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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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2.동트기 힘든 긴 밤-쯔진친

'아주 좋은데, 상당히 문명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말이야. 무고한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것보단 나쁜 사람을 놔주는 게 나아.'(59)

'전 경찰이 아니라 대학교수라서 그저 진실을 알아내는 것만이 제가 할 일입니다. 그 진실이 아무리 잔혹하더라도 말이죠.'(308)

'이날 밤, 그들은 말없이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다.

어둡고 어두운 밤, 언제쯤이면 날이 밝아올지 알 수 없었다.'(452)

'2014년 7월 29일, 거물급 호랑이가 낙마했다.'(453)

지금도 분명 세상 어디선가는 '기나긴 어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전쟁과 내전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로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폭력과 범죄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내몰린 '기나긴 어둠'은 언제쯤 끝날까요? 아니, 그들에게 과연 어둠을 걷어낼 아침의 빛이 찾아오기는 할까요?

<동트기 힘든 긴 밤>의 주인공인들도 '기나긴 어둠'을 보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부패와 범죄, 그것을 덮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들은 '기나긴 어둠'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 앞에서 주인공들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주변인물들이 괴롭고 힘겨워하는데 포기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죠. 하지만 오직 한명, 10년에 걸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는 '장양'이라는 인물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함께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에 이 소설의 판타지성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골백번은 넘게 포기했을 상황 앞에서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사람의 모습이 판타지가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하지만 이 판타지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만드는 나쁜 판타지가 아닙니다. 이 판타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현실을 보게 만드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빛이 찾아들 수 있다는 걸 깨우쳐주는 좋은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가진 판타지의 힘은 소설 자체의 내용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판타지성은 배경이 중국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더욱 더 빛을 발합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아닙니다. 권위주의적 정부 시스템 안에서 표현의 자유라든가 비판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독자들이 자각하는 순간, 이 소설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는 어떤 가상과 비현실의 쾌감을 중국적 정치 시스템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강렬하게 전해줍니다. 실제 현실의 장애물이 판타지의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죠. 현실의 장애가 크면 클수록 그걸 극복하는 판타지의 힘이 큰 것처럼.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틀 자체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번뜩이는 도입부를 지나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를 때 '너무 뻔한 거 아냐'하는 생각을 했죠. 그러나 우직하게 권력자의 부패에 저항하는 이야기로만 몰고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감동하는 저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밤이 아무리 길더라도 낮을 보겠다는 그들의 신념과 행동은, 아무리 어둠이 길고 힘들어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동과 더불어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동트기 힘든 긴 밤'을 보내는 이들이 밤을 지나쳐 빛이 비추는 낮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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