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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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순으로 국내 출간된게 아니라서 앞 뒤로 왔다갔다 읽게 되었지만, 이제 시리즈는 한권 빼곤 다 읽은 시점이 되었다.

유능하지만 골칫거리인 형사 해리가 철이드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리디머.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챙겨주던 상사 묄레르의 은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튼 그런 와중에 연쇄 살인마는 등장하고, 수사는 난항을 걷고, 그러다 짜잔 하고 해결되는 뻔한 구조지만, 시리즈물을 읽다보면 생기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가족애가 부족한 부분을 메꿔준다.

인생의 도덕적 역설, 바람만으로는 부족한 어떤 순간들,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허술한 문명이라는 기반... 시종일관 염세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지만 결국은 뭐 정의가 이기는 이야기라 다행이랄까.

그나저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리를 떠나가고 있다는게 참 현실적이어서 처량하다.

당신이 뭘 믿는지 말해주세요, 해리.
다음 약속을 믿습니다. 몸을 돌려 실눈으로 한가한 일요일 아침의 대로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비록 지난번 약속은 지키지 못했어도 다음 약속은 지킬 수 있습니다. 난 새로운 시작을 믿습니다. 이런 말은 한 적이 없지만...... 그는 푸른 등을 달고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450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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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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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방점이 찍힌 이야기.
한겨레에서 주최한 강연을 글로 엮은 책이다.

젠더 권력, 한국 남성, 대중문화, 정치, 민주주의안의 여성, 혐오에 대한 8개의 강연이다.

좋은 내용의 이야기지만, 다양한 청중을 고려하는 강연이어서 일까, 강도, 심도가 얕다고 느껴진다. 스피치라는 것은 아무래도 현장성이 중요하니 더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라는 방점도 급변하는 여성운동의 흐름에 비춰보면 조금 올드하다고 여길만한 지점들이 곳곳에 있다.

그래도 사 읽는다. 왠지 모를 의무감이 들어서.


한국사회에서, 아니, 모든 가부장제 사회에서, 젠더 문제와 관련해 가장 흔히 하는 말은 아마도 “사소하다”가 아닐까 합니다. ‘여성이 억압받고 있다/아니다’ 이런 이야기보다, 여성이 성차별의 피해자든 ‘여성 상위 시대’든 간에 어쨌든 ‘여성’만 들어가면 ‘사소하다’, ‘개인적인 문제다’, ‘집안일이다’ 등등의 담론이 대세를 이루죠. - 16, 정희진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죠. 이 말이 뭐냐면 남성에게는 퍼스널한 문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폴리티컬하다는 거예요. 여성에게는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영역도 모두 정치의 장입니다. - 24, 정희진

이 세상의 모든 범죄 중 피해자를 욕하는 범죄는 드뭅니다. 심지어 보이스피싱도 피해자를 욕하지 않아요. 그런데 성범죄는 피해자를 욕하는 거의 유일한 범죄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네가 끝까지 저항했으면 성폭력은 불가능했을것이다’, ‘네가 만만해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성범죄 피해자들 탓을 합니다. - 37, 서민

작가들은 여성인물뿐만 아니라 남성인물에게도 어떤 결함과 장애를 줍니다. 그런데 제가 남성인물에게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는 거기 부딪히고, 해결을 시도하고, 문제를 극복하거나 좌절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작품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인물에게 주어진 상황은 그저 전시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제 무의식적 우선순위가 들통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식이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작가들은 이런 불평을 하기 쉬워요. “이야기 안에서는 살인도 하고, 전쟁도 일어나는데, 여성혐오는 왜 안 돼?” 판단 착오입니다. 작가가 작품 안에서 세계의 문제를 드러낼 때는 보통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모형으로 만들면서 일종의 ‘문제적’ 대상화를 하지요.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들은 거기서 작업을 끝내지 않습니다. 대상화된 인물들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이 완결되면 작가의 의도대로 이 세계가 작품 안에 ‘투사’ 된 것입니다. 여성혐오라고 비판받는 영화는 세계의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는 데서 멈춥니다. 단지 여성이 두들겨맞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여성관객은 없습니다. 그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거예요. 관객들은 맥락을 본능적으로 구분해냅니다. 영화가 여성인물이 당면한 문제를 전시하고 지나가는지, 아니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인지. (중략) 여성이 치명적 위협으로 느끼는 상황이 작가적 고민이 느껴지기는 커녕 ‘툭’하고 장면으로 떨어진 채 지나간다면 관객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창작자가 그 상황에 윤리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무의식적인 가치의 우선순위가 반영이 된 거예요. - 72, 손아람

박찬욱 감독은 이에 대해 좀 반성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아가씨>(2016) 개봉 즈음에 JTBC <뉴스룸>에 나와 “<올드보이>(2003)를 찍었을 때 강혜정이 연기한 여성캐릭터만 진실에서 소외된 상태로 남겨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걸 해결하려는 것이 <친절한 금자씨>(2005)나 <박쥐>(2009), <스토커>(2013)로 이어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아가씨>는 박찬욱 자신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감독으로서 일정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한남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어떤 반성문과도 같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 193, 손희정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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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민음의 시 247
이상협 지음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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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인듯 대답이고, 부정인듯 긍정이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가르키고 있는 시들.


