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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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손아람 씨의 이력중에서 재미난 것을 발견하였다. 아이큐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아 멘사 회원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때 만점을 받는 아이들이 정말 신기했었다. 어떻게 만점을 받을 수 있는거지? 한 문제도 틀릴 수 없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실수를 해도 한문제는 틀릴건데 말이다. 그 말인즉, 정확하게 시험지에 나온 모든 것들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그들의 천재성에 항상 감탄했으며, 부러웠다. 아무튼 그 사람들중의 한명이 이 책의 저자 손아람씨였다.


이 책은 그가 자신이 다녔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배경으로 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어디까지 실제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미치도록 웃었으며, 어느 부분에서는 가슴 아프도록 청춘들의 아픔을 느꼈으며, 또 정치적 비참함에 가슴이 답답해 온 부분도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화자인 태의는 저자 본인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대학, 그리고 그 이후 10년동안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가 여기 이 책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자 그 시대를 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20대의 그 시절, 청춘들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대로 나아간다.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나는 절대 누구를 고발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상황 속에 놓여지면,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상대를 고발하고 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친 그들은 상처를 받고,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여기 실려 있는 총154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빛나는 청춘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아픈 추억을 안겨 될 시간들.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청춘이 더 빛나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내가 그 시대를 조금 빗겨나게 살았던 세대였던지라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들의 청춘 이야기가 가슴속 깊이 진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의 지금의 세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가진 것을 내버리고 갖지 못한 것을 좇기도 한다. 나는 미쥬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미쥬도 나에게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의미의 빈틈을 말로 메우는 미장이와 같았다. 언어의 진공이 생기면 감정의 진공이 드러날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거짓이었을까? 모르겠다. 남김이 없는 것 말고는 다른 연애의 양식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p.33)


나는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소고기가 신경 쓰였다. 왜 그 얄미운 인간을 위해 한우를 세 근이나 준비했단 말인가. 그걸로 도지사를 사흘 동안 배 터지게 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지사를 언제 다시 본다고. 그게 바로 권력의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지점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권력은 혼자 높지 않고 다른 곳을 낮게 패어낸다. (p.90)


기숙사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선배들의 전설을 온갖 고문을 당하고도 기밀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굳센 의지의 영웅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우리의 입을 여는 데는 고문은 커녕 고문의 암시조차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나약해진 걸까? 세상이 너무 착해진 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악을 악이라 믿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우리는 악의 존재를 원했고, 우리 앞에 맞선 자들을 서슴지 않고 악이라 불렀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악을 신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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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 소설이 끝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이재은 지음 / 강단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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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권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한 작가의 얼마나 많은 노고와 시간이 들어갔을까. 누군가는 소설 한 권을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 긴 시간이 품은 기억들은 얼마만큼인지. 이 책은 그런 소설을 탄생시킨 작가와의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재은 씨는 월간조선에서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 수상작가>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정말 기뻤다고 한다. 그리고 19명의 소설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하여 인터뷰를 시작한 이야기를 여기 이 책에 실어 놓았다. 소설가를 만나러 가는 길, 그녀는 설렘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으리라.


작가의 소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작가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 소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부터 시작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소설가의 성격이 얼마큼 반영된 인물이었는지, 어떤 연유에서 소설의 시작이 만들어졌고, 주인공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소설에 대한 모든 것을 작가와의 인터뷰에 담아놓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소설가는 권지예, 권여선, 정미경, 박상우, 조경란, 김원일, 이문열, 한승원, 박범신, 성석제, 방현석, 정이현, 강영숙, 편혜영, 조성기, 심상대, 이승우, 정영문, 하성란. 이렇게 총 19분이시다. 몇몇 분을 빼고는 정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작가분들이시다.


그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가는 권여선 작가님이시다. 최근에 내가 읽은 <토우의 집>으로 처음 만난 작가이자. 단 한 권의 소설로 내 마음을 빼앗은 작가님.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소설에 대한 인터뷰들을 잠깐 들었던 것뿐이었는데도, 그 소설을 내가 읽어본 것 같았다. 소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꼭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하는 소설가의 작품도 만나보게 되었다.


