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하다. 망설여진다. 그런데도 손에 들게 된다. 왜, 어렸을 때 머리 속에 또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의 시들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 어려서의 만남이 중요한가 보다. 학교를 비판하고 학교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것이 있으니.

 

  그것도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교과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겠다. 이렇게 교과서는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졸속으로 만들겠다는, 또 독점하겠다는 발상이 21세기에 나오더니,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서글픈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난다. 이미 그런 교과서는 필요없다고 사방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가르치는 교사들과 배우는 학생들이 반대하고 있는데도 무슨 배짱인지, 정말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그렇게라도 주입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밀어부치고 있는 꼴이라니.

 

그 교과서의 영향으로 - 내가 어렸을 때는 국어교과서도 국정이었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국어교과서로 배웠으니, 알고 있는 작가, 작품이 거의 비슷할 수밖에 -  나는 서정주는 시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삶이 그다지 칭송할 만한 삶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시 앞에서는 이상하게 관대해진다.

 

사실, 그의 시를 빼고도 좋은 시가 얼마나 많은데, 이리도 그의 시를 떼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감히 말하자면 그 놈의 학교 교육, 특히 빼놓지 않고 그의 시가 나왔던 교과서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래저래 머리 속에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의 시들이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여러 번 망설이게 하다가 결국 내 손에 들어오게 했는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전집이라서 그 동안 발표된 시집 순으로 시를 묶어 놓았는데, 그 시집들을 분류해 놓지 않았다. 그냥 시들을 순서대로 주욱 실었을 뿐이다.

 

보통은 시집 제목을 맨 앞에 놓고 또 더하면 발표 연대도 써 놓고, 그 시집에 수록되었던 시들을 수록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차례에만 시집 제목이 나오고 따로 시집 제목을 설정해 놓지 않아 이 시들이 어느 시집에 속하는지를 알려면 다시 차례로 돌아가야 한다.

 

전집이니 조금 친절을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전집들은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던데...

 

이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과거 내 속에 이미 들어와 있던 시들을 찾는 즐거움은 어쩔 수가 없다. 이래저래 과거에 읽었던 시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시전집 1권이니 서정주의 초기 시들이 묶여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배운 시들은 거의 다 초기시들이다. 그런 시들...

 

이 전집에 실려 있는 서정주 시집을 순서대로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첫시집 "화사집"에서 시작해서 "떠돌이의 시"까지 실려 있다.

 

그 중에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시들을 보면,

 

화사집 - 자화상, 화사, 문둥이

귀촉도 - 귀촉도, 푸르른 날

서정주 시선 - 무등을 보며, 국화 옆에서, 신록, 추천사, 춘향 유문, 광화문

동천 -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선운사 동구, 영산홍

질마재 신화 - 신부

 

이렇게 많이 남아 있으니... 학교에서 또 교과서에서 서정주를 얼마나 많이 다루었는지 알겠다. 그만큼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전집에도 역시 그의 친일시들은 빠져 있다는 것.

 

결국 서정주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전집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시전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교과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시인의 시와 시인의 삶을 꼭 일치시킬 필요는 없지만, 지행일치, 언행일치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특히 교과서에서는 삶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남아 있는데... 서정주 전집을 읽으며 다시 한번 국정 교과서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으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7-01-14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화상, 귀촉도, 푸르른날, 춘향유문, 추천가, 신부... 어? 다 아는 시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인의 시 중 제목만 보고도 누구의 시인지, 어떤 내용인지 안다니... 말씀처럼 교과서의 영향이 매우 크네요. 그래서 저들이 국정을 밀어붙이나 봅니다.
그래도 지금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국정교과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죠. 이번 국정도 사라지길 바랍니다.

kinye91 2017-01-14 09:38   좋아요 1 | URL
국정교과서로 배워서 그것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국정교과서 세대가 더 반대하는지도 몰라요. 국정교과서를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배웠던 것들이 머리에서 마음에서 없어지지 않으니, 더 큰 문제지요. 다양한 관점을 거부하는 국정화는 옳지 않다고 봐요. 국정화가 폐지되도록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