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가와 나가루의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첫 두 권을 읽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 NT Novel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2월

 라노베 계의 전설급이죠. 타니가와 나가루 작가의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첫 두 권, <우울>과 <한숨>을 접했습니다. 방학 내로 <소실>까지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네요. 뭐, 천천히 꾸준히 읽으면 어떻게는 도달하기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울>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아, 이것이 라노베! 라는 감상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작가 특유의, 묘한 중독성을 가진 만연체 덕에 꽤 흥미롭게 읽어나갔습니다. 다만 솔직히, 하루히의 과도한 행동은 거슬렸습니다. 특히 컴퓨터부에서 컴퓨터를 탈취할 때 미쿠루에게 한 짓은 불쾌한 수준이었죠. 그럼에도 SF적인 세계관 및 단권에서 훌륭하게 각 인물들의 개성과 설정을 보여주고, 전개 면의 떡밥을 회수하며 무난하게 마무리하는 점은 좋게 평가할 수밖에요.

 하루히 이후 라노베의 템플릿을 정립한 작품이라 그런지 독특하고 충격적이기보단, 설정 면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느껴졌습니다. 아, 문체의 경우 작가의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보니, 읽어나갈수록 '일본식 라노베 문장의 원형' 정도의 감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 수준으로 만연체를 잘 다루는 작가는 더 이상 라노베 계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쓰면, 오히려 가독성 나쁘다고 엄청 까일지도요(타니가와 나가루의 문장도 좋게만 보이지는 않지만요).

 <한숨>은 엄청나게 발암이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구성은 좋았어요. 영화 제작이란 방식을 통해 하루히의 '신'적인 부분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훌륭해요. 다만, 거기까지 가는데 절반 이상의 분량을 소모해야 했을까요? 굳이? 장면은 얼마든지 줄이고 뺴고 압축하는 게 가능했을 텐데요. 그러다보니 1권으로 익숙해진 만연체는 개성보다는 그저 분량 늘이기로 비춰졌습니다. 하루히의 민폐도 1권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라 1권에서도 대체로 '캐릭터의 개성을 보여주려는 시도' 정도로 넘어갔던 것에 비해서, 오히려 심해진 2권의 민폐도는 작가의 실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론 그냥 단편에서 중편 정도 분량이었으면 그래도 재밌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한숨에서 질리고 나니 3권을 집을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읽기는 읽겠지요, 언젠가는. 일단 간단하게 하루히의 키워드를 정리하면 SF, 세카이계, 부활동, 현학적 만연체 정도가 되겠습니다.

[100자평] 증명된 사실

증명된 사실
이산화 지음 / 아작 / 2019년 7월

[과학, 또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펼쳐낸 장르적 가능성]▷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 묶음입니다. 이산화는 정말 놀라운 작가에요. 수록작 중에는 SF도 있고, 과학적인 소재 혹은 그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과학(또는 과학적 상상력)이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적 가능성이 한 권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은 <한 줌 먼지 속>.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씁쓸한 청춘 미스터리입니다. 아니, 또 고민이 되네요. 그걸 ‘푸른 봄‘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요... 아무튼, 그 외에도 다들 좋았고, <증명된 사실>은 바로 작가 후기를 펼치지는 마시길 당부드립니다(저는 충격에 잠시 내려놓았다가 후에 펼쳤는데, 다행이었습니다).

[100자평] 언더워커 1

언더워커 1 - Novel Engine
청풍명월 지음, 쓩늉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9년 7월

[땅 밑 철도 세계에 사는 사람들]▷지하 세계를 철도가 지배하는 독특한 세계관이 우선 매력적입니다. 주인공들의 캐릭터성도 충분히 보여지고요. 가독성이 좋아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만 어색한 부분이 다소 있고, 세계의 풍광을 보여주는데에까지 간결한 문장이 힘있게 뻗어나가지 못한 부분은 아쉽습니다(매력적인 세계이기에 더더욱 아쉬워요). 후반부의 유혈사태는 조금 절제해서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100자평]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백철 그림, 김진명 원작 / 새움 / 2019년 8월

돌겠네 진짜. 김진명 그 환빠작가 신작이 매번 베스트셀러인 것도 어이없는데, 이제는 시류 타서 그 극우 소설을 만화화하냐. 그걸 광고 메일에 담아 보내는 알라딘도 레전드다.

[100자평]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무겁고, 섬세하고, 질척이는]▷질척이는 감정들, 그것을 그대로 투영하는 문장들. 읽고 있다보면 스스로의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조용하고 섬세하게, 망가진, 혹은 망가져가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을 정말 잘 써내는데, 읽는 도중보다도 읽은 후 남는 어떤 응어리가 한숨을 내뱉게 만든다. 300p가 채 안 되는 책을 두 달 동안 뜸들여 읽게 된 것은 그런 연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