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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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갈 때 챙겨가는 크고 작은 살림도구가 혼수품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혼수품으로 챙겨가지 않는 것이 있다. 칼과 도마다. 그건 시어머니가 직접 챙겨주었다.

칼과 도마가 며느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이제 내 집 사람이 되었으니 칼로 자르듯 친정과의 인연을 끊으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칼처럼 매운 시집살이를 도마처럼 묵묵하게 견디라는 뜻이다. (p.144)


시집살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구절이다. "식기장 이야기" 지금은 그 사용이 사라지거나 적어진 오래전에 널리 사용되어 온 전통 식도구와 식생활들이 담긴 책으로 나에게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사실, 책의 제목만 보고, 오직 '식기장'에 대한 이야기만 담긴 줄 알았다. 주방에 식기를 비롯한 갖가지 식도구를 보관하는 장. 말이다. 그런데 웬걸, 보물을 발견한 듯, 오래된 나의 추억들마저 하나하나 꺼내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이 책에는 총 30여 가지의 식도구가 소개되고 있다. 아마도 현재 20살 이하의 아이들은 거의 잘 모를 도구들일지도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거의 다 익숙한 것들이다,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죽- 둘러보았는데, 총 30여 가지 중 내가 모르는 것들은 5가지였다. 그 5가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나머지 것들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으나, 책을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떡살>이라고 한다. 떡에 새기는 꽃 장식을 이름이다. 떡에 살을 붙인다는 이름의 '떡살' 문양은 떡에 단순하게 장식을 한다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는 떡살의 문양마다 의미를 담아 찍는 기원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떡살을 사용하는 떡은 소를 넣지 않는 떡 들이다. 이 떡살을 보니, 하얀 절편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떡집에서 한 박스씩 가져오시면, 옆에서 막 집어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고리>라고 한다. 음식을 담아 이동할 때 쓰는 바구니라고 하는데, 보신 분들이 많이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이름은 좀 생소하지 않는가? 이 고리에 재미나지만 아픈 이야기가 있다. 고리와 삿갓을 내다 파는 백정 중에 임꺽정도 고리백정이었다고 한다. 그가 의적이 된 이유는 이 고리와 관련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리백정들의 생계수단인 갈대밭을 간척지 개발한다고 나라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단다. 그로 인해 백정들은 고리를 만들 수 없게 되었고, 살기가 힘들어져 임꺽정은 집을 나서게 되었다고.. 앞으로 이 '고리'와 마주할 땐 임꺽정이 떠오를 것 같다.

 

 

<돌확>이다. 혹은 '마자기'라고도 한다는데, 요것은 갈고 문지르는 데 쓰는 커다란 돌그릇이다. 곡식이 잘 갈아지도록 안쪽 면이 우둘투둘하다. 이 도구도 가끔 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름있는 한정식 같은데 보면, 마당에 이 돌확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알뜰하게 썼던 식도구들이 이제는 그냥 눈요기로 전략해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령구>이다. 참나무로 만든 주사위로 술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기 위해 썼던 일종의 게임도구라 한다. 이것은 주사위로 보면, 익숙할지도 모르겠는데,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기 위해 쓰인 주사기라 해 술 수 자가 붙어 주령구라고 한다. 조금은 낯선 도구였다. 요즘 시대에 다시 이 도구가 쓰인다면, 재밌지 않을까?

 

 

 

<찬탁>이다. 싱크대와 견주어지는 수납공간으로 냉장고의 모체라고 한다. 사진에서는 '찬장'이고, 문이 없는 것이 '찬탁'이다. 수시로 그릇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도구. 아마 할머니 댁에 가면 한 번쯤 봤을 법해서 찬장은 모두들 기억이 새록 날지도 모르겠다.


총 5가지를 소개해보았다. 단어만 들었을 때는 이 도구가 무엇이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사진과 함께 도구들을 만나니, 아~ 이게 그런 이름을 가진 도구였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역시 나는 이제 구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인가?라는 생각에 이런.. 총 30개의 도구를 내가 다 아는 거잖아?라는.. 기쁨 아닌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오래된 식도구들을 만나면서 행복했고, 예전의 추억들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다.




설날 아침이 밝는다. 지난밤에 산 복조리를 부엌의 큰 솔 위에 걸어 둔다. 안방문 위에 쌍으로 묶어 매달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복이 차곡차곡 쌓이라고 반듯하게 건다. 복조리를 문 안쪽에 거는 건 일단 들어온 복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이다. 복조리 안에는 성냥, 엿 같은 걸 담기도 한다. 복이 풍성하게 타오르라고 성냥이다. 동전으로는 재복을 염원한다. 일단 붙은 복은 떨어지지 말라고 엿을 담는 것이다. 대신 묵은 복조리는 태워서 그간의 액운을 모두 날려보낸다. 조리질로 돌은 남기고 쌀만 일어 올리듯, 복조리로 복은 가져오되 나쁜 것은 걸러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조리질도 집 안쪽으로 해야지, 밖으로 돌려서는 복이 달아난다고 믿었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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