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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눈을 들어 몇 걸음 앞 허공에서 눈길이 닿았다. 내 속내가 이렇다는 듯 순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느린 움직임도 멈추고 내쉬는 숨마져도 조심스럽게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앞에 멈춘 내가 하나되어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순백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가슴 깊이 묻어두어야만 했던 먹먹함이 몽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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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도 봐야 한다. 걸음을 옮기고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느 때는 걸음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그 숲에 동화되도록 고요히 머물러 숨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런 후에 느끼는 숲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면 몇 걸음 앞서 보란듯 꽃을 피우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꽃과 눈맞춤 한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그곳에서 멈춘 나와 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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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得糊塗 난득호도

청나라의 서예가 정판교는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수룩하게 보이기도 어렵지만(聰明難 糊塗難),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고 하였다.

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하늘의 구름처럼 가볍다. 그 한가로운 모습이 좋아서 찾아보지만 정작 속내는 따로 있다. 세상살이 온갖 욕심의 굴곡을 내달리며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경계코자 함이다. 그 방편으로 삼을만한 문장이라 여겨 옮겼다.

유월 건듯 부는 바람에 띠풀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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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꽃풀, 기다림을 알았을까.

몇년 전 한라산 기슭에서 처음 눈맞춤 한 후 같은 자리에서 거의 매년 보아오던 꽃을 내 뜰에서 마주한다.

네개의 꽃대가 올라오고도 한동안 꼼짝하지 않더니 어느날 부터 조금씩 달라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하얀색의 꽃이 보였다. 몽글몽글 피어오는 꽃이 기특하여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정성을 기울인 것보다 더 큰 무엇을 전해주는 것, 야생에서 만나는 것과는 또다는 특별함이 있다.

한동안 실타래가 풀리듯 피어오르는 꽃 보는 내 마음도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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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휴영 處陰以休影

처정이식적 處靜以息迹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

*장자 잡편 '어부'장에 나온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공자를 타이르는 내용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무러야만 발자국이 쉰다."

*휴일 높은 산에 올랐다. 그곳마저 사람들 북적이는 틈이 버거웠다. 일상에서도 급하게 굴면서 숲에 들어서 그것도 높은 곳까지 올라서도 호들갑떠는 모습들이 낯설다.

쉼, 방법이야 제 각각 일테지만 자연을 찾는 마음 한구석엔 동질감이 있을 것이라 멀리 눈길을 돌리나 발밑으로 눈길 두나 매한가지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1500m가 넘는 곳에도 계곡에 물이 세차다. 소리에 이끌려 베낭을 내려놓고 물가에 앉았다. 한쪽으로 밀려난 꽃잎이 주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침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꽃은 쉬고자 하나 그림자가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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