19분의 소설가들과 인터뷰하는 이재은 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의 수상작 소설들을 다 읽어야 했고, 뿐만 아니라 그 외 작가들의 다른 소설들을 그녀는 다 읽고 인터뷰에 임했으니 말이다. 한 권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작가들에게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고, 경험이 있었고, 사연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소설이 더 빛나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한 권의 책도 그런 면에서 보면 좋은 소설 한 권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생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엄하지도 않으며, 다만 뱀장어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히 끓여 내는 것이 아닐까... 스튜 냄비의 밑바닥처럼 뜨거움을 견디고 살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신이 조절한 타이머에서 종소리가 날 때까지 말이다. 하긴 꼭 뱀장어 스튜가 아니면 어떤가 삼계탕이나 곰탕, 뭐 이런 것들도 조용히 끓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한 여자가 떠올랐다. (p.30)


모든 통증은 신호를 보낸다. 그만 아프고 낫게 해달라고, 낫고 싶다고. 그럴 때마다 사람은 알약을 먹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 소설에도 치유와 치료가 있다. 그러자면 책을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백일기도를 하듯 그것도 '정성'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전해오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알약보다 강한 처방전을 알게 된 것이다. (p.149)


청춘은,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빛나고 있지요. 광채가 가득해 보이잖아요. 누군들 그 빛에 대해 욕망을 느끼지 않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탄생 이전으로부터 부여받은 슬픔'을 갖고 있어요. 삶의 유한성 말이죠. <은교>는 그걸 쓴 거예요. 욕망은 자연이지, 나쁜 게 아니예요.노인이라고 그게 뭐 다르겠어요 노욕이란 말이 있는데, 잘못된 말이라고 봐요. 그 말속엔 노욕은 나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노욕은 따로 없어요. 그냥 욕망이 있는 거지.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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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
정목일 지음 / 청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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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국어시간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본문에 나온 소설이나 에세이를 한쪽씩 돌아가면서 읽게 하셨다. 혹여나, 누가 읽을까, 두근거렸던 그때의 떨림이 기억난다. 국어 책에 나왔던 아름다웠던 수필들. 소설만큼이나 좋았다. 그리고 받아든 시험지에서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수필들을 만날 때면, 나는 이게 시험이라는 생각은 던져버리고, 본문 속에 그 아름다웠던 수필들을 시험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읽어 내렸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시험과 먼 시간들을 살아가면서 그 아름다웠던 수필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책에서도 수필은 그리 잘 만나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찾아서 읽지도 않았음이라. 그러다가 이 책을 이렇게 만나고 아름다웠던 수필들의 떨림을, 그때의 추억을 다시금 회상하게 된다. 수필을 써온 지 40년이라고 하시는 정목일 저자님의 아주 아름다운 책이다. 책의 표지만 보고, 도자기에 대한 전문적인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의 완벽한 오해였다. 수필집이다. 그 중심적인 내용은 한국미에 있고 말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발견한 한국의 미와 달빛, 꽃, 계절, 춤, 생활.. 그 외 많은 것들에서 얻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수필로 적어 내려가셨다. 이토록 아름다운 수필이라니.. 나는 왜 잊고 살았던 것일까?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표지의 달항아리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려하지 않으며, 경박스럽지 않고, 고아하고 단아한 그러면서도 밋밋한 느낌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선비의 느낌도 나고, 순박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느낌도 난다. 나도 저런 달 항아리 하나 소장하고 있다면. 싶었다. 이 달항아리를 시작으로 정목일 작가는 한국의 찻그릇의 아름다움과 고려청자 접시, 나전칠기까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글로 표현해 놓으셨다. 사실 그런 것들의 아름다움보다 나는 그의 수필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이 되었다. 저자님의 사물에 대해 표현한 그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에겐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고.


꼭,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한 단락의 수필처럼,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이제는 소설과 자기 계발서만큼 수필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수필을 잊고 지냈던 것일까.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있지 않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름다운 문체로 펼쳐놓은 이 단 한 권이 예술작품이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달항아리는 장식이나 꾸밈이 없다. 순백의 공간에 달빛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텅 비어 있어서 적막 속에 그리움이 밀려온다. 한국의 문화는 햇빛 문화라기보다는 달빛 문화가 아닐까 싶다. 환희 드러낸 당당함의 미학이 아니라 달빛 속에 물든 은근함과 정갈함의 미학이다. 담백함과 순박함이 마음을 끌어당겨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p.15)


사투리는 구수하고 익살스럽다. 점잔을 빼거나 고상하게 보이려는 의식 자체가 없다. 소박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련되지 못한 말씨지만 정이 간다. 흙내 묻은 풀꽃 같은 인상을 준다. 교양이나 체면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손을 맞잡으며 환히 웃는 고향 친구처럼 다정스럽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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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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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갈 때 챙겨가는 크고 작은 살림도구가 혼수품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혼수품으로 챙겨가지 않는 것이 있다. 칼과 도마다. 그건 시어머니가 직접 챙겨주었다.

