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읽을 책도 많아
1년에 많은 책을 읽는 것을 큰 목표로 삼기도 하지만,
때로는 느긋하게 한 페이지를 원하는 시간만큼 바라보는 것도 참 좋다 싶다.
그림책의 어느 한 페이지에서 그림 구경을 해도 좋고
혹은 소설이나 에세이의 어느 한 페이지에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든가 다르게 생각해도 좋다.
어느 쪽이든 사유하는 시간이란 건 의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책을 접하다 보면 어찌 마음에 드는 게 한 페이지뿐이겠는가 싶겠지만,
그저 개인적인 취향, 그때그때 그냥 마음에 들었던 한 페이지, 인상 깊었던 곳을 골라
포스팅을 해볼까 한다.
한마디로 작성하는 사람 마음대로!
나도 내 마음을 몰라요~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콘셉트로 자유롭게 페이지를 즐겨보기.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냥 눈에 들어오는 그 페이지에 머물러야지.
나중에는 그것이 일상의 한 풍경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꾸준히 무언가가 내 마음을, 내 생각을 두드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에는 그림책에 빠져있는데, 나는 어른이라도 충분히 그림책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작가들의 개성 담긴 그림, 상상력이 가득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힐링이 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늘 소개할 그림책은 '노란 풍선의 세계 여행'이다.
사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서 받았을 때 여러모로 깜짝 놀랐던 책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선명한 색감이라든가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 만족스러웠으나
이렇게 클 줄은 몰랐음.
웬만하면 큰 그림책 꽂을 수 있던 책장에도 이 책은 안 들어감!!
그래서 책장에서 누워서 지내는 아이. 크크크
아, 이보다 더 큰 책은 없을 거야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놀라운 크로스 섹션》 빌리고 보니 그건 또 아니더라.
그래서 크다고 마구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냥 조금만... 후후훗.
(이왕이면 책장에 들어가서 말끔하게 자리잡으면 얼마나 좋아. ㅠㅠ)
페이지 소개한다고 해놓고는 이런 넋두리가 참 쓸데 없겠지만
혹시 구매하시는 분 계실지도 모르니까 참고하시라고 써둔다.
'만족스러운데 크기가 참...'볼 때마다 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노란 풍선이 하늘로 둥실 둥실 떠다니며 사막이라든가 바다라든가 여러 곳을 여행하는데
도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 장면!!
건물이 가득차서 복잡해 보일 수도 있으나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 개인 취향이긴 한데 워낙 그림을 못 그려서
이것저것 사물이 많이 그려진 페이지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비중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
이제 하나하나 차분하게 들여다보자.
교도소에서 죄수가 탈옥하는 중.
철조망에 이불을 돌돌말아서 무사히 잘 빠져나왔다.
기차역은 뭔가 설렘을 준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 등에 배낭을 멘 사람,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 모습 등등.
물론 술을 마시고 대낮부터 취해있는 사람도 있다.
빠르게 대충 봤더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페이지 맨 아래쪽 구석.
건물 옥상에 있는 배트맨!!
건너편 건물에서는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도로에서 토마토 트럭이 쓰러졌다.
그 와중에 품에 한가득 토마토 안고 도망가는사람.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라푼젤도 등장한다.
책 가운데 부분에 있어 이것도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피카소 전시회장.
어린이들이 견학하기 위해 줄을 서 있고, 한쪽에 풍선 파는 아저씨도 보인다.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 함께 사진 찍는 중.
그리고 이 장면 주변이 유난히 꽁냥꽁냥한 커플들이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계단에서, 나무 아래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큰일이다. 어떤 건물에서는 불이 나 위험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다급함, 걱정이 느껴지는데
흰 잠옷 차림에 나이트 모자까지 쓴 사람에게서는 묘하게 무심함, 여유가 느껴진다.
은근 씬 스틸러!
그리고 그렇게나 찾고 싶었던 인물!! 저기 저 양탄자를 사는 아저씨다.
이 책은 매 페이지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법 양탄자를 탄 아저씨다.
빨간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도시 장면에서는 없는 건가 한참을 찾았더랬다.
포기할까 싶었는데 오기가 생겨서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거냐며 이리 들여다보고 저리 들여다봤다.
어머!! 여기 계셨네~ 양탄자를 사고 계셨던 거였음!!
아니 그런데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그냥 이렇게 막 시장에서 쉽게 구입 가능한 거였던가 싶어서 또 막 웃음 나오고 그랬다.
한 페이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 페이지만
이렇게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시간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거!
게다가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잘 그려낸 작가 덕분에
정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기분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