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4년 뉴어크의 여름, 첫 번째 폴리오는 가난한 이탈리아인 동네에서 발병했다. 폴리오는 뚜렷한 원인 없이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 병으로, 어른들 역시 감염될 수도 있는 전염병이다. 호흡기 근육 마비로 죽음에 이르거나, 마비를 일으켜 걷는 데 문제가 생기게 하는 병이다. 아직 가정용 냉방장치가 출현하기 전이라 저지대인 뉴어크의 여름 날씨는 푹푹 찌는 지옥 같은 더위와 싸워야 했다. 전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 병이 전염성이 아주 높아 감염된 사람 가까이 있기만 해도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도시의 감염자수가 꾸준히 늘어가자 동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공장소에 가는 것을 금지시키곤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들 중의 일부는 놀이터에서 게임에 게임을 거듭하며 강렬한 더위 속을 뛰어 다녔다. 그 해 여름, 놀이터의 감독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극소수의 청년이었던 버키 캔터였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그러나 그는 이렇게 물었다. "놀이터를 닫아야 할까요?"

"감독은 자네야. 닫아야 하나?" 닥터 스타인버그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주만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가 일본의 기습 폭격으로 박살이 났을 때, 버키는 스무 살,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몸이 튼튼한 남자들은 모두 일본이나 독일과 싸우기 위해 훈련을 받으러 갔고, 그 역시 참전을 위해 징병 사무소에 갔지만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하는 형편없는 시력 때문에 그는 어디서도 합격할 수 없었다. 전쟁과 징병 때문에 학교에 남자 체육 교사 자리가 아주 많았고, 그는 챈슬러 애비뉴 학교의 자리를 점 찍어 두었다가 여름 놀이터 감독으로 계약했다. 그의 목표는 챈슬러 옆에 문을 연 웨퀘이크 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 만이 아니라 운동을 통한 스포츠맨 정신과 놀이터에서의 경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도록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키는 작지만 몸이 다부지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버키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 낙담했지만, 또래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돌본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폴리오에 감염되어 몸이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게 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동요하기 시작하자 그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침 인디언 힐의 캠프에 교사로 가 있던 그의 여자친구 마샤가 여름 나머지 기간에 물놀이 감독을 할 자리가 비었다며 그에게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인디언 힐에 오라고 그를 설득한다. 유행병 한 가운데서, 그 모든 아이들하고 그렇게나 더운 도시에 있지 말라며, 여기 오면 폴리오를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감 때문에 뉴어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때에는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없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피했을 텐데, 그는 반대로 기회가 왔는데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모하거나 미련해 보일 정도의 책임감이라니, 어찌 보면 쓸데없어 보일 정도의 죄책감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충동적으로 마샤에게 떠나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격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뉴어크에는 하룻밤 새에 새 환자가 일흔아홉 명이나 생기고, 위케이크에서만 서른 명, 놀이터에서의 아이들도 입원하고, 죽고.. 결국 시장이 놀이터마저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는 놀이터가 문을 열고 있는 한은 그곳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책한다. 자신이 유일했던 자신의 의무를 버리고 떠나와 아이들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던 그는 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노를 표출한다. 하느님이 애초에 왜 폴리오를 만든 건지, 대체 그걸로 뭘 증명하려던 건지, 지상의 우리에게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건지 말이다.

버키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그에게 나쁜 시력을 물려준 아버지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돈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이 년을 복역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없는 대신,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지침을 얻으며 자랐다. 그의 삶은 애초에 시작부터 불운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폴리오 유행병이 돌았던 것도 그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이니 책임감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게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버키는 할아버지를 통해 정직함과 용기와 희생이라는 이상을 배웠고, 그것은 폴리오 사태 이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의 삶을 바꾸어 버리고 만다.

필립 로스는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책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우쭐대는 행위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인화한 네메시스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두어 달 동안 겪은 메르스 사태도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네메시스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