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aperback, 미국판)
Chbosky, Stephen / Pocket Books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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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목표중의 하나는 매일 일기를 꼭 쓰는 것이다. 적지 않은 분량의 일기를 매일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고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영향으로 일기 쓰는 습관을 들인 나는 일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일기를 쓰겠다는 나의 결심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기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일기는 나를 지치지 않게 지켜주는 원동력이었다.

일기가 성장하기 위한 자신과의 대화라면, 편지는 친구를 통해 마음을 열며 정신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다. 주인공 Charlie는 Dear Friend의 형식을 빌어 1년간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에게 쓰는 일기 형식을 넘어 들어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 마음을 열지만 끝까지 대상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한다(listen and understand)는 전제하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치유이고 위안인지도 모른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된 존재(wallflower)였던 주인공 Charlie의 모습은 청소년이 아니어도 어른의 자화상으로서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 너무나 좋아하던 이모 Helen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친구 Michael의 자살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받아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던 Charlie는 삶이라는 그물 속에 자신을 어떻게 맡길지 몰라 힘들어 한다.

그는 싫어서가 아니라 삶에 어떻게 참여하지 몰랐던 것이다. 결국, 가족, 친구들(Patrick and Sam)의 도움과 영어 선생님(Bill)의 도움으로 많은 책을 읽고 에세이를 작성하며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서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당연, 익명의 친구에게 쓴 편지도 그의 정신적 독립에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읽었던, To Kill a Mockingbird(앵무새 죽이기),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의 파수꾼), The Great Gatsby(위대한 갯스비), Walden, Hamlet, The Fountainhead 등의 책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된 계기가 된다.

알콜중독자에게 있던 두 아들의 비유가 책에 나온다. 한 명은 아버지때문에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아서 목수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의 아들은 아버지때문에 술꾼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원망하고 핑계될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이 있다. 또한 과거의 상처와 아픔도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닌다. 비록 과거를 선택할 힘은 없을지라도, 과거로부터 어디를 향해 갈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고 희망을 던지고 있다. 과거로 인해 현재에서 다시 과거의 그늘로 들어갈 수도 있고, 두려움을 벗고 삶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며 미래로 갈 수도 있다. 여전히 선택은 있다.

영어 선생님 Bill은 ‘우리가 가끔 삶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사용한다고 했다.’ (It’s just that sometimes people use thought to not to participate in life.) 여기서 ‘참여하다(participate)’ 는 주인공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wallflower였던 Charlie는 주변사람들의 많은 도움으로 마침내 삶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좋아하는 Sam에게도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보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떠나보낸 그가, 이제는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라 편지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의 파수꾼)’가 그러했듯이 이 책은 여전히 미국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도서이지만 일부 보수적인 어른들에 의해 금서가 되었다고 했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은 각자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여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렵다. 또한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모습도 다양할 것이다. 각기 다른 색깔과 아픔을 지닌 모든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하고 소중하다( Everyone is special in their own way. p. 182)는 것을 인지하면 일어서기가 쉬울까?

각자의 상처(scar)가 별(star)이 되어 더 넓은 그릇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기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픔이 있는 모습조차 소중하며 누구나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가족, 친구, 선생님으로부터도 확인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또한 어렵다면, 책, 일기, 편지까지도 슬픔의 수렁에 있는 자신을 꺼내주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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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한지 한 달이 넘어서 리뷰를 쓰기가 힘들다. 어디든 들고 다녔으나, 읽은 것이 아니라 책장을 넘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다 끝내고도 리뷰를 쓰지 못해 이틀을 더 기다렸다. 지난 팝송을 들으면 그 당시의 상황과 함께 사람들이 따라온다. 노래와 함께 과거의 추억이 넘어 오듯이, 나중에 이 책을 기억할 때, 큰 슬픔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계속 책을 들고 있었고,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밀란 쿤데라의 은유와 상징을 너무나 사랑한다. 한 달이라는 기간 때문에, 전체 줄거리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함이 너무 속상하지만, 내 심금을 울린 마법의 은유는 너무도 많아 빼곡히 적어 두었다. 나중에 두고 두고 읽어도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는 보석같은 문장이 너무도 많다. 줄거리가 진부해도 난 충분히 작가의 언어에 심취했다.

Chantal이라는 한 여인은 나이들어감에 대한 서글픔과 고통으로 인해 정체성 상실의 겉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곧, 체코 태생으로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여, 체코와 프랑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밀란 쿤데라는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Chantal의 애절함과 절규는 너무나 가벼운데 내게는 절대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내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Men don’t turn to look at you any more.)’ 인정의 욕구가 담긴 이 가벼운 문장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 던져질 때 듣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해서는 안되는 말이지만, 나는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시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선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으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가볍고 경박하다 치부해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그렇게 정체성이란 실체가 혼자서 존재하기 어렵고 애초부터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먹고 살도록 기본값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난 그동안 무수히 많이 이를 부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가시적 결과와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실상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나를 기억해 주지 않으며, 나를 바라봐 주지 않기에 순간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고 깊은 좌절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정체성(Identity)이란 단어는 내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아서 평생 답을 못 찾을지 모른다. 사실 나도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모르며, 사람들이 나의 진가를 보아 주기를 기대하는걸로 보아, 나 역시 타인의 생각에 매우 신경쓰고 있다. 남자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익명의 편지에 설레는 그녀 Chantal의 가벼움이 내 모습일 수 있어 슬펐다.

