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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평점 :
나에게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은 매번 궁금해서 보기는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는 않은 종류에 속하는 작가였다. (물론 <멀베이니 가족>이나 <블론드>를 읽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의 작품 중에 고딕 풍의 독특한 색깔을 자랑하는 작품들만 읽었던 탓이기도 하다) 자, 어쨌든 여기서 방점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한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 <좀비>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대디 러브>의 소아성애자 유괴범처럼 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유독 그랬는데, 그녀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안 그 악인이 직접 되어보도록 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사이코 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해야 한다는 건데, 사실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굉장히 불편함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시선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광기 어린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라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살면서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그것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블 아이>에서의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 그리고 <악몽>의 불안과 우울, 광기를 넘나드는 꿈과 현실 속을 헤매는 것 또한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이번 신작 <그들>을 읽는 내내 그렇게 기분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난 느낌이랄까. 혹자는 이 작품의 어마어마한 두께와 특유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지루함을 느낀다고도 했지만, 나는 기존에 만났던 그녀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이 정도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심정이었던 터라 700페이지의 두께도 술술 넘기며 읽었던 것 같다.
1937년 8월의 어느 따뜻한 저녁, 사랑에 빠진 소녀가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이름은 로레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꿈 같고 즐거운 사랑에서 불안하고 맹목적인 설렘 같은 것이 솟아났다. 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일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열여섯의 소녀 로레타에게서 시작한다. 그녀는 주중에 에이젝스 세탁소에서 일했고,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레 이는 토요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실직 상태라 늘 침대에 누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고, 그녀의 오빠인 스무살 브룩은 신경질적인 악의로 눈을 반짝이는 한심한 청춘이었다. 한 마디로 그녀의 가족은 형편이 어려웠고, 가족 중 그녀의 보호자로서 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오빠 또한 세상에 불만 많은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오빠의 밥을 차려주고 그가 가지고 있는 총에 대해 한 마디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며 허세를 부린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 일정 대로 친구의 집으로 향하지만, 가는 도중에 남자친구 버니를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와 어울리다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방에서 버니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 보니 옆에 누운 버니가 죽은 채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단번에 자신의 오빠 짓이라는 걸 알게 된 로레타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나갔다 경찰인 하워드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버니가 어차피 어디서든 저렇게 죽을 줄 알았다며 욕을 퍼붓다가, 순간의 열정에 휩싸여 로레타를 강제로 범하게 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설레 이며 기다리던 꿈 많은 열여섯 소녀가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잠자리를 한 날, 오빠에 의해 그를 잃어버리고,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가 경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엄청난 스토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로레타에 의해 이렇게 정리되고 만다. '하워드가 어느날 아침에 경찰관 제복을 입고 불쑥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주고, 사랑해주고, 결혼까지 해서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임신했고, 하워드와 결혼해서 곧 유부녀가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역시나 평탄하지만은 못하다.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의 간섭에서 도망쳐온 그녀는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역시나 삶은 그녀에게 녹록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톤은 그녀의 아이들인 모린과 줄스가 이어받게 되는데, 사실 전체 이야기의 분량에서 보자면 로레타보다는 모린과 줄스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1966년 4월. 사랑에 빠진 소녀가 거울 앞에 서 있다. 꼼짝도 않고.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모습에 고정돼 있다. '모린 웬들'이라는 이름이 그 모습에 붙어 있다. 싸구려 화장대 거울에 흐릿하게 비친 모습이다. 그녀가 이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그녀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사랑.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푹 잠겼다......
1937년 여름, 열여섯의 로레타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1966년 봄, 스물여섯의 모린으로 이어진다. 두 여인 모두 자신의 이름에 속한 구석을 벗어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와 딸, 그 두 여인 사이의 간극은 두터운 시간의 폭만큼이나 엄청나다.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격동의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를 서술하는 이 작품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난한 디트로이트에서 살아내고자 애썼던 사람들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자들은 자라면서 남자들한테 온갖 짓을 당하고 부서지는 법이라며,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로레타와는 달리 그녀의 딸 모린은 엄마의 인생은 전부 잠들어 있다며, 자신은 항상 깨어 있는 의미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폭력과 범죄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줄스는 여자 친구가 쏜 총에 죽을 뻔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춘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모린은 새아버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겪고 거의 죽다 살아난다. 어떤 꼴을 당하든, 어떤 일을 겪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라는 명제가 무색해질 만큼, 이들이 겪은 일은 무시무시하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은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녀가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을 때, 학생 중 하나였던 이가 바로 극중에 등장하는 모린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 오츠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이런 것이 현실일 리가 없어!'였지만,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는 소설보다도 더 끔찍하고 엄청난 일들이 실재로 버젓이 일고 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모린의 고백을 통해 그려진 이야기라, 실제 극중에 오츠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츠는 자신이 서두에 인용한 존 웹스터의 비극 <하얀 악마>에 나오는 '우리가 가난하므로 사악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난이란 때로 모든 것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들'이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문학적인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그들'인 웬들일가를 지칭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쩐지 우리 모두 '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당신도 '그 사람들'중 하나이고, 이들이 겪은 비극 또한 삶을 살아내는데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을 이미 여러 권 읽었었지만, <그들>을 읽고 나니 마치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작품일 으제야 처음 만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아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꼭 <그들>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두툼한 두께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당신에게 뭔가를 남겨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