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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쓴 우울
장혜린 지음 / 잔물결 / 2020년 7월
평점 :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가장 긴 장마라고들 뉴스에서 떠들고, 비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이쯤되면 사람들이 날씨로 인해 '우울하다' 라고 투정을 한다. 이 책처럼 말이지.
'연필로 쓴 우울' 알록달록 하지도 그림이 있지도 않은 하얀 바탕의 책.
97년 작가가 쓴 일기를 모은 소설같은 수필로 설명될 수 있겠다. 우리나라 나이로 24살, 2017년 겨울부터 2020년 올해 봄까지 쓴 글들이니 대략적으로 21살부터의 감정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린 작가가 아닐 까. 그 나이에 나는 군인아저씨였으니,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지.
작가 말대로 서점가에는 우울과 불안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책들이 많을테다. 이 책은 온전히 작가가 가진 우울함에 대해 고스란히 나열해놓고 있다. 마치 나이 차이나는 조카나 동생의 일기장을 개인SNS로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화가나고, 무기력하고, 부끄럽고, 울고싶고, 죽고싶고, 제일 중요한 우울하고 등등. 학벌에 대한 집착과 가정환경, 어디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다는 거까지 무엇이 이 청춘을 힘들게했을 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280여쪽의 책에서는 일말의 희망의 목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툭툭 내뱉는 '아, 우울해.' 와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와 연대의식을 느끼길 바란다는 작가의 마지막 장은 나에게 그냥 공허하게 다가왔다. 글쎄. 작가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우울한 사람에게는 책이 위로가 될테지만 말이다. 그러기엔 내가 아직은 정신이 건강한가보다. 사실 불안하다. 이 서평을 보고, 작가가 우울해할까봐.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 까 궁금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