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안녕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는 총7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어떠한 이야기는 가슴시리도록 아픈 이야기였고, 또 어떠한 이야기는 믿을수 없다 여겼으며, 다른 이야기는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뒤 책의 표지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우울해져 있었다. 이 7편의 이야기들은 정강현 작가가 기자로 일했던 때 접했던 기사들의 내용을 단편 소설로 다시 탄생시킨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셀프타이머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섰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일이 정말 있었던 사실일까? 악마의 사진사. 마지막에 스스로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그는 죽게 되는 걸까?


시의 폐원

눈은 점점 실명해 가는 라디오 디제이 남자. 주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어느날 들통난다.


범죄가 제일 쉬웠어요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중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고, 여자들을 몰래 도찰해 usb에 담는다. 공부보다 범죄가 더 쉬웠던 것일까? 어느날 그 usb에 자신을 찼던 여자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너의 조각들

​성폭행으로 살인당한 아이의 유해조각을 꿰매는 국과수 여자의 사연과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한 엄마가 결국엔 딸아이의 얼굴을 보러 찾아오지만 시신이 되어 돌아온 이야기.


문병

​병원에 입원해있는 뇌종양 말기의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에게 외동딸이 문병을 온다. 그리고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놀랍다.  가족성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이다.


말할 수 없는 안녕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단편 소설로 말하는 화자가 마포대교 자신이다. 담담하게 자신의 위에서 강으로 투신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뻔뻔스러움을 고발한다.


이별박물관

 

이별 후에도 헤어진 상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품을 보관하는 일을 하게 된 한 남자 이야기.

 

총7편의 이야기들이 끝이 났다. 기자로 일하면, 이런 소설의 재료가 될 내용들이 풍부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도 아픈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아렸던 것 같다. 특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이 <너의 조각들>이었다. 딸의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한채, 아이 옆에 시신으로 찾아온 엄마.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씁쓸하고 애잔하고 가슴아팠던 7편의 단편들이다.



이 요상한 아침 풍경은 문득 청춘의 두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제 삶이 지독히 무겁거나 혹은 지극히 가볍거나. 저들은 아마도 전날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셨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을 게다. 진학하지 못했거나 취업하지 못해 제 삶이 버거웠을까. 그래서 부둥켜안고 밤새 술을 마시며 제 처지를 비관했을까. 그랬을 수 있다. 청춘의 삶은 자주 감당하기 힘든 묵직함이니까. 아마도 나처럼. 그렇다 해도 그들은 겨우 이십 대 초반일 것이다. 겁 없는 청춘이 아니고서야 밤부터 아침까지 술을 마시는 만용을 부리기란 힘들다. 그러니 저들의 삶은 또 얼마나 가뿐한 것인가. 서른이 코앞인 청년실업자는 문득 서러워졌다. (p.86)


기억이란 다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온전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은 기억은 다른 이에게 기억될 수 없는 것이지. 그러니 그런 기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거야. 너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너의 기억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사람이 죽으면 기억도 죽는 걸까. (p.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