요.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물리학자의 신기한 관점이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에 담긴 과학자인 저자의 생각에 마음 속으로 문과적 시각 혹은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딴지를 걸어보는 것도 큰 재미였습니다. 아마 저자도 자신의 뇌내에서 일어나는 '사고법'을 기준으로 쓴 것이지 그것이 답이라거나 어떤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기에 독자로서도 마음속으로 딴지를 걸어보며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자는 1973년 출생으로 교토대학교에서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며, 이론물리학, 초끈이론, 소립자론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교토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왜 우주에 그렇게 많은 수의 원자가 존재하는지를 묻는 게 소립자 물리학이다. (38쪽)

☞ 홍콩 에스컬레이터의 빠른 속도


가장 첫 챕터에 저자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행위가 위험하므로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에스컬레이터의 계단 높이를 높이거나 계단의 폭을 줄이는 등의 궁리를 합니다. 그러다가 홍콩에서 본 빠른 속도의 에스컬레이터에서 해답을 찾기도 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는 답일 수도 있지만,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큰일 날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홍콩의 에스컬레이터의 빠른 속도가 걷는 행위 방지인지도 알 수가 없지요. 그리고 설령 걷는 행위를 막기 위해 그렇게 속도를 높였다가 행여 누군가 시도하다가 크게 다치거나 하면 오히려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일 수가 있죠.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굳어져 온 것이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아무 불만이 없고, 실제로 저자의 생각대로 걷는 행위가 방지가 된다면 좋은 것이긴 하죠.

실은 홍콩은 아니지만, 저도 싱가포르의 큰 쇼핑몰, 전철역 등에서 우리나라나 일본의 에스컬레이터의 1.5배속 정도 되는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싱가포르와 홍콩, 특히 중국에의 반환 이슈가 없는 싱가포르는 글로벌 회사, 특히 금융기업들의 아시아 허브이고, 화교들이 중심이 된 사회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도심에서는 나이 든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젊은 커뮤니티'라는 것이 저의 인상이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당시 20대였던 저조차도 조금 겁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면 사회적 반발이 크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젊은 사회여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던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폭이 좁은 에스컬레이터는 우리나라에도 설치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인분의 공간만이라도 있으면 걸어서 오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는 옆에 찰싹 붙어서 가방도 앞으로 안고 있어요. 누군가랑 부딪히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미리 방지한다는 면에서요.

☞ 한자에 좌우 대칭 글자가 많은 이유는 중력

한자라는 문자는 원래 표의문자, 즉 뜻을 글자로 표현하는 문자다. 가장 직관적인 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시각적 이미지다. '뫼 산(山)'이라는 한자는 산의 형상을 나타낸 글자다. 이 세상과 자연의 사물들 중에는 좌우 대칭이 많다. 그래서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도 좌우 대칭이 많고, 한자에도 좌우 대칭인 글자가 많은 것이다. ... 그렇다면 자연의 사물은 왜 좌우 대칭일까? 그것은 물론 중력이 존재하기 떄문이다.(67쪽)

한자를 보면서 중력을 떠올리다니 정말 물리학자의 두뇌구조가 신기한데요, 사실 생각해보면 저자의 생각이 아주 이치에 맞습니다. 한자 중에서도 '부수'로 사용되는 아주 기본적인 상형문자의 경우,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형, 즉 실제 모양을 딴 문자이므로 좌우 대칭이 많겠다 싶었어요. 사실 좀 더 복잡한 한자들은 여러 가지 기본 한자들을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낸 것들이 많지요.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가장 안정적인 형태가 좌우 대칭의 형태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코야키와 장수풍뎅이의 공통점 : 겉바속촉의 비밀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며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형태를 유지하려면 반지름에 상한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겉 표면의 두께를 유지하면서 다코야키 반지름을 늘릴 수는 없을까? (98쪽)

이 생각을 하면서 초시류, 갑충류라는 장수풍뎅이, 딱정벌레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갑충류는 앞날개가 딱딱하고 속에 비늘 같은 날개가 숨어있지요. 정말 대단합니다. 장수풍뎅이가 아무리 커도 반지름이 어느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며 다코야키의 겉바속촉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크기가 그만큼이 아닐까 하는 논리에 이르는데 정말 공감이 되었습니다. 다코야키를 먹으면서 장수풍뎅이 생각을 하면 그 다코야키가 맛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너무 재미있고 기발한 발상이었죠.

☞ 히스테리시스 현상

자석이 아닌 강철에 다른 강한 자석을 붙이면, 그 강철이 자석이 된다. 붙였던 강력한 자석을 떼도 강철은 자성을 계속 띠고 있다. 다시 말해 자성이 없던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자석을 한번 갖다댔다는 지금까지의 이력을 강철이 '기억'하고 있다. 이 현상을 '히스테리시스'라고 부른다. (73쪽)

히스테리시스 행동 현상과 그 이론을 깨닫고 나서 이 이론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인간의 온갖 행동 배후에 숨은 물리 이론을 탐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인생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단순한 물리 이론에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74쪽)

뼈속부터 문과생인 저에게 큰 감동을 준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독서에 큰 영향을 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이 물리라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독서도 많이 하고 깊이와 폭이 넓은 친구여서 늘 본받으려고 하는 친구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 심오함을 제가 헤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애들 물리 관련 책부터 좀 쉬워 보이는 물리 책들을 조금씩 접해 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주가 곡선에서도 아무리 오르거나 떨어지더라도 이전의 최고점 최저점이 저항선으로 작용하듯이, 인간의 행동에는 우리의 경험이 '기억'이 되어 그 경험을 하기 전과 후는 분명히 다른 겁니다. 각 개인에게 어떤 특정한 경험은 인생을 뒤흔드는 변곡점이 되기도 할 테죠. 저에게는 그런 경험이 무엇이었을까 생각도 해 보기도 하고요.

'히스테리시스'는 기억하기도 쉬워서 앞으로도 잘 안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저자는 수트케이스 바퀴가 굴러가며 내는 소리에도 보도블록의 기하학 패턴을 생각하며 여행의 맛을 느낍니다. 저는 유럽을 여행해 본 적은 없어서 모르지만, 유럽의 유서 깊은 거리들의 돌로 깔린 보도들은 수트케이스를 끄는 여행자들에게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공항에서 매끈한 바닥을 끌고 가는 느낌도 좋고, 보도블록 위를 덜커덩거리며 걷는 느낌도 좋습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일본의 느낌이 다른 것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인천 공항 전반에 흐르는 냄새, 그리고 일본 공항, 지하철, 전철 등에서 나는 냄새들이 각 지역을 갔을 때 묘한 향수와 반가움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외에도 너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습니다. 그 에피소드들에서 물리학적 개념과 사고법을 이끌어내니 깊이 들어가는 공식 등은 모를지라도 거시적으로 이해가 정말 잘 됩니다. 저자는 유튜브 등을 통해서 일반 독자들, 학생들과도 열린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물리학이라면 문과생도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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