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 함석헌 : 역사의 길, 민족의 길 지식인마을 39
이흥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815.신채호&함석헌:역사의 길,민족의 길-이흥기

국가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은 신채호와 함석헌을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제시한 해결 방도는 달랐다. 신채호는 폭력 혁명을, 함석헌은 인간의 새로운 변화를 말한다.(1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민족은 능동적인 사회 역사적 주체의 자리에서는 '민중'보다는 한층 내려와 있다. 조선 민족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식민지 피지배 세력으로서 인민이 되었으나 민중의 혁명을 통해 그 살길을 보전할 수 있으리라는 논리가 된다.(95)

민중을 믿지 않고는 전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신을 믿지 않고서는 신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씨알이 저를 깨고 나오는 날이 올 것이다. 깨기 전엔 씨알이다. 깨면 전체다.(124)

진리는 "항상 그 시대 최고 지식을 표현의 의상으로 삼는다"(183)

'시대착오'. 이 말을 써놓고 한번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현재 존재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각 영역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것들이 있을 겁니다. 역사학이나 역사책에도 이런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민중을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우며 역사적 변화를 꿈꾸는 민중사관도 흘러간 시대의 유물일 겁니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어떤가요?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를 쓰면서 민족주의를 비판한 것처럼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아직도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역사학적 흐름에서는 이미 낡은 유물에 불과하고 그 설득력도 예전만큼 못한 게 사실입니다. 거시담론?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과 미시사의 등장 이래로 역사학의 흐름 속에서 '거시담론'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됐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과거의 유물들이 항상 나쁘냐는 겁니다. 그것들이 항상 나쁘고 항상 옳지 않은 걸까요? 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트렌디한 것들만이 옳고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의 흐름에 맞다고 해도 틀리고 옳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고, 과거의 것이라고 해도 좋고 지금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과거의 것들 중에서 지금 필요한 것들을 취사선택하고 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쓰면 됩니다. 무조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며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채호&함석헌:역사의 길,민족의 길>은 신채호와 함석헌이라는 두 인물의 삶의 궤적과 그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독립과 저항과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두 인물의 이야기인 만큼 이 책의 서술 대다수는 과거의 목소리입니다. 조선말에 태어나 천재로 불렸지만 일본에 국가를 빼앗기게 된 상황에서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투사이자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토대로 책을 쓴 역사학자 신채호, 기독교인이지만 무교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종교관을 구축한 채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저항하는 길을 걸어온 인물이자 민중 중심의 기독교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책을 쓴 함석헌. 두 인물의 삶의 궤적은 그들이 걸어온 길만큼이나 한 시대의 삶을 오롯히 증명하며 찬연히 빛을 바랍니다. 그들이 구축한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도 그들의 삶과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그 뿌리가 깊고 강건한 기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이 현재 우리의 삶에 무조건 적용될 수 있는 책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들의 역사관은 흘러간 옛 노래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목소리가 스며 있는 시대착오적인 옛 노래.

그러나 앞에서도 적었지만 흘러간 옛 노래라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닐 겁니다. 저는 오히려 신채호와 함석헌의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이 '시대착오적'이라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버려두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민족주의적이고 민중 중심적인 사관은 오히려 지금이라서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미시 담론에만 빠져드는 현대의 모습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거시담론은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오직 나만 생각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이 사회의 전체적인 비전과 하나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고하게 만드는 그들의 역사관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오직 돈만을 생각하기 쉬운 이 시대에, 두 사람의 빛나는 삶의 궤적만큼이나 낡았지만 힘있는 역사관은 돈을 벗어나는 사람의 길을 생각하게 해줄 겁니다. 그것이 쉽지 않을지라도, 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사고하고 생각하기를 두 손 모아서 기도해봅니다. 그것만이 신채호와 함석헌의 삶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우리만의 작은 길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겨운 사랑 이탈로 칼비노 전집 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814.힘겨운 사랑-이탈로 칼비노

군복의 천가 실크를 사이에 두고 마치 상어들끼리 가볍게 스치듯이 군인의 다리가 부드럽게 찰나적으로 움직여 여인의 다리에 닿았고, 그는 자신의 혈관의 파동을 그녀의 혈관으로 보내듯 움직였다.(10~11)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발코니들이 많은 높은 건물에 에워싸인 넓은 뜰이 보였다. 하지만 뜰은 사막처럼 황량했다. 지붕들 위로 보이는 하늘은 이제 맑지 않고 희끄무레했으며 불투명한 녹청색 서서히 하늘을 뒤덮었다. 그처럼 녜이의 기억 속에서도 불투명한 흰빛이 감각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태양은 무딘 통증처럼 선명하지 않았으며 정지된 작은 빛의 자국 같았다.(57)

