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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cture of Dorian Gray (Paperback)
오스카 와일드 지음 / Penguin U.S / 2003년 1월
평점 :
새 책을 펴면 앞 뒤 백지(flyleaf)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책 속의 감동 문구를 적기 위해서다. 물론 읽는 중간에 밑줄치고 옮겨 적느라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긴 하지만, 나만의 즐거운 독서법이다. 책을 끝내고 나서 백지에 쓴 감동 문구(혹은 등장인물, 장소, 날짜 등)를 보고 나면 전체 줄거리가 잡히기도 한다. 백지에 쓴 감동 문구가 유난히 많았던, 그래서 읽기가 힘들었던 고전이다.
고전의 스토리는 많이 알려져 있는 상태로 읽는 편인데, 이 책의 인지도는 높으나 줄거리를 모르고 읽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었다. 영어가 어려운 반면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 흐름을 쫓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것이 이리 힘든 일인가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내겐 책을 읽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쉬운 일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번엔 정반대였다. 거의 한 달만에 책을 편 이유도 있고 Lord Henry의 경구(epigram)을 다 이해하지 못함도 있다.
그의 번득이는 재치(rapier wit)는 가히 감탄할 만하고 매력적이다. 순간 그의 촌철살인에 길을 잃고, 그의 논리에 속아 반하게 된다. 듣는 순간 격하게 공감하게 되어 내가 그 동안 틀리게 알아 왔구나, 혹은 왜 미처 그걸 몰랐나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내 생각을 들켜서 부끄러운 느낌까지 든다. 내 잠재의식 속 부끄러운 생각마저 속 시원하고 세련되게, 거기다 막힘없이 쏟아내는 Lord Henry에게 Dorian Gray가 반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미와 젊음 그리고 감각적인 삶의 절대가치를 부르짖는 Lord Henry와 그가 준 책의 영향으로 영혼을 팔아서라도 젊음을 유지하고자 했던 Dorian Gray가 이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두렵고 무서운 것도 당연하고, 누구나 찬미하는 미모를 겸비한 사람은 특히나 더 두려워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추함과 마주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Dorian Gray는 자신의 초상화 속에 보이는 추함이 너무 싫어서 초상화가 전시되는 것을 거부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위층으로 숨겨두게 된다. 영원히 안 볼 수 있다고 안보고 살고 싶었다. 그 초상화는 그에게 그의 양심(conscience)이었다. 외적으로 탁월한 외모, 젊음, 교양, 부를 가지고 있지만, 본연의 자신을 만나야 하는 두려움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향수, 음악, 보석, 자수 등에 심취해야 했다.
외적인 미와 젊음은 James Vane에게 살해당할 뻔한 위기에서도 그를 구출해 주지만, 천하를 얻고도 영혼(soul)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정작 Dorian Gray를 괴롭힌 것은 살아 있으되 죽은 그 자신의 영혼이었다. (It was the living death of his own soul that troubled him.) 외적으로 아름다운 삶이었으나, 미와 젊음을 지키기위해 마약 및 살인까지 해야 했던 그는 결국 초상화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의 타락을 견디지 못하고 초상화를 찢으며 죽게 된다.
그의 미모는 그에게 가면이었고 젊음은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초상화만 없애면 그의 과거를 없애는 것이고 자유로움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슬픈 결말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결국 모든 것은 허상(illusion)이고 망상(delusion)인 것일까? 도입부부터 미와 감각적 삶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던 Lord Henry경에 홀딱 넘어갔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마음 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표현이 있었다. 나 역시, Dorian Gray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위선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지적 시점으로 내 삶이 조명되지 않아서 아직 심판대에 오르지 않은 것 뿐이다.
나는 나의 초상화를 마주함에 있어서 얼마나 당당할 것인가? Dorian Gray 보다 더 몸부림을 치며 끝까지 거부할지도 모른다 ㅜ.ㅜ
Epigrams
1. passions that have made you afraid, thoughts that have filled you with terror, day-dreams and sleeping dreams whose mere memory might stain your cheek with shame (p.21)
2. The only difference between a caprice and a life-long passion is that the caprice lasts a little longer. (P. 26)
3. To be good is to be in harmony with one’s self. (P.76)
4. The only horrible thing in the world is ennui. (P.194)
5. Knowledge would be fatal. It is the uncertainty that charms one. A mist makes things wonderful. (P.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