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범신은 내 기억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풀잎처럼 눕다>,< 죽음보다 깊은 강>,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그러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 이 작품에 대한 내용들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들이다.

작가가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는데,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를 못했다. 당시에 박범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문학성보다는 대중성이 강하다고 이야기되곤 했지만, 인기작가들 중에 최인호도 그런 평을 듣는 작품들을 다수 썼기에 그저 지나쳐 버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그들이 쓰는 연애소설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더 달콤한 소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그가 절필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작가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고.

1980년대의 한수산의 필화사건은 작가를 절필을 하게 만들었고, 그를조국을 떠나서 오랜 세월을 타국에서 살도록 하였다.

이후에 <용서를 위하여 / 한수산 ㅣ 해냄 ㅣ 2010>을 읽으면서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인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칠십 년이 걸렸다' 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1980년, 1990년대 작가들의 절필은 그들의 작품을 아끼는 독자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박범신은 길지 않은 시간들을 보낸 후에 다시 집필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그 당시의 작가의 마음은, 작가에게 글을 쓰지 않는 시간들이란 글을 쓰는 시간들보다도 더 힘겨운 고통임을 그는 이야기한다.

오죽했으면 용인의 한터 산방에서 깊은 밤에 홀로 앉아 시를 썼을까.

 

 

2000 년대에 출간된 소설인 <나마스테>, <촐라체>을 읽으면서 히말라야를 헤매는 작가를 만날 수 있었고, <고산자>를 읽으면서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보다는 외로운 고산자 (孤山子)를 만날 수 있었다.

 

'촐라체' '고산자'를 거쳐 '은교'에 이르러서 작가는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 은교 p.406)'노라고 말한다.

'은교'는 연애소설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한다면, 명망있는 70을 바라보는 노시인 '이적요' 와 17살 푸르른 젊음의 '은교' 의 사랑, 그리고 이적요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지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은교'의 사랑....

그리고, 이 두 사랑을 둘러싼 끊임없는 서로의 탐색(이적요와 서지우)과 불신, 배신,그리고 마음속 깊숙히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은교로 인하여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힘겨운 이적요와 서지우의 삶의 종말, 즉,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심리적 분석을 하듯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한 편의 '심리소설'처럼 잘 쓰여져 있다. 더군다나 '박범신'작가의 문장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신예작가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표현들이 적확하며, 문장이 감수성이 돋보이고, 탐미적이고 섬세하고 예리하다. 수식어를 많이 쓰고 있음에도 쓸데없이 붙여진듯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들이다. 문학에 일생을 바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무르익은 글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담겨있는 적확한 시(詩)는 소설속에서 또다른 문학장르인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흔히, 시집을 읽게 되면 한 편의 시를 읽은 후에 그 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한 편의 시로 옮겨가게 되는데, 소설속의 시는 소설의 느낌과 함께 시의 여운이 오래도록 소설속의 문장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들이 그 상황이나 심리묘사에 너무도 딱 맞아 떨어지는 시들이기에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이다.

노시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용의 주도하게 설계되어 얻어진 '가짜'위에 또다른 '가짜'..... '죽음뒤에 살아 남는 자'가 되기 위해 죽음후의 전략까지 꾸며 놓고 죽었던 것이다.

갈망.....

그 끝은 어디일까.

나는 영화 <은교>는 보지를 않았지만, 이 소설은 심리적 묘사가 뛰어나기에 그런 것들은 영화 속에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가 가지는 대중성과 흥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설 <은교>가 가지는 섬세함을 관객들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에 한참 '멍'때리는 기분을 느꼈으니까.

 

이처럼 <촐라체>, <고산자>, <은교>는 갈망의 3부작이라고 하는 작품들인데, 이번에 읽게 된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역시 작가의 갈망이 깃들여 있는 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논산 일기, 2011 겨울'이란 부제가 나타내듯이 박범신이 명지대 교수직을 떠나면서 자신의 고향인 논산으로 낙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일기들이 고스란히 한 권의 책으로 옮겨진 것이다.

" 고향이라는 패찰이 붙어 있을지라도 나는 옛날의 그곳으로 '돌아 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 처음 온 것이었다. 새로 출발할. " (p. 18)

 

어쩌면 나에게는 이 책의 배경인 논산, 강경, 연무. 이런 곳들이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고향이 논산 성동면 원북리였다. 그래서 논산, 강경, 연무에는 이모들이 살고 계셨다.

이모부들이 농사를 짓는 분들은 아니고, 공무원, 법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이었기에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시절 여름방학에 몇 번 놀러 갔던 곳이다.

 

 

 

 

작가에게 논산, 강경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 그리고 그의 문학 작품 속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등장인물들이 이곳에서 성장하기도 한 그런 곳이다.

추운 겨울을 난방시설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조정리에서 지내는 작가의 모습은 왠지 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작품을 쓰지 않고 지내는 9개월이란 시간을 그는 그렇게 논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일기에 남겨둔다.

 

 

 

 

집앞에 유유히 흐르는 호수를 조용히 내려다 보면서

계백을 생각하고

계백 휘하 졸병을 생각한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작가에게 말을 건낸다.

아마도 이런 구상이 작가로 하여금 계백의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소설로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작가에게는 수천 년이 지난 그때의 시간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글로 씌여질 수 있는 것이기에....

책 속의 사진들은 힘있는 작가의 글들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집앞의 잔잔한 호수처럼 작가의 마음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사진이 한 장 소개된다.

 

 

이 사진은 작가의 내면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한 장의 사진.

" 집필 중에 작가는 그러므로 때로 짐승처럼 울부짖고 때로 폭포처럼 투신하고 때로 바람처럼 솟구친다. " (p. 120)

많은 것을 내려놓은 지금의 작가.

그에게 이 한 장의 사진은 열정을 가지고 또 다른 작품을 쓰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갈망이 담긴 듯하여 마음이 짠해 옴을 느끼게 해 준다.

"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의 깊고도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한다." (p. 76)

역시 작가는 논산으로의 낙향을 통해서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은교>의 이적요의 모습이 작가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작가는 '나무는 늙을수록 아름답다'고 말한다.

'청년작가'다운 기개로 늙어 가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죽을 때까지 날 시퍼런 '현역 작가'로 살고 싶은 꿈을 말한다.

 

 

나이듦의 외로움.

'청년작가'로 인기를 누리던 작가의 지난날들.

몇 개월 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음에서 오는 창작에 대한 갈망.

그 모든 것이 페북 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아닌, 일기이기에 더 진솔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글들이고, 작가의 일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는 글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금붕어. 어느날 배를 뒤집고 죽기 직전까지 갔던 그 금붕어는 이 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힘겹게 살고 있다.

가끔 지느러미를 파닥이면서.

금붕어를 살피는 작가의 그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이 느껴진다.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처럼 장편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출판기념회 인사말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글은 작가가 걸어온 발자취를 말해 주는 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해 본다. 작가 자신이 논산에서 자신의 '마지막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논산은 그의 고향인만큼, 그곳에서 지금 느끼는 외로움, 허전함은 조만간 사라지고 힘찬 그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는 것이다.

그땐 또 그의 작품에 심취되는 독자의 몫을 할 것이다.

 

힘내세요 !! 박범신 작가님~~

당신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