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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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오랜만의 장편소설 <꿀벌과 천둥>은 피아노 경연대회를 그린 본격 음악 소설이다. 
무려 700쪽에 달하는 볼륨감 있는 작품인데, 가상의 도시 요시가에를 배경으로 1차 예선, 2차 예선, 3차 예선, 본선 과정을 높은 밀도로 그리고 있다. 
에이덴 아야, 가자마 진,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다카시마 아카시 등이 주요 인물인데, 다들 번득이는 음악성을 지닌 천재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다들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연을 보유하고 있다. 천재 소년이 등장하는 파리에서의 예선을 그린 소설의 도입부는 특히 매력적이어서, 빨려들듯이 읽어나갔다. 피아노 경연대회의 모든 곡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곡이나 연주에 대한 묘사를 음악이 아닌 '언어'로 수려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 곡들을 불현듯 찾아 듣고 싶어진다. 유투브를 뒤지면 다 나오니까 몇 곡은 틀어놓고 읽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음악을 하나하나 들으며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걸 싶기도 했고. 지금 찾아보니 '꿀벌과 천둥 수록곡 선집'이 CD로 8월 24일 발매된다는 소식!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나 보네.

취재를 11년, 집필을 7년간 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는. 워낙 뛰어난 천재들 간의 독기 없는, 악인도 없는 경쟁을 다루다보니 뒤로 가면 반전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건 없다.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스토리의 힘은 좀 주춤하는 느낌. 만화 <피아노의 숲>을 워낙 좋아하는데 둘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롭다. 
2017년 156회 나오키상, 일본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다 리쿠가 추리, 미스테리 쪽에 특화된 작가기는 한데 청소년들의 걷기를 담담하게 <밤의 피크닉>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 걸 생각하면, 이번 작품이 가장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음악이라는 소재와 긴 분량이 장벽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서점대상을 받았다는 건 대중적 검증이 됐다는 뜻이니까.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고, 작가 사인이 인쇄된 손수건을 이벤트 증정품으로 냈다. 

 

 

 


기술이 이 정도로 엇비슷하면 나머지는 어떤 ‘신호‘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특출한 재능, 명확한 개성이 있는 아이라면 모르지만 합격선을 가르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신경 쓰이는‘ 아이, ‘마음이 술렁거리는‘ 아이, ‘눈길을 끄는‘ 아이. 망설였을 때, 결국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불확실한 감각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콩쿠르에서 미에코는 자기가 순순히 ‘더 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28p

엄마, 홍차는?
그렇게 말하려던 아야는 대기실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진하고 달콤한 홍차를, 체온에 맞춰 보온병에 넣어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곁에 없었다.
아야는 동요했다.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거대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58p

연구 결과 ‘낭만적인‘ 소리는 다분히 여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빈약한 소리, 힘겨운 소리로는 안 된다. 갓 말린 보드라운 이불처럼 폭신폭신하면서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 실로 연인들의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처럼 ‘물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물기‘를 표현하려면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군더더기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근력이 필요하다.(중략) 낭만적인 소리를 내려면 강인한 파워가 필요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것은 곧 ‘어른‘이라는 존재가 갖춰야 할 요건이기도 하다.
마사루는 그런 생각을 했다.
더 강해져야 해.
467p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진은 도가시가 꽂운 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500p

일렁거리는 시간의 흐름 밑에 가라앉은 고독, 평소에는 못 본 척하는 고독, 느낄 새도 없는 일상생활 이면에 찰싹 들러붙어 있는 고독, 아무리 다들 부러워하는 행복의 정점에 있어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도, 역시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등에 업고 있다.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절망밖에 없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피해왔던 근원적인 ‘고독‘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독을, 찰나를, 생물이 지나온 기나긴 세월로 보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5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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