칼과 도마가 며느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이제 내 집 사람이 되었으니 칼로 자르듯 친정과의 인연을 끊으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칼처럼 매운 시집살이를 도마처럼 묵묵하게 견디라는 뜻이다. (p.144)


시집살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구절이다. "식기장 이야기" 지금은 그 사용이 사라지거나 적어진 오래전에 널리 사용되어 온 전통 식도구와 식생활들이 담긴 책으로 나에게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사실, 책의 제목만 보고, 오직 '식기장'에 대한 이야기만 담긴 줄 알았다. 주방에 식기를 비롯한 갖가지 식도구를 보관하는 장. 말이다. 그런데 웬걸, 보물을 발견한 듯, 오래된 나의 추억들마저 하나하나 꺼내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이 책에는 총 30여 가지의 식도구가 소개되고 있다. 아마도 현재 20살 이하의 아이들은 거의 잘 모를 도구들일지도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거의 다 익숙한 것들이다,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죽- 둘러보았는데, 총 30여 가지 중 내가 모르는 것들은 5가지였다. 그 5가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나머지 것들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으나, 책을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떡살>이라고 한다. 떡에 새기는 꽃 장식을 이름이다. 떡에 살을 붙인다는 이름의 '떡살' 문양은 떡에 단순하게 장식을 한다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는 떡살의 문양마다 의미를 담아 찍는 기원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떡살을 사용하는 떡은 소를 넣지 않는 떡 들이다. 이 떡살을 보니, 하얀 절편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떡집에서 한 박스씩 가져오시면, 옆에서 막 집어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고리>라고 한다. 음식을 담아 이동할 때 쓰는 바구니라고 하는데, 보신 분들이 많이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이름은 좀 생소하지 않는가? 이 고리에 재미나지만 아픈 이야기가 있다. 고리와 삿갓을 내다 파는 백정 중에 임꺽정도 고리백정이었다고 한다. 그가 의적이 된 이유는 이 고리와 관련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리백정들의 생계수단인 갈대밭을 간척지 개발한다고 나라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단다. 그로 인해 백정들은 고리를 만들 수 없게 되었고, 살기가 힘들어져 임꺽정은 집을 나서게 되었다고.. 앞으로 이 '고리'와 마주할 땐 임꺽정이 떠오를 것 같다.

 

 

<돌확>이다. 혹은 '마자기'라고도 한다는데, 요것은 갈고 문지르는 데 쓰는 커다란 돌그릇이다. 곡식이 잘 갈아지도록 안쪽 면이 우둘투둘하다. 이 도구도 가끔 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름있는 한정식 같은데 보면, 마당에 이 돌확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알뜰하게 썼던 식도구들이 이제는 그냥 눈요기로 전략해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령구>이다. 참나무로 만든 주사위로 술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기 위해 썼던 일종의 게임도구라 한다. 이것은 주사위로 보면, 익숙할지도 모르겠는데,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기 위해 쓰인 주사기라 해 술 수 자가 붙어 주령구라고 한다. 조금은 낯선 도구였다. 요즘 시대에 다시 이 도구가 쓰인다면, 재밌지 않을까?

 

 

 

<찬탁>이다. 싱크대와 견주어지는 수납공간으로 냉장고의 모체라고 한다. 사진에서는 '찬장'이고, 문이 없는 것이 '찬탁'이다. 수시로 그릇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도구. 아마 할머니 댁에 가면 한 번쯤 봤을 법해서 찬장은 모두들 기억이 새록 날지도 모르겠다.


총 5가지를 소개해보았다. 단어만 들었을 때는 이 도구가 무엇이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사진과 함께 도구들을 만나니, 아~ 이게 그런 이름을 가진 도구였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역시 나는 이제 구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인가?라는 생각에 이런.. 총 30개의 도구를 내가 다 아는 거잖아?라는.. 기쁨 아닌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오래된 식도구들을 만나면서 행복했고, 예전의 추억들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다.