이름을 불러주길 기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달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애쓰지 않는 사람들이 부럽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확인된 정체성의 기반은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걸 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함을 얻고, 인정의 욕구에 목말라 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현재 모습 그대로 ‘괜찮다 사랑스럽다’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올까?

이 책에서 3가지 종류의 권태가 나온다. passive boredom, active boredom, rebellious boredom. 내가 나를 정의하고, 나다움을 자신있게 말하는 그 날을 위해 지금은 active boredom을 극복하자.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내 안에 열정과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며, ‘왜’ 하는지를 잘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의 정체성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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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6 0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rendipity 2022-03-16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ㅜ
 

중학교 2학년 정도되는 Holling Hood의 성장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이면에 역사, 정치, 문학을 소재로 담고 있는 1967-68년대 배경의 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이라 하기에는 소재가 무거운 감이 있고 분량도 많지만, 작가의 위트와 재치로 중간 중간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 많다. 작가의 위력은 대단하다. 화가난다고 해서 반드시 목소리를 높이거나 얼굴을 짜푸리지 않아도 나의 분노를 세련되게 표출할 수 있는 법이 있음을 배운다.

Vietnam War(55-75), Robert F. Kennedy의 암살(68), Martin Luther King의 암살(68)등의 무거운 소재를 통해 어린 Holling과 누나 Heather는 전쟁과 인종차별에 대항하며, 위압적인 아버지의 사고로부터 벗어나려는 힘겨운 싸움을 한다. 어린 Holling은 반전운동을 하는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족간에도 이념 및 정치 성향이 달라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나 어린 나이에는 부모의 사고에 매몰될 수 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상이 주입될 수 있다. Holling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부모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순종을 강요할 수도 있다.

알아도 하지 않는 것이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것도 있다. 요즘처럼 큰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성숙과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크게 느낀다. 연령에 상관없이, 무지함을 벗기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여 있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낼 수 있고, 틀린 것을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무지함이 정치나 교육 분야가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 나 자신의 정체성 조차 모르거나 틀리게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도 난다.

역사와 정치라는 무거운 소재 외에 고전 문학 소재가 있다. 수요일마다 다른 학생들은 카톨릭 종교를 가지고 있어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가지만, 유일한 장로교 신도(prebyterian)라는 이유로 학교에 남아 Mrs. Baker 선생님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처음에는 수십개의 칠판 지우개 털이 등의 일을 시키시더니, Shakespeare의 문학을 읽게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Holling이 Shakespeare 문학을 즐기게 되고, 둘 간에 이어지는 문학 토론이 이 책의 백미이다.

The Merchant of Venice, The Tempest, The Tragedy of Macbeth, Romeo and Juliet, The Tragedy of Hamlet등의 책을 읽고 선생님이 주는 과제를 풀거나 에세이를 쓰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심지어 주인공은 크리스마스 전날 The Tempest 연극에 참여하여 멋진 공연까지 하게 된다.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주옥같은 문장은 매마른 내 가슴에 단비를 뿌리곤 했다. 시간이 되면 고전을 다 섭렵하며 불모지가 된 내 감성에 열정의 불을 당겨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의 문장은 같은 내용이지만 역시나 요즘 표현과는 많이 다른 독창성과 깊이가 있는 듯하다.

