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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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는 것이 치료에 관계가 있다는 말이 참으로 생소했다. 책을 읽음으로서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거나 평온해 지는, 또는 기분이 더 좋아질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치료를 목적으로 쓰일 수 있을까? 그 중에서 자기계발도 아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 말이다. 현재 독서치료사로 활동중인 엘라와 수잔은(두사람은 절친이다) 751권의 소설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럴때, 저럴때의 상황에서 어떤 소설을 읽으면 좋을지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상황이라는 것들이 너무도 재미있다.

버림받았을 때, 불륜에 빠졌을 때, 비난받을 때, 연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때,

탈모증이 시작될 때, 맹장염에 걸렸을 때,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었을 때

배 속에 가스가 찰 때, 심술 부리게 될 때, 21세기 문제들에 시달릴 때

속이 메스꺼울 때, 병가를 낸 날 읽으면 좋을 때,


어떤가 상황이 재미있지 않은가? 위의 상황들 말고도 무수히 많은 상황들에 작가 두분은 이런저런 소설을 읽으라고 조언해준다. 그 책들을 소개하고 줄거리를 상황에 맞게 간략하게 소개해놓았다. 10년 간격으로 그 나이대에 읽으면 좋을 책들도 소개해 놓았다. 나도 30대에 맞는 책들을 읽어볼 계획이다.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을 단순히 책을 읽는 다는 것을 넘어서 어떠한 상황에서 나에게 힘들 주는 치료의 책이라는 색다른 생각으로 접근한 책이었다. 신선했고, 751권의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했던 책이다. 다시 들춰서 읽어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책속에서 만났던 많은 책들을 하나하나씩 만나보고 싶었다. 굳이 그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두분의 저자가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는지 책 속에 고이 스며들어서 나를 웃음짓게 만들고, 놀랍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할때, 그 상황에서 힘이 필요할때, 이런 저런 소설들은 우리를 잠시 그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소설을 통해 힘을 얻을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소설이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751권의 책들을 당신의 상황에 맞게 찾아볼 준비가 되셨는지? 이 책이 그 세계로 인도해 줄 것이다. 큰 재미와 함께. 어쩌면 당신이 겪는 어려움을 이겨낼 도움을 얻을지도 모른다. 자, 책을 펼쳐라.


 

 

 책을 숭배하라. 늘 가지고 다녀라. 이왕이면 인생의 틀을 잡아줄 책들을 챙겨라. 가방에 넣어 다니는 책과 두런두런 나눌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여러 책을 읽고 미래의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책에게만 말을 걸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p.20)


피어슨의 글은 워낙 유머러스해서 출산 직후 이 책을 읽으면 골반 근육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겠다. 아직 엄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이 '모두 다 가지겠다.'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경고장으로 읽힐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케이트가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혼 생활과 직장, 육아 문제들을 곡예하듯 경쾌하게 처리하는 모습에서 장난스러운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힘을 내라. 당신은 모두 다 가질 수 있다. (p.364)


설령 당신이 정체성을 잃고 우왕좌왕한다고 해도 적어도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손가락가 발가락, 오뚝한 코끝에 감사하라. 자유로운 팔다리를 마음껏 사용하라. 카프카의 걸작 <변신>의 마지막 단락을 소리 내 읽어 보라. 당신의 목소리가 곤충처럼 윙윙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라.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사람이라는 사실을 축하하라.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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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뇌에서 스트레스를 몰아내는 식사법
미조구치 도루 지음, 이소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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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스트레스와 식사법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처음에 떠오른 생각은 스트레스가 쌓일때 여자들은 달달한 것이 땡기는거? 이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라는 것밖에는 따로 식사법과 스트레스에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초콜릿이나 당분이 든 것을 마구마구 먹으라는 책 아니야? 라는 책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산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뚱맞게도. 식사법에 따라 여자의 스트레스를 없앨수 있다는 말이야? 어떻게? 궁금증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빨리 읽어보자는 생각에 후딱 읽어 버렸다.


1장과 2장에서는 감질나게도 식사법에 대해 나오지 않고 서론으로 이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다르며, 여자들은 어떤 이유들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로 인해 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천천히 본론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영양을 강조하였다. 잘 먹어야 스트레스에 강해진다고 말이다. 뇌 호르몬 합성을 위한 영양소가 부족하다면 스트레스를 좀 더 많이 받는다고, 그래서 올바른 식사법이야 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제3장.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나만 기다렸나?) 식사법이 등장한다. 여자의 뇌에서 스트레스를 몰아내는 식사법이다. 이 장에서는 좀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가 좋아라하는 빵과 면을 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 그것은 나도 알고 있지,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으니까. 그런데, 백미. 즉 밥까지 줄이라고 한다. 리얼리? 밥 안 먹으면 뭘 먹고 사나? 저자가 권하는 식사법은 밥의 양을 현저히 줄이고(안 먹어도 된다고 까지 했음) 고기와 생선, 달걀을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이게 당최 무슨 말이냐. 라는 충격에 휩싸인다. 밥을 먹지 말고 고기를 먹으라니!


