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는 기간에, 전체 1215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려니 중압감이 밀려 온다. 책 사이즈도 커서 들고 다니기도 손목이 아파 나중에는 집에서만 읽었고, 글씨도 너무 작아 침대에서 읽기엔 불편할 정도였다. 워낙 분량이 많고 앞 뒤 여백이 적어 애초에 감동 문구와 약간의 줄거리 내용을 다른 종이에 적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10장(A4)이나 되어서, 책을 다 읽고 이걸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빨리 읽었어야 하는데, 게으름의 늪에 빠져서 오랜 기간 읽고 나니, 내가 왜 이걸 감동 문구로 적었는지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기도 했다.
예전에 읽은 Anna Karenina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작품이었다. 톨스토이가 왜 이 작품을 시, 소설, 역사 연대기가 아니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펑펑 눈물을 흘렸는데, 마지막에 그의 철학적 담론이 나의 심금을 크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역사가 기록되는 방법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 했다. 나의 영웅은 바로 진실( My hero is truth.)이라 했던 그가, 특정 기간(1805-1812)의 러시아인들에 대한 삶의 진실을 철학적 담론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Volume 1~Volume 4까지는 러시아 귀족들의 삶과 전쟁이야기가 교대로 전개된다. 워낙 등장인물이 방대해서 누가 주인공인지 혼동스럽기도 했다. Princess Marya, Natasha가 주로 등장하는 러시아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 사교 모임, 사랑 고백이 이어질 때는 소설을 읽는 듯 했으나, Prince Andrei, Pierre, Nicolas가 참전한 전쟁편에서는 그냥 역사책 같았다. 160명 이상의 실제 인물과 톨스토이가 Crimean War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진 전쟁 이야기는 용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유일하게 패했다는 Bordino 전투는 내용이 더 많기도 하고 지도까지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엄청 몰입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모두가 회의적일 때 Bordino 전투의 승리를 확신했으나 노익장으로서 많은 비난을 받았던 총사령관 Kutuzov의 감동적인 문구가 있다. 인내와 시간(patience and time)이 그의 전쟁 무기였던 총사령관이 쫓기는 프랑스 군인들을 향해 보여주는 자비로운 표현이다. “그들이(프랑스 군대) 강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동정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수 있다. 그들 또한 사람이다( While they were strong, we took no pity on ourselves, but now we can pity them. They’re also people. p. 1089)”
Bordino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Moscow를 프랑스 군대에 넘겨 준 것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따랐다. 그러나 그는 약세로 몰린 군대와 Moscow 둘 다를 잃느냐 혹은 Moscow를 넘겨 주느냐의 선택에서 후자를 선택하며 Moscow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에 탄 것에 대해 맹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Moscow에서 마침내 쫓겨나가는 프랑스 군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말하고 있다. 총사령관으로서, 엇갈린 평을 받았던 Kutuzov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내용을 톨스토이가 담고 있다.
한 영웅이나 혹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올바르게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We can know only that we know nothing. p. 348)”라는 표현이 있었다. 나폴레옹이 유일하게 패배한 Bordino 전투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나폴레옹은 Moscow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처럼 철저하게 준비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철저하게 지시하고 명령을 내렸으나 그는 결국 실패하고 쫓겨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과거 역사가들은 인류의 역사를 신의 직접개입과 신이 의도하는 목적으로 설명했다. 즉, 재앙이 내리는 경우 인간의 과오에 대한 신의 징벌로 해석을 했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이를 부인하고 영웅과 그의 목적으로 해석을 하려 든다. 그러나 과연 나폴레옹 같은 영웅으로 인해 그 전쟁이 일어 났을까? 이런 해석은 곧, 뜻밖의, 이해할 수 없는, 알려지지 않는(unexpected, incomprehensible, unknown) 무수한 우연들(coincidence, accidents)을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그 어떤 힘(by what force)이 60만명의 병사들로 하여금 죽음을 불사하며 전쟁에 참여하게 했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말하면서 수백만명을 서로 죽이고 참수형에 처하게 했는가? 왜 종교혁명이후에 서로 학살을 하고, 프랑스 혁명 동안 서로를 처형했는가? 현대 과학, 역사, 문화, 추상화(자유, 평등, 진보 등과 같은 대의 명분)로도 이 사건들 뒤에 작동한 힘(power)과 원인(cause)을 밝히는데 실패했다.
왜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왜 사과가 익어서 떨어지는지 이유를 모르듯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누군가가 만든 법칙이고 섭리에 의해서, 그렇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반복되는 우연과 사건(coincidence, accidents) 뒤에 작용하는 힘(power, force)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증명할 것인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변 상황, 시간,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 내 팔을 내 의지로 올리는 것 조차, 과거로는 할 수도 없고, 약간의 장애물이 있는 있어도 들지 못한다. 천문학과 역사에 대한 비유가 마지막에 나온다. 우리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모순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에 느끼지 못하는 그 움직임을 인정함으로써 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는걸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 독립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하다고 인정함으로써 모순에 도달하게 된다(실제 주변 상황, 시간, 공간의 제약이 있기에). 반면에, 외부 상황, 시간, 공간에 의존함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그 법칙과 섭리가 무엇인를 Pierre, Marya, Prince Andrei를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freedom)을 부인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의존성(dependence)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한 편의 철학서적과 같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자신의 주장을 펴기위한 궤변도 아니고 설득력있는 논리도 곁들여 있다. 뒷부분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이해를 다 못해서 나중에 다시 읽으려고 한다. 올해 첫날부터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우연일까? 에필로그에서 그 동안의 많은 궁금증이 모두 풀리는 느낌에 많은 눈물을 쏟게 된 것이 우연일까? 요즘 들어 자꾸 일어나는 우연들 뒤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감상의 눈물을 넘어 깨달음을 얻음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