역사, 정치, 문학, 가정교육 등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청소년 문학이었다. 우리는 어린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거나 색깔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 우려하거나 자제시키려 하는 것 같다. 물론 60년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가족의 건축 사업을 위해 무조건 얌전히만 행동하라고 강요한다. 심지어 경제 관념과 관심도 그러하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도 어린 시절부터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걸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치와 경제 관념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는데 적절한 나이와 타이밍이 꼭 어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돈, 즉 경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속물일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공무원이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는 정치 색깔은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은 변화되지 않아서 내적 갈등, 외적 충돌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한쪽만 보고 있어서 다른 쪽을 보려면 자신의 깨어 있는 사고와 의지,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듯하다. 내 주변에 누가 있는가, 그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어떤 책과 언론을 접하는가에 따라 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머물러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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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San Nicolas Island에서 1835년에서 1853년간 홀로 살았던 Karana 라는 인디언 소녀에 관한 실화이다. ‘혼자’라는 단어 속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외로움, 두려움, 기다림’ 이라고 하면 너무 고전적인 표현이 될 것인가? 요즘엔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하니, ‘편안함, 자유, 고요’ 이런 단어가 연상된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겉 표지와 Lois Lowry 작가의 서두를 읽고, 전자의 감정으로 시작했다. 사실, 내 마음 속에 혼자는 외로움이란 생각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책 전반에 펼쳐지는 씩씩하고 용감한 소녀 Karana의 생존기는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중엔 평화로움까지 느껴지게 한다. 어쩌면 섬에 살았던 인디언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제 3자인 작가의 목소리로 전개된 이야기라서 그녀의 감정이 절제되어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진 채 오래 살아서 구조된 후에도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 전반에 그녀의 감정적 혹은 심리적 묘사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50명 넘게 살던 인디언들은 수달 채집을 위해 섬에 들어온 러시아인들에게 대부분 피살을 당하고 일부 소수는 다른 배에 구조되던 중 Karana는 거센 파도때문에 승선하지 못한 동생 Ramo를 구하려다 둘만 섬에 남게 된다. 동생이 야생 개에 물려 죽게 되고 홀로 섬에 남게 된다. 신변 보호를 위해 무기제작, 안전한 은신처, 뗏목, 식량 저장, 물고기 잡기 등을 하며 높은 언덕에 올라가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린다.

홀로 남아 무서운 야생 개나 여우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던 Karana의 마음 속에 외로움과 슬픔이 차지할 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외로움’이란 단어는 현대의 물질적 풍요 혹은 그로 인한 권태가 주는 사치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당장 동물의 위협이나 식량이 없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물학적 기본권과 매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면 외로운 감정과 씨름할 시간은 따로 없을 것이다. 많이 가지고 있고, 어쩌면 다 가지고 있음에도 뭔가 비어 있는 듯한 공허감은 감사를 잃은 교만함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진 것을 잃었을 때, 지혜를 통해 문제해결력을 찾고 평정심과 용기를 발휘하며 Karana 처럼 잘 대처해 나갈지 의문이다. 없음에서 풍요를 얻은 환경은 적응하기 쉽지만, 반대가 될 경우에는 진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며 진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딴 섬에서 18년간 홀로 생존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생각거리를 던진다.

유의미하고 목적있는 삶에 대한 고민 혹은 공허감과 외로움에 대한 무서움도 내가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 내 머리속으로 들어와 나를 괴롭힌다. 정작 하루가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을 때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한다. 결국 내 마음의 빈약함과 가난은 교만함이 키운 사치이므로 감사를 회복하라는 신호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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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of Green Gables(빨간 머리 앤)’와 항상 비교되는 순수하고 맑은 소녀의 성장 소설이다. 역시나, 순수를 만나고 나면 때묻은 내 마음을 만지게 되고, 내가 입고 있는 먼지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고민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걸 알아도, 책을 덮을 때 만큼은 나도 모르게 내가 맑아진듯한 착각을 하기도한다. 물론 주인공 Rebecca가 한없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빨간 머리 앤’과 첫번째 차이점은, 일단 영어가 훨씬 어려웠다. 1903년에 발간되기도 했지만, 언어의 깊이가 다르고, Rebecca는 글쓰기에 있어 신동과 진주(prodigy and pearl)라 불리는 문학소녀라서 마음을 울리는 주옥같은 문장이 매우 많았다. 그녀의 아름답고 주옥같은 시나 산문을 읽으며,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새삼 느낀다. 말 한마디가 치명적 실수를 부를 수도 있고, 주변을 은은한 향기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언어 사용의 중요성에 대하여 절감하게 된다.

두번째 다른 점은 Rebecca의 재정적 후원자인 Adam Ladd와 지적 후원자인 선생님 Miss Emily Maxwell 2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Adam은 Mr. Aladin이라 칭할 만큼 Renecca가 어려울 때마다 요술처럼 나타나는 백마탄 왕자 역할이라 현대판 신데렐라같은 비현실적 요소가 있다. 이것이 흥미를 더하기도 하지만 개연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힘들 때마다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사용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희망 고문이다.

희망을 갖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Rebecca의 매력은 긍정적 언어와 적극적 행동이 일치하며, 이것이 어려운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이모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졸업을 하고, 보장된 취업 자리가 있었으나 엄마의 간병으로 기회를 놓친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살아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준다고 표현하며 미안해하는 엄마를 위로하기까지 한다. (Wasn’t it good to be alive? To be alive makes up for everything.)

역경(ordeal)과 성격(personality)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Rebecca의 또 다른 매력은 시련과 고난에도 변치 않는 순수와 활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나서도 분노와 폭력의 언어에서 자유함을 얻고, 구름 속에 가리워진 희망을 보며 타고난 본연의 활력과 열정을 유지하는 것은 책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성격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던 나는 Rebecca를 보며 비결을 묻고 싶어진다.

불가피한 삶의 멍에로 인해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항상 ‘푸른 4월의 옷을 입은 희망(Hope clad in April green)’이 다음과 같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와 함께 나이들어 가자,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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