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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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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문득 문득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

 

그 공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에는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선다. 추억 속의 공간을 찾아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몇 번인가 찾아 갔는데, 그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친구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둘러 보기도 하고, 내 몸에 비해서 큰 책가방을 메고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언덕길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또렷하게 생각나기도 했다.

 

작년에는 또다른 추억이 담긴 부산의 옛 동네를 찾아 갔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의 동네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반하여 잠깐 방학을 이용해서 가곤 했던 그 동네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어딘지 옛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네 어귀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니 내가 찾는 곳은 한 두 블럭은 옆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억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찾아 갔다. 얼마만인가?  교문에서 강의실로 가는 길에도 대학생이 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교정의 벤치에도, 원형 운동장에도, 학생회관에도, 도서관에도 그때의 내가 그 속에 오롯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대학병원은 우리 엄마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곳이기도 하니, 장례식 날 엄마를 떠나 보내던 그 날의 내가 그 곳에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머물렀던 공간들, 스쳐갔던 공간들, 윤대녕 작가는 이곳들을 '사라진 공간들'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사라진 공간'이 아닌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버린 공간들로 남아 있다.

 

물론, 그 공간들 속에서 잊혀졌던 꿈들은 되살아난다.

 

이 책은 작가인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 부터 2013년 9월까지 연재했던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이 50 이 넘어가는 즈음에 자신이 살아 왔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간들에 대한 단상들을 이렇게 글로 썼을 것이다.

 

누구나 사라진 공간들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고향집이리라. 내 기억 속의 고향집이란 즐겁고 행복했던 곳이지만 작가에게는 유년기에 겪었던 부모와의 잠깐의 이별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이 되살아나는 공간이다. 오랫동안 찾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것일까. 스치듯 그곳에 가보게 되는 곳이 고향집이다.

 

그리고 이어서 '늙은 그녀'라고 지칭하는 어머니가 살아왔던 수많은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셋방살이 끝에 장만한 허름했던 어머니의 집,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머니는 손때가 묻은 그 집을  떠나게 되지만, 잊지 못하고 그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실린 어머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우리가 그 집을 목수한테 팔았잖니, 근데 한 달 사이에 번듯한 별장처럼 고쳐놨더구나. 마당에 따로 들였던 방도 치워버리고, 거기에 넓은 화단까지 만들어놨더란 말이다. " (p. 29)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서 조차 사라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생각하면 되살아나는 꿈이 있다.

 

어떤 여행작가는 마음이 우울하면 공항을 찾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공간은 휴게소, 공항, 기차역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공간에서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하카페, 노래방, 바다, 골목길, 사원들. 역전다방, 경기장, 음악당, 여관들, 부엌, 목욕탕, 영화관, 자동차, 도서관, 우체국, 공중전화부스, 병원, 광장 등....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났던 많은 공간들까지.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고전음악감상실, 선술집에 대한 기억들이 어느새 또렷하게 살아난다. 명동의 필하모닉은 나에게도 되살아나는 꿈들이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모든 존재는 시공간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 (우리가 )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p.p. 253~254)

 

 

그렇다. 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세월에 따라 퇴색하고 잊혀질  뿐이지, 우리가 살아왔던 그 공간에 가게 되면 오롯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들 속에서 오래전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그 공간들을 찾는 작업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 사라진 공간들을 찾아서 나들이를 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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