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장편소설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익사>를 읽었고, 그 전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읽었었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 비롯되듯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강렬한 이야기였고,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들은 읽기가 마냥 편하고 쉬운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그의 단편들을 만나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었다. 장편도 물론 좋았지만,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 그의 삶을 관통하는 사상과 생각이 제대로 드러나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장편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둘러 갈 수도 있고, 숨겨 두었다가 은근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하고자 하는 그것에 다가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인 반면, 단편은 짧은 이야기 속에 그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에둘러 가지 못하고 정면 승부해야만 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전쟁 때 너는 아직 어린애였겠지?

긴 전쟁 동안 나는 죽 성장했어.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는 것만이 불행한 일상의 유일한 희망인 것 같은 시기에 성장해 왔다. 그리고 그 희망의 징조가 범람하는 가운데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 시체가 어른의 뱃속 같은 마음속에서 소화되고, 소화가 불가능한 고형물이나 점액이 배설되었지만, 나는 그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도 흐지부지 녹아 버렸다.

-나는 너희의 그 희망이란 걸 온몸으로 짊어지고 있던 셈이지. 다음 번 전쟁은 너의 차지가 되겠구나.

 

이번 단편집은 오에 겐자부로가 60년 가까운 작가 생활 동안 발표했던 모든 단편소설 중에서 직접 스물세 편을 가려 뽑아 고쳐 썼다고 한다. 그가 소설 집필을 그만둔 뒤 자신이 발표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고 고르고, 거기다 문장까지 모두 꼼꼼히 손을 본 보물 같은 작품집이니, 그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기에는 이만한 책이 또 없을 것이다. 스물 세 편의 단편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어렵게만 느끼는 이들에게도 초기의 이야기들은 꽤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기묘한 아르바이트> <사자의 잘난 척>에서는 죽음을 대하는 독특한 시선을 볼 수 있고, <사육>에서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인간 양>은 지금 현대의 우리 모습을 보는 듯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중기로 넘어가면 연작 소설들로 단편이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중기에 실린 이야기들에 마음이 갔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의 첫아이는 뇌에 치명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성인이 된 큰아들은 천재적인 음감을 지닌 음악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상 생활은 미숙하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가끔은 간질 발작도 한다. 그는 아들의 삶에 쉽사리 간섭하지 않는데, 아들을 바라보는 강인하면서도 담담한 아버지로서의 시선은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 고통, 그리고 절망을 넘어서 문학으로 보편성을 다루게 된 대 작가의 눈물겨웠던 삶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기로 들어가면 자신의 자전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확실히 집중력을 요하고, 그만큼 어렵긴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내밀한 작가적 성향,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이요는 지상 세계에 태어나 이성의 힘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고 무언가 현실 세계의 건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블레이크에 의하면 이성의 힘은 오히려 인간을 착오로 이끌며 이 세계는 그 자체가 착오의 산물이다. 그 세계를 살면서 이요의 영혼의 힘은 경험에 의해 손상되지 않았다. 이요는 순수한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이요와 내가 이윽고 '레인트리' 속으로, '레인트리'를 지나서, '레인트리' 저 너머에 이미 합일을 이루었으나 개체로서 더욱 자유로운 우리가 귀환한다. 그것이 이요에게나 나에게 의미 없는 삶의 과정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스스로 장애를 가진 큰아들과의 공생과 블레이크의 시에서 환기된 영감을 하나로 엮어서 일련의 단편집을 완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들을 중심으로 아내와 여동생 남동생을 포함한 가족의 지금까지의 나날들을 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해 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오에는 누구나 꿈꾼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그의 삶 자체는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자살, 장애가 있는 아들, 작품성에 대한 비판 등 그는 고난의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고, 그 모든 경험들은 그의 문학으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나이에 시작해 버린 소설가로서의 삶에 본질적인 곤란을 평생 느끼며 살아 왔다는 오에 겐자부로. 그는 자신이 쓴 것을 고쳐 쓰는 습관으로써 그것을 극복해 왔다고 말한다. '긴 시간을 들여 경험을 통해 그것을 기른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을 만났을 때, 그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위대한 노작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삶의 습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