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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하진 작가의 작품은 <기다림>으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김연수 소설가의 번역이라서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속의 절제미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멋진 추락>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정확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속에 인생이 있고, 세상이 있고, 삶이 펼쳐지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스무 차례 이상 교정을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하진은 영어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단순하면서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정련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강행했던 작가의 이력처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도전이 이민 1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게 아닐까 싶고 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서술적인 문장, 평범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오로지 서사에 충실한 것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인데, 이번 신작 <자유로운 삶>은 그 정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 두 권의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일상이 전부이니 말이다. 어떤 과장이나 스릴, 반전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외로운 한 남자의 고군분투하는 삶이 펼쳐질 뿐이다.
여권을 갱신하는 사소한 일로조차 엄청난 장애에 부닥쳐야 하는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하찮은 관리마저 당신을 괴롭히고 삶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권력자는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싶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2년 전 미국 시인 친구와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콩에서 온 이민자인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라고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불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주인공 난우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이민은 커녕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추측해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인 난우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까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조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그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부터 버스 보이, 요리사 등으로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도 현실에서는 그저 환상, 사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 뭔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이민 1세대의 삶은 매 순간이 전쟁 같을 수밖에 없다.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타국의 언어를 써야 하고, 자유롭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호의롭지 않은 여러 상황들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꿈과 희망은 모두 포기하고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의 버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펜을 잡을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침울함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머지않아 이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든, 맞서 싸워야 했다. 시를 다시 써야 했다. 이제 그가 영어로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에 위축당해 있었다. 사실을 깨닫자, 그는 더욱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온 마음을 바쳐 다시 시작할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 된 상태였다. 요즘, 그는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은, 어떤 날은 그저 견뎌내거나 또 어떤 날은 그저 흘려보내 기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하루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극중 난우가 그의 염원인 시인으로 결국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꿈을 접어놓고, 포기하고, 던져버리곤 한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으니 말이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고통과 좌절 속에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