뇌 호르몬을 만드는 것은 단백질이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는 식습관의 기본은 바로 당질을 제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정말? 밥을 줄여도 된단 말인가? 라고 의심했지만. 저자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당장 내일부터는 안심하고 고기를 밥상에 자주 올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밥을 갑자기 줄이는건 안될 일이고, 조금씩 줄여보기로 해본다. 뇌는 전체 몸무게의 2%를 차지하지만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몸전체의 30%!! 뇌는 놀랍도록 에너지를 필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부하는 학생일수록 먹는 것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라는 옛 어른들의 말과 일맥상통하다.


알뜰하게도 저자의 깨알같은 간단 레시피와 연령별로 영양 가이드를 제시해 놓았고, 마지막에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체크해볼수 있는 부분도 있어, 체크해 볼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밥좀 줄여볼까나? 매일 아침 숭덩숭덩 스트레스로 빠지는 나의 머리카락좀 줄여볼 수 있을까?



 다른 의료기관에서 우울증, 패닉, 불안 장애, 적응 장애, 인격 장애 등 실로 다양한 이름의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이 우리 클리닉을 찾아온다. 이곳에서는 모든 환자를 초진할 때, 영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 검사부터 한다. 그렇게 검사해보면 대부분의 환자가 뇌 호르몬 합성을 위한 영양소가 부족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영양 부족으로 마음이 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p.35)


백미는 수십 년 전만 해도 대단히 귀해서 서민들은 넘보기 어려운 사치품이었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식사의 마지막 순서에 소량의 밥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보자. 지금까지보다 훨씬 작은 양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식사 순서만 바꿔도 당질 섭취량을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최종 목표는 점심과 저녁에 밥을 아예 빼는 것이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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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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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 <누구를 구할 것인가?>라는 책에 이런 문제가 나왔었다.

전차가 운행중이었으나, 멈춰야 할 구간에서 전차는 어떤 이유로 고장이 났고, 멈출수가 없게 되었다. 그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앞 레일에서 공사중인 5명의 일꾼이 죽을 것이고, 누군가 나서서 길에 설치되어 있는 레버를 돌려 전차의 진행을 옆 레일로 옮긴다면 그 레일에 있는 단 한명의 사람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구할 것인가? 라는 문제였다.


나는 끝내 그 책의 물음에 답을 해내지 못하였다. 다섯명의 목숨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다섯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한명의 희생에서 그쳐야 했는지.. 깊이 생각할수록 어려웠다.

그 책의 물음은 마이클 샌덜 작가의 이 책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직면한다.

이 책에도 똑같은 전차문제가 등장한다.

제러미 벤담이 주장했던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게 하라.' 라는 공리주의에 따르면 한명의 희생이 정당하다 할 것이나, 그것은 한명인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은 그 대답을 한치의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겠는가?

 

 

 