생생함을 자연스레 포착한다는 스냅 사진을 좋아하는 취향이 자연스러움을 죽이고 현재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사진에 찍힌 현실이 곧 시간의 날개 위로 달아난 기쁨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지. 그제 찍은 사진일지라도 기념의 성격을 띠게 된다고.(64)

페이지 표면 그 너머에서는 이쪽 세계의 삶보다 훨씬 더 삶다운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고운 모래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존재들이 사는 초록빛이 감도는 푸른 바다 세계와 우리를 갈라놓는 수면처럼.(98)

어둠이 바닥이 없는 땅이어서 그는 아무리 땅을 파도 지칠 줄 몰랐다. 거리에서 마침내 노란 불빛이 켜진 네모난 창문들이 여기저기 난 집들 위로 눈을 들어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별들이 깨진 달걀처럼 으스러져 하늘에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빛으로 꽂혀 그 주위에 무한한 공간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17)

사실 모든 침묵은 그 침묵을 에워싼 미세한 소음들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다.(142)

중요한 것은 여타의 것들을 모두 사라지게 내버려 둔 채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실만 전달하고 우리 자신을 본질적인 의사소통으로,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반짝이는 신호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복잡한 우리 개성과 상황과 얼굴 표정을 지워 버리고 전조등들에 의해 모습을 감추는 어둠 속에 남겨 두어야 한다.(166)

칼비노의 소설은 환상과 비현실, 실험들로 가득한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세계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칼비노의 소설을 볼 때면 그가 어떤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합니다. 그런데 <힘겨운 사랑>은 느낌이 달랐습니다. <힘겨운 사랑>에 펼쳐진 칼비노의 소설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였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힘겨운 사랑>에서 칼비노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찾아온 새로운 변화의 경험을 디테일하고 촘촘하게 묘사합니다.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마치 의사의 손에 인간의 정신이 해부되어 거린 것처럼. 기차에서 미망인과의 사소한 피부 접촉에 망상을 품은 군인, 바닷가에서 헤엄치다 속옷을 잃어버린 부인, 낯선 여인과의 하룻밤의 경험 때문에 설레어하는 회사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는 기나긴 기차여행을 견디는 남자... 이들 모두는 칼비노의 손 끝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드러내며 도시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힘겨운지, 원자화되고 파펴환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갑자기 찾아온 낭만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지를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삶에 빠져서, 자신만의 개인적인 원안에 틀어박혀서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경험을,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일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우리에게 사랑은 힘겨운 일입니다. 적고 나니 서글퍼지네요. 사랑이 힘겹다니. 그래도 부정하지는 않으렵니다. 힘겨운 것을 힘겹지 않다고 속이는 것은 공허한 일일 테니까요. 날카로운 관찰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헤부하며 그 안의 세세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칼비노의 현실적인 소설이 빚어내낸 쓸쓸한 감성 앞에서 다짐을 해봅니다. 그것이 힘겹더라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요. 내게 찾아온 사랑을 힘겹더라도 놓치지 않겠다고요. 그게 칼비노가 바라는 것일 테고, 저 자신도 거기에 동의하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7813.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1-모옌

소설가는 항상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자 하지만 소설 그 자체는 정치와 근접해 있다. 소설가는 항상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자 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비극이다.(5)

별빛은 깜빡이고 융단처럼 부드럽고 두터운 하늘은 대지를 뒤덮고 있으며 들에는 한참 자라는 옥수수 줄기가 사각거리고 있었다.(36)

나는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옥수수 밭에 드러누워 칼날 같은 옥수수 잎새 사이로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노라. 구름이 없구나, 구름이 날아가 버렸구나. 햇빛만이 작열하는 가운데 부글부글 끓는 부토가 내 등줄기를 뜨겁게 삶아대고, 백색의 농약액이 진주처럼 응결되어 옥수수 잎사귀 융모에 매달린 채 떨어질 듯하면서 떨어지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그녀의 눈썹에 매달린 눈물 같구나...(40)

달빛으로 농작물의 잎들은 은가루를 칠한 듯했고 밤벌레들은 쉴새 없이 둘어댔다. 농작물 잎에서는 이슬방울이 굴러 떨어져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고 있었다.(58)

