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2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7811.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칼럼은 '즉물적'이다. 특정한 시기의 사건이나 상황을 바탕으로 그에 따른 자신의 생각을 직조해내는 '칼럼'이라는 글은, 즉물적이고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칼럼은 특정한 시기에 유효한 글이자 특정한 시기나 상황의 분위기를 담은 글이자 그 당시 상황에 시의적절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특정한 시기를 지나서 칼럼을 보면, 그 글은 무언가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글이 쓰인 특정한 시기는 지나가버렸고, 장기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글은 특유의 즉물성과 즉각성, 시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즉물적이고 시의적인 칼럼의 특성상 굳이 그런 글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때는 그 글이 맞는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특정 시기에만 매몰된 '칼럼'이라는 글은 순간적인 글의 소비나 상황에 대한 일시적인 분석에는 맞을지 몰라도, 큰 틀에서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글의 가치가 사라질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나 황현산의 칼럼 모음집인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칼럼'에 대한 내 고정관념은 산산히 부서졌다.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황현산의 칼럼은 특정한 상황이나 시대상을 바탕으로 하고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을 견디고 전해질 묵직한 힘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특정한 상황에서 태어난 즉물적이고 시의적인 글이 보편성이라는 맥락에 포함됐다고 해야할까. 나는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시대를 넘어서 전해질 좋은 칼럼의 어떤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는 딱히 '칼럼'을 읽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칼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견딜 칼럼과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할 칼럼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소설가 중 한명인 움베르토 에코의 인기 칼럼 모음집인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은 그 중 어디에 속할까. 불운하게도 이탈리아어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패러디와 유머의 특성을 잘 살린 이 칼럼들은, 언어와 번역의 한계상 내게 묵직한 힘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대신에 순간순간의 기지와 유머, 톡톡튀는 감성과 독특한 상상력, 패러디와 풍자의 힘으로 중간중간 빛나는 글의 기지를 보여주었다. 또 어떤 글에는 시대를 넘어 전해질 힘도 느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언어와 번역과 해석의 한계는. 나로 하여금 움베르토 에코 칼럼의 속살에까지 가닿게 못하게 했다. 그 부분이 아쉽지만,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책으로 천년을 사는 꿈을 꾸는 에코처럼 나도 책이 천년을 살아서 미래의 그 누군가에게 가닿기 바라니까. 미래의 누군가도 에코나 나처럼 자신만의 꿈을 꾸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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