책은 상당히 두툼했다. 다른 나라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유명세를 탔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서야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공리주의에서부터 시작해, 칸트의 도덕철학, 이어서 롤스의 정의론.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까지. 역사적인 순서가 아닌 저자의 주관이 담긴 시선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일 많이 언급하였으며 마지막에 배치했던 것은 그가 그 이론에 힘을 싣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이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말이다. 소크라테스였던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의 문구가 생각났다. 왜 정치인들을 선거로만 뽑는지 이해할수가 없다고. 각자 일하는 분야에서는 교육을 받은 최고의 전문가를 뽑으면서 왜 정치인들은 교육을 받지 않고 다만 선거로만 추대하는 것이냐고. 그 글을 읽고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게 생각이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정의가 무엇이냐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그 올바른 정의를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할 텐데 말이다. 우리는 그냥 묵인하고만 있다. 정치인들이 다 정의해 주기를 말이다. 평등과 불평등, 그리고 정의와 부당함.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해 볼수 있었던 나에겐 많은 것을 가져다 준 책이었다. 철학이 가득한 책이라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하시진 마시길.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그들아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려면, 어떤 미덕에 명예와 포상을 주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어떤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지 않고서는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이란 좋은 삶을 묻는 질문에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p.27)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은 무엇인가? 능력이나 자격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분배되는 대상에 달렸다. 정의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분배 대상과 그것을 분배받을 사람"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평등한 사람들에게는 대상들을 평등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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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 - 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그림 여행을 떠나다
한해영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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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단원 김홍도 화가의 그림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그림들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분의 그림들이 훨씬 더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찬찬히 본다고 신경써서 읽은 책이다. 책속의 주인공처럼 나도 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그림 여행을 떠나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되는 기분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 여자가 미술관에서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그림속 인물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김홍도의 그림속으로, 조선의 저잣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단원을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다니며 단원의 그림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단원의 옆에서 그의 봇짐을 짊어지고 다니며, 그림에 대한 설명과 배움들을 배워나가는데, 단원에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웃음이 없는 조선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 주려고 한 것이라고. 임금은 그에게 백성들의 삶을 그려오라 하고, 금강산을 그려 오라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백성들의 생활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느껴졌다. 정말 서민적이다. 라는 말이 터져나올만큼 한국적인 정취가 오롯이 느껴진다. 몰랐던 사실인데 그의 풍속화 중 <씨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모든 그림을 다 잘 그렸다는 그가 이 시대에 다시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행복했던 것 같다. 평소 그의 특정 그림들을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했거니와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 까지의 과정이 재미있었고, 그 화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니까. 조금 의아했던 부분은 단원이 스스로 선인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였다. 실제로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싶은 의문이 생겼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의 그림을 박물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 그림 앞에서 그의 삶을 느껴보았으면 싶다고.. 그가 남긴 많은 그림들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받았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제야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진정한 예술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인 것이란 말이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남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평가받지 못해 포기하고. 창조하는 일 자체가 좋아서 예술을 하는 것인지, 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단원은 내가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p.53)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구나.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림이 새롭게 보였다. 정조 임금은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마음과 재주를 가지고 있든지 자신이 빛을 비출 때 드러날 수 있다 하였다. 단원의 경우가 그러했다. 가진 것이라곤 그리는 재주밖에 없었던 단원에게 정조는 어둠 속 환한 빛이 되어 주었고, 단원은 덕분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림 속의 잡목이 보름달의 후광이 있었기에 돋보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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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안녕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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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총7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어떠한 이야기는 가슴시리도록 아픈 이야기였고, 또 어떠한 이야기는 믿을수 없다 여겼으며, 다른 이야기는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뒤 책의 표지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우울해져 있었다. 이 7편의 이야기들은 정강현 작가가 기자로 일했던 때 접했던 기사들의 내용을 단편 소설로 다시 탄생시킨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셀프타이머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섰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일이 정말 있었던 사실일까? 악마의 사진사. 마지막에 스스로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그는 죽게 되는 걸까?


시의 폐원

눈은 점점 실명해 가는 라디오 디제이 남자. 주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어느날 들통난다.


범죄가 제일 쉬웠어요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중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고, 여자들을 몰래 도찰해 usb에 담는다. 공부보다 범죄가 더 쉬웠던 것일까? 어느날 그 usb에 자신을 찼던 여자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너의 조각들

​성폭행으로 살인당한 아이의 유해조각을 꿰매는 국과수 여자의 사연과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한 엄마가 결국엔 딸아이의 얼굴을 보러 찾아오지만 시신이 되어 돌아온 이야기.


문병

​병원에 입원해있는 뇌종양 말기의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에게 외동딸이 문병을 온다. 그리고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놀랍다.  가족성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이다.


말할 수 없는 안녕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단편 소설로 말하는 화자가 마포대교 자신이다. 담담하게 자신의 위에서 강으로 투신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뻔뻔스러움을 고발한다.


이별박물관

 

이별 후에도 헤어진 상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품을 보관하는 일을 하게 된 한 남자 이야기.

 

총7편의 이야기들이 끝이 났다. 기자로 일하면, 이런 소설의 재료가 될 내용들이 풍부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도 아픈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아렸던 것 같다. 특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이 <너의 조각들>이었다. 딸의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한채, 아이 옆에 시신으로 찾아온 엄마.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씁쓸하고 애잔하고 가슴아팠던 7편의 단편들이다.



이 요상한 아침 풍경은 문득 청춘의 두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제 삶이 지독히 무겁거나 혹은 지극히 가볍거나. 저들은 아마도 전날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셨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을 게다. 진학하지 못했거나 취업하지 못해 제 삶이 버거웠을까. 그래서 부둥켜안고 밤새 술을 마시며 제 처지를 비관했을까. 그랬을 수 있다. 청춘의 삶은 자주 감당하기 힘든 묵직함이니까. 아마도 나처럼. 그렇다 해도 그들은 겨우 이십 대 초반일 것이다. 겁 없는 청춘이 아니고서야 밤부터 아침까지 술을 마시는 만용을 부리기란 힘들다. 그러니 저들의 삶은 또 얼마나 가뿐한 것인가. 서른이 코앞인 청년실업자는 문득 서러워졌다. (p.86)


기억이란 다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온전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은 기억은 다른 이에게 기억될 수 없는 것이지. 그러니 그런 기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거야. 너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너의 기억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사람이 죽으면 기억도 죽는 걸까.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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