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
정목일 지음 / 청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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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국어시간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본문에 나온 소설이나 에세이를 한쪽씩 돌아가면서 읽게 하셨다. 혹여나, 누가 읽을까, 두근거렸던 그때의 떨림이 기억난다. 국어 책에 나왔던 아름다웠던 수필들. 소설만큼이나 좋았다. 그리고 받아든 시험지에서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수필들을 만날 때면, 나는 이게 시험이라는 생각은 던져버리고, 본문 속에 그 아름다웠던 수필들을 시험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읽어 내렸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시험과 먼 시간들을 살아가면서 그 아름다웠던 수필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책에서도 수필은 그리 잘 만나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찾아서 읽지도 않았음이라. 그러다가 이 책을 이렇게 만나고 아름다웠던 수필들의 떨림을, 그때의 추억을 다시금 회상하게 된다. 수필을 써온 지 40년이라고 하시는 정목일 저자님의 아주 아름다운 책이다. 책의 표지만 보고, 도자기에 대한 전문적인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의 완벽한 오해였다. 수필집이다. 그 중심적인 내용은 한국미에 있고 말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발견한 한국의 미와 달빛, 꽃, 계절, 춤, 생활.. 그 외 많은 것들에서 얻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수필로 적어 내려가셨다. 이토록 아름다운 수필이라니.. 나는 왜 잊고 살았던 것일까?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표지의 달항아리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려하지 않으며, 경박스럽지 않고, 고아하고 단아한 그러면서도 밋밋한 느낌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선비의 느낌도 나고, 순박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느낌도 난다. 나도 저런 달 항아리 하나 소장하고 있다면. 싶었다. 이 달항아리를 시작으로 정목일 작가는 한국의 찻그릇의 아름다움과 고려청자 접시, 나전칠기까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글로 표현해 놓으셨다. 사실 그런 것들의 아름다움보다 나는 그의 수필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이 되었다. 저자님의 사물에 대해 표현한 그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에겐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고.


꼭,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한 단락의 수필처럼,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이제는 소설과 자기 계발서만큼 수필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수필을 잊고 지냈던 것일까.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있지 않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름다운 문체로 펼쳐놓은 이 단 한 권이 예술작품이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달항아리는 장식이나 꾸밈이 없다. 순백의 공간에 달빛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텅 비어 있어서 적막 속에 그리움이 밀려온다. 한국의 문화는 햇빛 문화라기보다는 달빛 문화가 아닐까 싶다. 환희 드러낸 당당함의 미학이 아니라 달빛 속에 물든 은근함과 정갈함의 미학이다. 담백함과 순박함이 마음을 끌어당겨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p.15)


사투리는 구수하고 익살스럽다. 점잔을 빼거나 고상하게 보이려는 의식 자체가 없다. 소박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련되지 못한 말씨지만 정이 간다. 흙내 묻은 풀꽃 같은 인상을 준다. 교양이나 체면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손을 맞잡으며 환히 웃는 고향 친구처럼 다정스럽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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