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쓸쓸함이 느껴지는 음색과 애수에 찬 서정적인 가사로 우리의 가슴을 와닿는 노래를 불렀던 김광석.
그는 자신의 서른 세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우리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지 언 18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아침에 잠깐 그의 노래를 검색하여 듣다 보니 하루종일 웅얼웅얼 입가를 맴도는 노래는 그의 앨범 4집 '일어나'에 수록된 곡 중의 하나인
<서른 즈음에>이다.
<서른 즈음에 -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해저문 포장마차에 앉아 한 잔의 소주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하루를 이별하는 사람의 애환이 담겨 있는 듯한 그 노래가
오늘따라 그리도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김광석의 노래는 아무리 기분이 좋은 날 듣는다고 해도, 가슴 속에 해묵은 아픈 상처를 토해 낼 것만 같은 그런 노래이다.
특히, <이등병의 편지>는 자신이 군대에 가 있을 때에 형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때의 마음을 담은
노래인데, 군 복무를 하기 위해서 훈련소로 떠나는 사람이나 그의 부모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김광석 (1964~1996)이 세상을 떠난 지 약 20 여년이 지난 2003년 겨울, 그가 남긴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바로
<미처 다 하지 못한>이다.
이 책 속에는 일기, 수첩메모, 편지, 노랫말 등을 모은 글들이 담겨 있다. 그 중에 그가 5집 앨범 작업을 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앨범 수록곡의 목록에는 10 곡 중에 4곡이 올라와 있고, 6곡의 자리가 빈 칸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은 김광석의 사인이었다. 아마도 요절한 음악인이 여러 명이 되는데, 그중에 누군가는 '자살이냐, 타살이냐'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적도 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에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나에게 씁쓸함을 남겨 주었다. 그는 1996년 1월 6일 새벽에 자신의 집이 있는 건물의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당시 5살이었던 딸은 발달장애을 가지고 있는데, 캐나다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10년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김광석은
죽기 전에 자신의 저작인접권을 아버지에게 양도했는데, 이를 둘러싸고 김광석의 아버지와 아내의 저작권 분쟁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있었다.
김광석 사후에 그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타살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차라리 몰랐다면 요절한 불행한 가수로 기억이 되었을텐데, 가족간의 분쟁이나 그밖의 문제들이 세상을 떠난 김광석을 더 슬프게 한다.
" 어쩌면 인생이란 것이 새벽과 아침 사이에 잠시 암울과 침묵의 세계를 만들고 늦은 아침
햇살로 사라져 버리는 안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우연과 우연 속에 벌어지는 필연들은 마치 한 밤의 꿈처럼 허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 (p. 49)
이 책에서도 김광석의 글을 통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 왔는가를 알게 해 주는데, 그는 90년대에 1,000 회가 넘는 콘서트를 할
정도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보는 지인들은 "또해"라고 할 정도라고 하니, 궁핍한 음악인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그렇다면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에는 김광석이 아직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이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난한 아버지의 모습,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 대학시절
노래 동아리 '연합 메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노래는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된 이야기, 그리고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그때의 반응.
그는 노래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PART 3 은 김광석이 악보에 남긴 노랫말을 정리한 것이다. 자신이 부르기 위해서 써 두었던 가사들, 그리고 60 여 곡의 미완성
곡들이 담겨 있다. 그 곡에는 이미 가사가 붙어 있고, 음표가 그려져 있지만 그가 '미처 부르지 못하'고 남겨 두고 간 곡들이다. 그 곡을 이
책에 실을 수는 없기에 그가 남긴 가사들을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역시, 그가 쓴 가사는 서정성이 물씬 풍기며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나 그의
노래로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이다.
그는 4집 앨범에서 '인생이란 강물위를
끝없이/부초처럼 떠다니다가/어느 고요한 호수가에 닿으면/물과 함께 썩어가겠지'라고 하면서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부초처럼 강물 위를 떠다니다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 일어나 - 김광석>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 한치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 인생이란 강물위를 끝없이/부초처럼 떠다니다가/어느 고요한 호수가에 닿으면/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없는 말들 속에 /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 있는
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한순간에 말라 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일어나/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그는 "마흔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있다.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다. 멋진
할리 데이비슨으로 !" (p. 152)
그런데, 왜? 그는 이 세상을 떠났을까?
이 책을 처음 접할 때와 끝맺을 때의 내 느낌은 너무도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김광석의 노래를 마음 속에 담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더 가슴에 와 닿을 듯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