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빼앗긴 자들 ㅣ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평점 :
그 어떤 행성도 이상적이지 않다는 점.
사회 체제에 대한 세계관 실험같은 이야기.
물리학자 개인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기력한 상황. 그러나 사회 변화의 시작은 작은 균열일 수 있다는 점도 상기 시킨다.
작가의 사상이 무엇을 가르키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가볍게 읽을 sf소설로 골랐다면 당황스러울수 있는 묵직함이 있다.
초반의 느린 진전의 독서가 중후반부터는 꽤 흥미로운 속도가 되었다.
- 그는 왜 우주선 안에 여자가 없느냐고 물었고 키모에는 우주 화물선을 움직이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쉐벡은 역사 수업과 오도의 저작에 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그 동어 반복이나 다름없는 대답을 얼추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의사가 거꾸로 아나레스에 대해 물었다.
“쉐벡 박사님, 그쪽 사회에선 여자들이 남자와 완전히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면서요, 사실입니까?”- 24
- 하지만 어떤 사회도 존재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해. 우린 고통을 막을 수 없어. 이런 고통이나 저런 고통은 가능할지 몰라도 고통 자체는 안된다고. 사회는 오직 사회적인 고통, 불필요한 고통만 덜어 줄 수 있어. 나머지는 남는 거야. 그 뿌리, 그 실재는. 여기 우리 모두가 비탄을 알게 되겠지. - 75
- 봐, 형제, 개인의 창조력이 좌절되는 건 우리 사회 탓이 아니야. 아나레스의 가난 때문이지. 이 행성은 문명을 떠받치게 되어 있지가 않아. 우리가 서로를 내버려 두면, 우리가 공통의 선을 위해 개인적인 욕구를 버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 황량한 세계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인간 결속만이 우리의 자원이야. - 192
-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행성, 삶......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돌멩이가 보이겠지. 그리고 매일 매일 삶은 힘겨운 일이고, 당신은 지치고 패턴을 잃어버리지. 거리가, 간격이 필요한 거야.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달로 보면 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죽음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보는 거야. - 217
-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다 그렇듯 파에도 놀라우리만큼 시야가 좁았다. 그의 정신에는 진부하고 미성숙한 면이 있었다. 깊이, 애정,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그의 정신은 미개한 도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잠재력은 진짜였고 불구일지는 몰라도 상실되지는 않았다. 파에는 아주 영리한 물리학자였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리학에 대해서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다. 독창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기회주의와 어디에 이득이 있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 몇 번이나 그를 가장 유망한 분야로 이끌어주었다. - 316
- 혁명은 당신들의 영혼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 342
- 이거야. 우리가 발령을 거부했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는 것. 사회의식이 개인의 정신과 팽팽히 균형을 맞추는 대신 지배하고 있다는 것. 우린 협력하고 있는 게 아니야...... 복종하고 있지. 우린 쫓겨나는 것, 게으르고 역기능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고 불리는 것을 두려워해. 우린 스스로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이웃들의 견해를 두려워해. 날 믿지 않겠지. 하지만 선을 넘어서려 해봐.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느낌인지 보라고. 그러면 당신은 티린이 무엇이었는지, 왜 난파하고 길 잃은 영혼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녀석은 번죄자인 거야! 우린 소유주의자들처럼 범죄를 창조해 낸 거야. 한 사람을 우리 허용 범위 밖으로 몰아내고, 그런 다음 그걸로 그를 책망하지. 우린 인습적인 행동의 법률을 만들고, 주위에 온통 벽을 쌓고서는 그게 생각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벽을 보지도 못해. - 374
- 정말 이상하군요. 나는 당신네 행성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해요, 쉐벡. 당신들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라스 인들이 말한 정도만 알지요. 물론 그 행성이 황막한 폐허라는 것과, 어떻게 식민지가 건설되었는지, 그것이 독재가 아닌 공산주의 실험이고 170년 간 살아남았다는 것은 알아요. 오도의 저서를 약간 읽어보았을 뿐...... 나는 그것이 이제는 우라스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멀리 떨어진 흥미로운 실험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틀렸습니다. 그렇지요? 그건 중요해요. 어쩌면 아나레스가 우라스의 열쇠인지도 몰라요...... 니오의 혁명가들, 그들 역시 같은 전통에서 나온 거죠. 그들은 단순히 봉급을 올리거나 동원령에 저항하려고 파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아나키스트들이죠. 그들은 권력 자체에 대항하여 파업하고 있어요. 사실 시위의 규모나 대중적인 감정의 강도, 그리고 공포에 질린 정부의 반응, 이 모두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왜 그렇게 많은 폭동이 일어나는지, 여기 정부는 전제적이지 않은데, 사실 부자들은 아주 부유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노예도 아니고 굶주리지도 않는데, 왜 빵과 연설만으로 만족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민감한 걸까? ......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 388
- 제 종족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천 번의 천 년 동안 문명을 일구어 왔지요. 그런 천년기 몇 백 번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해 봤습니다. 아나키즘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시도해 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어느 태양 아래서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개개의 생, 하나하나의 삶이 새롭지 않다면 왜 태어났단 말입니까?
우리는 시간의 아이들이다.
쉐벡은 프라 어로 말했다. 젊은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이오 어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는 시간의 아이들이다. - 437
2023. jun.
#빼앗긴자들 #어슐러k르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