설날 아침이 밝는다. 지난밤에 산 복조리를 부엌의 큰 솔 위에 걸어 둔다. 안방문 위에 쌍으로 묶어 매달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복이 차곡차곡 쌓이라고 반듯하게 건다. 복조리를 문 안쪽에 거는 건 일단 들어온 복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이다. 복조리 안에는 성냥, 엿 같은 걸 담기도 한다. 복이 풍성하게 타오르라고 성냥이다. 동전으로는 재복을 염원한다. 일단 붙은 복은 떨어지지 말라고 엿을 담는 것이다. 대신 묵은 복조리는 태워서 그간의 액운을 모두 날려보낸다. 조리질로 돌은 남기고 쌀만 일어 올리듯, 복조리로 복은 가져오되 나쁜 것은 걸러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조리질도 집 안쪽으로 해야지, 밖으로 돌려서는 복이 달아난다고 믿었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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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 배영옥 여행 산문집
배영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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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역시 나는 '체게바라'이다. 그와 더불어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쿠바라는 나라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나라. 쿠바였다는데, 나는 왜? 그건 아마 공산주의 국가. 라는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공산주의가 싫다. 이유를 말한다면, 강렬하고 구속당하는 것 때문인데, 아무튼, 강렬한 이미지의 쿠바. 배영옥 시인은, 그런 쿠바에서 오랜 시간동안을 보내며 책을 내셨고, 현재는 시를 쓰면서 쿠바 문화에 대한 특강을 하신다고 한다. 이 책은 쿠바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왜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라고 그녀는 말하였을까? 그 이유는 책의 뒷부분 쯔음에 소개되어 진다. 쿠바에 가면 남자들을 유혹하는 쿠바 여인들을 그렇게 쉽게 볼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쿠바 여인들은 많은 수가 미인이고, 몸매는 완전~ 죽여준다고 한다. 다만, 그것은 젊을때의 잠깐이고, 쿠바 여인들은 급속도로 늙어 간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다. 아무튼, 쿠바에서는 술집에서도 옆에 와이프가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유혹한다고 한다. 그래서 쿠바에는 모두들 애인이 있단다. 저자에게도 쿠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묻는 말.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그정도.. 그래서 배영옥 시인은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쿠바의 문화적 환경에 대해 놀라운 점들이 꽤나 많았다. 가게에서 계산할때 점원들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외국인이면 거스름돈을 내주지 않고 자신이 챙긴다고 한다. 손님이 계산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계산을 할 줄 안다고 해도 따지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쿠바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해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라도 돈을 모으지 않으면 그들은 턱없는 급여를 받아서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도 성형을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성형수술 하러 많이 찾는 나라이기도 한데, 쿠바도 그렇단다. 성형 수술이 뛰어나, 주변 국가에서 많이들 찾아온다고 한다. 쿠바라는 나라가 공산주의국가라서 자꾸 그 나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북한이 떠올려지고, 애잔한 마음이 떠오른다. 그들역시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을 것이다. 8개월동안 쿠바와 열애를 한 것 같다고 말하는 배영옥 시인의 쿠바에 대한 열정이 계속 될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쿠바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니지만.




몇 번의 이사를 다녔지만 언제나 책상 위에는 엄마의 사진과 함께 아르마스 광장에서 산 체 게바라의 엽서를 올려놓았다. 표정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매일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았다.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 나는 왜 쿠바에 마음이 이끌렸을까. 왜 다른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p.78)


평등이 최고인 사회에서도 암적인 존재인 불평등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쿠바는 부담스러운 변혁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다만 그 변화의 혜택이 국민 개개인에게 평등하게 돌아가는지 의문이다. 지나는 행인을 붙들고 행패를 부리는 술 취한 사내를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소외의 자리에 내몰린 우리 노숙자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p.107)


무엇보다 나를 용서하는 것이 가장 힘들 때가 있었다. 표리부동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상처를 입은 후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회피하는 것이 내 본모습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두 눈 뜨고 당당히 상처를 인정하라 한다. 인정하지 않아도 이미 상처는 존재하고 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피하기만 했던 내 젊은 날의 모습을 다시 대면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알면 성숙해질 수 있다는 말을 믿어야 할 때였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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