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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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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89년 이후로 탐욕스럽게 살을 찌운 것은 부르주아들뿐이었다. 그들은 노동자에게 자신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 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백 년 전부터 부와 삶의 안락함이 엄청나게 증대했지만, 그 누가 노동자들이 그들의 합당한 몫을 분배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봐야만 했다. 법이나 서로의 합의에 따른 우호적인 방법으로든, 모든 걸 불태우고 서로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방법으로든. 지금 세대가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야 말 터였다. 한 시대는 또다른 혁명이 있기 전에는 끝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드레퓌스 사건'은 그를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으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던 드레퓌스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단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만들었었고, 그 후 진범이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음에도 군 수뇌부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었다. 가족들이 진범을 고발했지만,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이 글로 인해 드뤠퓌스 재심 운동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이후 숱한 고난을 겪게 되는 에밀 졸라의 모습은 우리 나라의 8, 90년대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제르미날> 역시 노동자 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로 그의 투쟁과 저항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은 연작으로 읽을 수 있다. 대표작 <목로주점>을 중심으로 <나나>, <제르미날>를 연결해서 읽으면 된다. 아쉽게도 <제르미날>은 절판상태였으나,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철도회사에서 해고당한 에티엔이 몽수의 탄광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는 동료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빚에 시달리며 짐승처럼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탄광회사가 교묘한 방법으로 임금을 삭감하기 까지 하자 파업에 앞장서게 된다. 에티엔은 광부들을 설득해서 죽음 아니면 희망이 될 파업을 시작하는데,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페이지마다 넘쳐 흐른다.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 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삭박해진 부부생활, 고통스러운 그의 삶 전체를 떠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빵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바보가 부의 분배에 모든 이의 행복이 달려 있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혁명주의자들의 그런 허황된 꿈은 기존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또 다른 사회를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거나, 빵을 나눠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세상의 불행을 더 확산시키면서, 사람들을 조용한 본능의 충족에서 끌어내 채워지지 않는 정념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고용주와 자본가로 대표되는 부르주아들의 사고 방식은 이렇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 분노하며 들고 일어서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계층간의 괴리는 비단 이 시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2014년 현재에도 여전히 계층간의 괴리는 커다란 사회 문제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을 참고 견딜 것인가, 그것에 대항해서 맞서 싸울 것인가의 문제는 두 권 분량의 꽤 두툼한 이 작품에 속도감을 더해준다. 자본과 노동, 고용주와 노동자의 세계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그 긴장감이 극적인 플롯을 만들어내며 커다란 울림을 남겨준다.

 

에밀 졸라의 장례식에서 광부들의 대표단이 세 시간 넘게 "제르미날! 제르미날!"을 외치며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일화는 이 작품이 얼마나 혁명적이고 위대한 소설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만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고전이지만 지금도 묵직한 무게 감을 선사하는 현재 진행형의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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