고향 사람들은 마늘을 심어야 집안이 번영하고 부자가 되는데

화가 난 사람들이 크게 패거리를 짓고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잔혹한 인간이 되었구나

세금을 거두기 위해 파견된 자들이 무리를 지어 줄을 서 있으니

억눌린 군중 백성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울부짖는구나(73)

바람이 쉬지 않고 불자 옥수수 밭은 불안하게 한바탕 떠들어댔다. 벌써 시들어버린 옥수수수염과 절반쯤 시들어버린 옥수숫대는 이미 옥수수가 한창 여물던 시절과는 형세와 기복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절에는 비취색의 잎에 부드럽고 가벼운 리본이 펄럭이는 듯했고, 맑고 서늘한 녹색 물결이 한 덩어리씩 모여들곤 했다.(125)

눈을 떴떠니 하늘에 가득 찬 무성한 별들이 보였는데, 별들은 다들 신비하게도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152)

모옌의 소설을 읽다보면 저는 이 사람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과거에 그가 태어났다면, 그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각종 이야기들을 모아서 이야기 모음집을 낸 인물이 되지 않았을가요? 어찌되었든 현대라는 시대에 태어난 그는 소설이라는 문학적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세기 중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토대로 한 무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면서.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에서도 모옌의 이이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현 정부의 무능하고 대책없는 수매정책으로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분노하여 현 정부를 상대로 봉기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모옌은 1980년대 개혁개방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힘없고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농민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잘 읽히는 이야기로 술술 풀어냅니다.

무능하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이며 농민들의 삶에 관심없는 관료들, 가난하게 살면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물질적인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농민들, 변화의 흐름이 당도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낡은 풍습이 지배하는 농촌의 현실, 그 현실 속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옌은 어딘가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말도 안되는 현실 때문에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이 되는 모옌의 이야기는 읽다보면 뭐라고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봉기에 참여 했다는 이유로, 봉기에 참가한 그 수많은 인원 중에서 대표격인 인물로 선정되어 잡혀간 까오양은 감옥에 갇혀 선배 죄수들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오줌을 마시게 됩니다. 아니, 눈먼 딸이 울고 몸이 불편한 아내가 절규하는 사이에 잡혀간 한 남자가 지주 출신 아버지 때문에 억울한하게 당한 문화대혁명 시절의 과거를 회상하다가 자기 오줌을 마시고 자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 앞에서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가난한데다 다리를 절어 결혼혼을 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큰오빠의 결혼 때문에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신부로 팔려가게 된 처녀 진쥐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웃집 총각과 도주했다 잡혀 갇혀있다 그 총각의 아이를 임신하고 마늘종 봉기 사건 이후 아버지는 차에 치여 죽고 어머니는 봉기의 주모자로 잡혀 가고 두 오빠는 분가하여 가난의 그늘을 느끼고 목을 메다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할까요? 진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녀와 도주했다 실패하고 두드려 맞고 큰 돈을 가져오라는 진쥐 아버지의 요구 앞에서 절망하고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마늘 판매가 현정부의 수매 정책으로 수포가 되면서 분노하여 마늘종 봉기에 참여했다 주모자로 몰려서 도주하고 간신히 돌아왔더니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 집에서 목을 메단 걸 목격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요?

모옌이 그려내는 이야기 앞에서 명확한 하나의 감정이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뿐입니다. 뭐라고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를 탁월한 이야기의 형식으로 잘 읽히게 만드는 모옌의 솜씨에 감탄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건, 그 이야기들이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현실은 뭐라고 하나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더군다는 20세기 중국 같이 격동의 역사적 흐름을 겪은 곳이라면 현실을 하나로 표현하기는 힘들죠. 모옌의 소설은 그래서 현실적이죠. 동시에 그의 이야기는 현실을 넘어서는 환상의 모습까지 담고 있기에 환상적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이고,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모옌의 소설. 이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마주하는 우리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그의 소설을 읽을 뿐입니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를 읽은 저처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812.동트기 힘든 긴 밤-쯔진친

'아주 좋은데, 상당히 문명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말이야. 무고한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것보단 나쁜 사람을 놔주는 게 나아.'(59)

'전 경찰이 아니라 대학교수라서 그저 진실을 알아내는 것만이 제가 할 일입니다. 그 진실이 아무리 잔혹하더라도 말이죠.'(308)

'이날 밤, 그들은 말없이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다.