꽃은 막다르고
매번 붉고

무수한 조울의 끝장을
바람은 흔든다
새겨 둔다
잊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모자란 햇빛을 쥐어짜며
한 잎 두 잎
흔들리는 진료 기록부

치매 노인의 유서처럼 나무는
자신이 기억날 때마다 손등을 붉게 긋는다
달에서 펄럭이는 깃발처럼 몸을 뒤튼다
4월에 버릴 것은
힘이며 힘겨움이야

꽃이 죽지 않고 열매가 달린다
잎사귀 시푸른 채로 겨울이 왔다
백야의 질린 해처럼
반가운 청첩장을 받았다 - 불편한 꽃(전문)

세 시엔 읽지 않을 책을 주문한다 그걸 다 읽기로 한다 - 저절로 하루 중

귀신과 사람을 왕복하며 그들은
품에서 자라지 못한 자신을 꺼내었다 그걸
간판처럼 목에 내걸고 밀려다녔다
누적된 슬픔들이 서로를 당겼지만
각자 앓아야 하는 일이었다 - 기록 중

시작하기도 전에 슬픈 일은 많아서
네가 나를 앞질러 걷는 저녁
우리가 낳지 않은 아이들이 해변에서 모래 사람을 만든다 - 곡예사 중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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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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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가 너를 죽이려고 하는데 넌 알고 있는줄 알았지....라는 변명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다지 웃기지 않는 촌극같은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막판에 고어물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사실 남미문학을 대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다,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남성우월주의 “마치스모”가 이전에 남미문학을 접할 때보다 더더욱 불편하기에...

앙헬라 비까리오의 숨겨진 연인으로 지목된 산띠아고 나사르는 변론 한번 못한채 개죽음을 당하는데 끝내 그가 결백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바야르도 산 로만은 결혼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팔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서 집을 구매한다. 타인의 삶에 연민이나 이해가 없는 그는 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은데도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로 그려지고..... 아....ㅡ.ㅡ

대체 어느 부분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처녀가 아니어서 첫날 밤 소박맞고 비밀의 연인을 밝혀 산띠아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앙헬라가 그렇게 불행한 모습이 아닌 오히려 더 그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분일까.
그러나 자신만이 원하는 그것은 상대에게 채 가닿지도 못하고 되돌아오게 된다는 점. (차라리 그것이 더 낫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자신을 내친 이를 위해 다시 처녀가 되어간다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명이다.

죽음을 기대하는 집단 무의식이나, 명예를 위한 살인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게는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이미지로 느껴졌다.
가해와 피해가 불분명한 죽음과 삶이 있고, 죽음도 관계의 단절도 합당하다 여겨지지 않는 우연과 우연들이 모여 연대기가 되었다.

그녀는 명석하고, 오만하고, 자유 의지를 가진 여자가 되었고, 그 사람만을 위해 다시 처녀가 되어 갔으며, 자기 자신의 권위만을 인정했고, 자신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119

“얘, 산띠아고야! 무슨 일이 있었니?”
산띠아고 나사르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나를 죽여 버렸어요, 웨네 아주머니.”
그는 마지막 계단에서 넘어졌지만 즉시 일어섰다. “자기 창자에 묻은 흙을 털어 내는 조심성까지 있더라.” 웨네 프리다 이모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전 6시 부터 열려 있던 뒷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서 부엌 바닥에 엎어졌다. - 154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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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전복의 서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8
에드몽 자베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읻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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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복이란 문체의 운동 자체다. 죽음의 운동이다.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
분별없는 바다이기에, 한차례 파도로는 죽을 수 없다. - 7

그 누가 모든 책의 독서가 제거하려은 금지의 독서를 장려할 수 있겠는가?
그에 앞서 침묵에서 침묵으로, 단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자만이 유일하리라.
그러면 스스로 부재를 분리해내려는 무한한 거리에서부터 피치 못할 방기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독서를 행하리라. - 56

그가 말했다. “나는 자리 없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연고 없이 존재한다”라고들 말하리라.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그럼에도 모든 말은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 98

삶을 위한 언어가 있듯이 죽음을 위한 언어가 있음을 깨달았다는 에드몽 자베스.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한 에드몽 자베스.
질문에 질문, 긍정에 부정.....
아 잘 모르겠네....
마음이 동하면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20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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