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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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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랑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가지고 태어난 선천적 재능의 영역과 오로지 노력으로 얻은 후천적인 것의 영역을 명쾌하게 구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달에 문학동네 팟 캐스트를 듣는데 천재란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유사한 이야기를 했었다. 재능과 노력을 굳이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짧은 시간을 두고 보자면, 재능과 노력은 선명하게 구분이 되며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사례가 많다. 노력이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곳에 그런 종류의 재능은 천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니, 천재란 시간을 무력화하는 재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재능이 많은 A와 노력을 많이 한 B가 도달한 지점이 같아지거나, B의 노력이 A의 재능을 추월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재능의 영역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고,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하나의 과정이고, 그 과정이란 결국 노력을 의미한다고 보자면, 노력으로 안되는 재능의 영역이 있다는 그 생각은 재능을 갖고 있는 누군가를 경탄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노력으로 재능을 보충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천적 재능보다는 후천적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왜냐하면 선천적인 재능이 후천적인 노력보다 다 더 결정적인 거라는 생각은 우리 삶의 의미를 상당부분 박탈해 버릴 테니 말이다. 따라서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가치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의견일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못하면 그 능력이 드러날 수 없을 테고, 반대로 가진 걸 다 쏟아 부어 노력을 하더라도 타고난 것이 없는 사람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니까. 결국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나긴 해야 하지만, 노력으로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명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스포츠 재능을 유전자적으로 분석해서,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평범한 소재도 확실한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재능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 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자질이라 하겠다. 이 작가는 어떤 작품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을 매번 보여준다. 엄청나게 다작을 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걸 보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유즈키 씨는 지금까지의 내 실적이 노력이 아니라 유전자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어떻게든."

"전에도 말했겠지만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면 백 미터 달리기 결승전에 왜 흑인들만 진출하겠느냐고."

"백 미터 달리기와 스키는 다르죠"

"육체의 능력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아.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모두가 최대한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마지막 순간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 얘기를 하는 거라고. 설마 너 그걸 마음가짐이나 정신력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란, 유전자를 통해 스포츠에 적성이 있는 인재를 발견하고 초기에 최적의 지도를 함으로써 우수한 선수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연구를 통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유전자의 조합을 발견했고, 카자미가 지닌 F패턴과 신고가 지닌 B패턴이다. 유즈키는 카자미가 부모에게 F패턴을 물려받았다는 걸 증명하고자 히다에게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고, 전직 등산가였던 가쓰야에게서 발견된 B패턴을 아들인 신고가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를 선수로 스카웃한다. 그러나 히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는 재능이란 것이 선천적인 능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는, 딸인 카자미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스키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력도 있었던 그는 당시 훈련 일정으로 인해 아내가 출산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 아내가 의문의 사고로 죽고 나서 액자 뒤의 신문을 발견하고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가 다녔던 병원에는 그녀의 출산 기록이 없었고, 오히려 그가 유럽으로 훈련을 떠난 직후 유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문의 신문기사는 당시 그 병원에서 신생아가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의 이유 없는 자살과 그녀의 유품에서 발견된 신생아의 유괴기사는, 카자미가 그의 딸이 아니었다는 걸 너무도 자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10여년 동안 그 사실을 숨겨왔고, 자신과 카자미의 DNA를 채취한다면 친자관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유즈키의 집요한 제안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생의 비밀이라니,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바꿔 치기, 혹은 납치했다는 소재는 이미 너무 많은 작품에서 등장했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가. 그는 진부한 소재도 솜씨 있게 요리할 수 있는 작가이다.

"유즈키 씨, 뻐꾸기라는 새는 말이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군. 때 까치나 멧새 둥지에 말이야. 그러고는 다른 어미 새에게 새끼를 키우게 한대. 아나?"

"들은 적 있습니다. 탁란이라고 하는 거죠?"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트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히다와 카자미 부자의 스토리 외에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주니어 스키 부에 소속 중인 신고이다. 기타를 좋아했던 신고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 부자를 찾아온 신세 개발 스포츠부의 고타이와 유즈키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고 꿈을 접게 된다. 신고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를 스카웃하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가쓰야는 아내와 이혼 후 무직이나 다름없었고, 아파트 집세도 석 달이나 밀려있고, 신고의 급식 비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들만 맡겨주면 취직도 시켜주고, 살 곳도 마련해주면서 학비도 내주겠다는 제안을 그들 부자가 어떻게 마다했겠는가.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버려야 했던 신고의 내적 갈등과 재능을 타고 났지만 이런 이유로 노력을 하지 못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라이벌 구도, 의문의 협박 편지를 통한 긴장감과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테러 위협까지. 이야기는 어느 한 부분 지루할 틈 없이 달려간다.

뻐꾸기의 탁란은 생태적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한다. 둥지도 짓지 않고 알만 남의 둥지에 낳아 두면 둥지의 임자가 자기 새끼로 알고 애지중지 먹이를 물어 날라 키워주는 것이니 말이다. 딱새는 그렇게 자신의 둥지에 있는 새끼를 정성껏 키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뻐꾸기 새끼는 뱁새 새끼보다 일찍 알에서 나와 곁에 있는 것들을 밀어내는 습성이 있어, 정작 딱새 새끼들은 둥지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고 한다. 뻐꾸기의 탁란이 자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윤리와 도덕으로 무장한 인간 세상에서도 버젓이 행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멋들어진 제목이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수많은 다작들이 전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이 주요 모티브이지만 삼류 드라마 같지도, 진부하거나 상투적이지도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출생의 비밀뿐만 아니라 스포츠 세계에서의 경쟁과 질투,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의 차이 등 이 작품의 주요 이야기 거리들은 사실 스토리가 어찌 진행될지 뻔히 보이는 평범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참 많이 읽은 편인데, 떠올려보면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항상 평범한 플롯으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스토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재미있을까. 특히나 출생의 비밀과 관련하여 병원에서의 신생아 바꿔 치기 등은 이제 너무도 많이 다뤄졌던 터라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이다. 그런데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안에서는 기묘하게 지루하지가 않다. 그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챙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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