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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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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는다면 뭘 남기고 뭘 버려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내일 바로 곧바로 죽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것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한 것들,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것들, 내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는 것들..."

주인공 구동치 탐정은 누군가 자신이 죽고 나서 없애달라고 의뢰한 것들을 없애주는 '딜리팅'이라는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이란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걸 없애려고 한다. 자신의 평판 때문에, 비밀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서,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 때문에 많은 걸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딜리팅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구동치를 찾게 된다. 딜리팅이란 의뢰인이 죽고 난 다음에 없앨 물건을 정하고, 기본 가입으로 세 품목까지 가능하다. 한도시간은 5. 구동치는 그 안에 계약서에 명시된 물건을 모두 없애야 한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들 투성이인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죽고 나면 뭐 다 그만 아니냐고? 삶이 어디 그리 녹록한가. 나는 죽지만 나의 가족들, 친구들, 회사 동료들, 지인들..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내가 남겨놓은 무언가로 인해 피해를 주거나, 내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는 것들이 있다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리 죽기 전에, 딜리팅을 의뢰하는 것이다. 내가 죽게 되면 이런 것들을 없애주세요. 마누라 몰래, 혹은 사업 동업자 몰래, 친구 몰래, 연인 몰래 숨겨놓았던 것들, 그들이 알게 되면 상처 받을 만한 것들을 말이다.

김중혁 작가의 책은 항상 기발한 소재와 재기발랄한 필체로 기억되곤 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단박에 나를 사로잡은 제목부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비밀을 들어주고, 그걸 묻어주는 일을 하는 탐정이라는 캐릭터부터,  딜리터deleter’ 혹은딜리팅deleting’이라는 설정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작가 답게 서두를 화려하게 열어준다. 음식물 쓰레기, 곰팡이와 사람 냄새가 뒤섞여 독특한 냄새가 나는 어둑한 4층짜리 건물 악어빌딩에 있는 탐정 사무실이 그 배경이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이 작품은 무엇보다 악어빌딩의 사람들이 각각의 개성으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철물점 백기현, 합기도장 차철호, 레스토랑 쉐프 박찬일, 피씨방 알바 이빈일, 드라마 보조작가 오윤정.. 그리고 선배 형사인 김인천과 원수도장 사람들까지. 투박하고 정겨운 우리네 이웃처럼 평범하다가도,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싶게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 캐릭터야말로 딜리팅이라는 소재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구동치가 본격적으로 딜리팅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소설가와 그가 딜리팅 일을 결국 그만두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의 선배 형사 김인천은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인물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썼다가 지워야 하는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외에 수많은 습작과 일기 등을 모두 없애버리길 원했다. 그렇게 썼다가 지우는 그 작업을 통해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우다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대중에게 공개되어서도 안 되고 태워 없애 버려야 한다고. 그렇게 지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구동치의 선배 형사 김인천 또한 다른 종류의 글이지만, 틈만 나면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정보가 생기면 무조건 수첩에 적었던 것이다. 스쳐 지나간 자동차 번호, 용의자의 인상 착의, 가방의 색깔, 가방을 드는 모습, 가방 끈의 길이, 티셔츠의 그림, 바지의 색깔, 안경의 모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 몰래 소설을 쓰고 있었다. 틀린 맞춤법에, 묘사도 어색하고, 대사도 이상한 수준 미달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일상에 감추고 있던 뜨거운 심장이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잡히지 않았던 범인이 죽도록 두들겨 맞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던 이야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는 그렇게 소설로 풀어내었고, 구동치는 선배와 자신만 아는 그 비밀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기묘한 흥분을 느끼곤 했다고 추억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죽으면 그만 다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죽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그 누군들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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