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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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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흑인 게토에 자리잡은 공동주택 건물의 방 안. 몸집이 커다란 흑인과, 조깅 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중년 백인 남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흑인은 전과가 있는 목사이고, 백인은 대학 교수이다. 흑과 백이라는 선명한 차이처럼, 뼛속까지 완전히 다른 생각과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왜 함께 있는 걸까. 이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면 그날 아침 지하철 역에서 자살을 하려고 하던 백을 구해준 이가 흑이다. 플랫폼에 서 있던 흑은 급행 열차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드는 걸 우연히 보게 되고 막았던 것이다. 예수의 말을 듣는다며 예수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는 흑과 과거에 믿던 많은 것들을 지금은 믿지 않는다는 백의 대화만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러니까 죽으려는 교수와 살리려는 목사의 사소해 보이는 논쟁이 이 소설의 전부라는 말이다.

: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아주 약했어요. 아주 부서지기 쉬웠지요.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절대 파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일주일에 두 권쯤, 일 년에 백 권, 그렇게 한 사십 년 가까이 책을 읽어온 백인 교수는 무신론자이다.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가 믿었던 것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존재한다고 믿는 척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사실상 친구도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 가는 길에 자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집으로 보내준다고 할 정도로. 그러나 신을 믿는 흑인 목사는 그런 그에게 자꾸만 말을 건넨다. 그가 집을 나서려 하면 같이 가야겠다며 외투를 꺼내 들고, 그의 가족은 어떠했는지, 친구에게 오늘의 결심을 이야길 했는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그러니까, 목사는 다시 살아보고 싶게끔 삶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정작 교수는 그걸 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혹시 선생이, 그러니까, 긴 가뭄 같은 기간을 보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결국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지...어쨌거나 내 말은 말이오. 설사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해도, 그래도 해가 매일 똑같은 개의 궁둥짝을 비추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요.

흑인 목사는 교도소에서 배식 담당에게 시비를 거는 이에게 한마디 하다 칼을 맞고, 그와 다투다 이백팔십 바늘을 꿰매야 하는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그 의무실 침대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날 이후 하느님의 은혜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인 교수는 세상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흑인 목사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이 그냥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이들의 대화는 평행선이다.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아무리 사이를 좁히려고 해도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두 개의 선.

좀처럼 자신을 설득하려는 목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자, 교수는 돈을 좀 드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댁한테 큰 신세를 졌으니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다. 목사는 댁이 청산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믿는 거하고 믿지 않는 건 완전히 다르다"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 댁은 모든 걸 흑과 백으로 보는군요.

: 실제로 흑과 백이지.

재미있는 건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 침대에 묶여 고통에 울고 있을 때 신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다는 흑의 주장보다, 세상에 희망은 없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백의 주장이 어쩐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는 것.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 성격을 내미는 흑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백은 그런 그에게 삶이 죽음보다 더한 악몽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패배를 인정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의 구원을 희망으로 그리겠지만, 매카시가 보는 세상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세상에 희망 따위란 없으며,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이 치열한 공방전의 결말은 이제 '되돌아가는 것도, 바로잡는 것도 불가능'한 무의 희망밖에 없다는 걸로 끝난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절대 믿지 않는 흑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없이 가능한 빨리 죽고 싶다는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작품은 출간 이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고, 2011년에는 매카시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토미 리 존스의 연출로 미국 HBO 채널에서 드라마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토미 리 존스가 백인 역을 겸했고 새뮤얼 잭슨이 흑인역을 맡았다고 하는데, 어쩐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보이는 것 같다. 매카시는 이번 작품에서 <로드>의 형식과 주제를 보다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하는데, 최소한의 등장 인물과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 희망이 없는 세계에 묵묵히 맞서는 인물들은 과연 매카시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끔 너무도 끔찍한 일을 당한 이들을 볼 때, 신이란 존재가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학대 당하는 어린이들, 누군가를 이유없이 살인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수백 명의 목숨을 내팽개치는 몰지각한 사람들.. 이런 사건 사고 속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 대체 왜 하느님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거냐는 말이다. 신은 대체 왜 이런 인간들의 비극을 지켜보고만 있느냐.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 때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세상에 희망이란 있는가. 글쎄 희망이 어떻게 생겨먹었더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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