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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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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장욱이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고 단 두 페이지만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말았다. 이런 그림 같은 묘사라니, 페이지 속의 단어들이 춤추며 허공에다 장면을 만들고 있었던 곳이다. 떨어지는 빗방울과 거리에 펼쳐진 우산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느낌이 마치 내가 거기에 있는 것만 같은 체감이 들게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대목이다.

 

짙게 코팅된 차창 밖으로 빗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떨어진다. 행인들이 우산을 펴 드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자세로, 다른 표정으로, 다른 각도로, 우산을 펴 든다. 풍경이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린 채 달려가다가 중년 남자와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이 보였다. 멍하니 서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치고 달려간 사람을 향해 뭐라 뭐라 소리쳤다. 욕설일까, 외침일가.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달려가는 사람은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것이 풍경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냥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지나가버릴 수도 있는 풍경 묘사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대목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명사들과 역동적인 동사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매 페이지마다 그가 창조해낸 시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나는 그의 문장에 매혹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전반적으로 미스터리 한 작품의 분위기만큼이나, 작가의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의 전작들을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A라는 친구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친구 네 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메인 스토리를 끌고 가는 주요 인물 세 명은 정과 김, 최이고, 이들과 만나기로 했다가 길이 어긋난 염은 마지막 장에 가서야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한 시기를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다. 김은 A의 옛 연인이고, 현재 그는 정과 부부이다. A의 글 솜씨를 부러워했던 정은 현재 동화작가를 하고 있다. 최는 공부에 대한 순수한 목적으로 대학에 남았지만, 지금은 국회희원의 보좌관이 되려고 한다. 글 솜씨가 뛰어나 시나리오를 썼던 A는 며칠 전, 이들 친구들을 자신의 영화 시사회에 초대했었다. 이들 친구들은 갑자기 A의 교통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K시를 향하는데, 함께 차에 타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서는 각자만의 A를 추억하고 있다.

어딘지 미스터리하고, 불길한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플롯의 방향은 '죽음'을 향해 흘러간다. 다만, 그걸 극중 인물인 정과 김, 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사실 글을 읽어가는 내내 독자들도 플롯이 흘러가는 방향을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딘가 이상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조성될 뿐이지, 직접적인 암시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버튼을 눌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는 간결했다.

잘 오고 있는지.

밤하늘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나 등 뒤에는 더 깊은 세계.

죽은 이의 전화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볼 때가 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을 오래 듣고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오거나 메시지가 날아온다면?

 

언젠가부터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지표를 가리키고, 지도에는 없는 터널과 바다가 나타난다.  방금 전 라디오에서 교통사고에 대한 보도를 듣고, 그 몇 분 뒤에 눈앞에서 몇 건의 추돌사고가 발생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들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보다 신고가 먼저 들어올 수도 있나? 싶어 어리 둥절 하다. 그리고 죽은 A로부터 각자에게 문자 메세지가 오기 시작한다.  각자에게 모두 다른 메세지가. 그들은 등에 땀이 배는 것이 느껴지면서 어딘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누군가 상가에 먼저 도착해서 그녀의 전화로 메세지를 보낸 거겠지. 장난이겠지. 싶어 그냥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럴 수가 없다.

 

 

 

A의 죽음으로 시작된 세 남녀의 기묘한 여정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떠올리게 한다. 극중에서는 A가 죽기 전에 만들었던 영화의 제목으로 인용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유랑기이다. 여자가 헝가리를 떠나 뉴욕에 와서 두 남자를 만나고, 그녀가 떠난 뒤 두 남자가 클리블랜드에 가서 여자를 만난다. 재회한 셋은 함께 플로리다로 떠난다. 그들은 극중에서 이런 말을 한다. “어딜 가도 왜 이렇게 다 똑같은 거지.” 뉴욕이건, 클리블랜드 건, 플로리다건 그들에게는 다 똑같았던 것이다. 낡은 아파트나, 눈 덮인 벌판이나, 바람 부는 바닷가나 가난한 청춘에게는 그저 외롭고 고독하고, 황량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장욱의 작품 속 그들도 그랬다. "웃긴다. 낯선 곳에 왔는데도 모든 게 다 비슷해." 라고. 기시 감이란 것이 도처에서 느껴지면서, 처음 가 본 곳도 몇 번 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생활이 어제와 같고,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모두 이미 지나온 시간 같고, 지나가 본 적이 있는 공간 같은 느낌.

감상은 혐오의 대상이며, 감정의 낭비야말로 어리석은 자의 특징이라고 믿었던 김도, 자신은 과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최도, 김이 속한 세계가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지 않는 자신과 같은 세계라고 믿었던 정도 모두 어긋난다. 그들은 서로를 기다리고 또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매번 머무르지는 못한다. 오래 전 A의 연인이었던 김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위태로웠다. 정은 자신이 보았던 김의 모습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A와 김의 관계도 목격하지만 모른 척 하고 만다. 최도 A에게 조금의 감정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끝내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완성될 수 없는 여정과 완성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들의 서사는 짐 자무시의 흑백 화면만큼이나 매혹적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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