어둡고 어두운 밤, 언제쯤이면 날이 밝아올지 알 수 없었다.'(452)

'2014년 7월 29일, 거물급 호랑이가 낙마했다.'(453)

지금도 분명 세상 어디선가는 '기나긴 어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전쟁과 내전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로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폭력과 범죄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내몰린 '기나긴 어둠'은 언제쯤 끝날까요? 아니, 그들에게 과연 어둠을 걷어낼 아침의 빛이 찾아오기는 할까요?

<동트기 힘든 긴 밤>의 주인공인들도 '기나긴 어둠'을 보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부패와 범죄, 그것을 덮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들은 '기나긴 어둠'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 앞에서 주인공들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주변인물들이 괴롭고 힘겨워하는데 포기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죠. 하지만 오직 한명, 10년에 걸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는 '장양'이라는 인물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함께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에 이 소설의 판타지성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골백번은 넘게 포기했을 상황 앞에서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사람의 모습이 판타지가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하지만 이 판타지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만드는 나쁜 판타지가 아닙니다. 이 판타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현실을 보게 만드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빛이 찾아들 수 있다는 걸 깨우쳐주는 좋은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가진 판타지의 힘은 소설 자체의 내용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판타지성은 배경이 중국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더욱 더 빛을 발합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아닙니다. 권위주의적 정부 시스템 안에서 표현의 자유라든가 비판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독자들이 자각하는 순간, 이 소설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는 어떤 가상과 비현실의 쾌감을 중국적 정치 시스템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강렬하게 전해줍니다. 실제 현실의 장애물이 판타지의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죠. 현실의 장애가 크면 클수록 그걸 극복하는 판타지의 힘이 큰 것처럼.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틀 자체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번뜩이는 도입부를 지나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를 때 '너무 뻔한 거 아냐'하는 생각을 했죠. 그러나 우직하게 권력자의 부패에 저항하는 이야기로만 몰고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감동하는 저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밤이 아무리 길더라도 낮을 보겠다는 그들의 신념과 행동은, 아무리 어둠이 길고 힘들어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동과 더불어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동트기 힘든 긴 밤'을 보내는 이들이 밤을 지나쳐 빛이 비추는 낮을 맞이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2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7811.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칼럼은 '즉물적'이다. 특정한 시기의 사건이나 상황을 바탕으로 그에 따른 자신의 생각을 직조해내는 '칼럼'이라는 글은, 즉물적이고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칼럼은 특정한 시기에 유효한 글이자 특정한 시기나 상황의 분위기를 담은 글이자 그 당시 상황에 시의적절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특정한 시기를 지나서 칼럼을 보면, 그 글은 무언가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글이 쓰인 특정한 시기는 지나가버렸고, 장기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글은 특유의 즉물성과 즉각성, 시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즉물적이고 시의적인 칼럼의 특성상 굳이 그런 글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때는 그 글이 맞는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특정 시기에만 매몰된 '칼럼'이라는 글은 순간적인 글의 소비나 상황에 대한 일시적인 분석에는 맞을지 몰라도, 큰 틀에서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글의 가치가 사라질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나 황현산의 칼럼 모음집인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칼럼'에 대한 내 고정관념은 산산히 부서졌다.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황현산의 칼럼은 특정한 상황이나 시대상을 바탕으로 하고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을 견디고 전해질 묵직한 힘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특정한 상황에서 태어난 즉물적이고 시의적인 글이 보편성이라는 맥락에 포함됐다고 해야할까. 나는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시대를 넘어서 전해질 좋은 칼럼의 어떤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는 딱히 '칼럼'을 읽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칼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견딜 칼럼과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할 칼럼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소설가 중 한명인 움베르토 에코의 인기 칼럼 모음집인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은 그 중 어디에 속할까. 불운하게도 이탈리아어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패러디와 유머의 특성을 잘 살린 이 칼럼들은, 언어와 번역의 한계상 내게 묵직한 힘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대신에 순간순간의 기지와 유머, 톡톡튀는 감성과 독특한 상상력, 패러디와 풍자의 힘으로 중간중간 빛나는 글의 기지를 보여주었다. 또 어떤 글에는 시대를 넘어 전해질 힘도 느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언어와 번역과 해석의 한계는. 나로 하여금 움베르토 에코 칼럼의 속살에까지 가닿게 못하게 했다. 그 부분이 아쉽지만,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책으로 천년을 사는 꿈을 꾸는 에코처럼 나도 책이 천년을 살아서 미래의 그 누군가에게 가닿기 바라니까. 미래의 누군가도 에코나 나처럼 자신만의 꿈을 꾸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