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블루스
맹지나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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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을 지내고나니 입춘이 목전입니다. 아직은 한겨울이라서인지 더욱 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번 봄에는 어디론가 색다른 구경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판에 맹지나작가님의 <그리스 블루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파란 표지가 금새라도 그리스로 떠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김진영님의 <그리스 미학기행; http://blog.joins.com/yang412/13018098>도 파란색 표지였던 것 같은데, 그리스 여행기는 왜 파랑 일색일까요? 지중해의 파란색에 더하여 그리스의 하늘도 파랑 일색일까요? 맹작가님의 그리스 여행기는 독특하게도 6개의 대표적인 그리스의 섬을 찾아가는 여행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이번 여행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 왔다. 어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올려 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가보고 싶은 역사적 명소나 휴양지도 넘쳐나는데, 그리고 그리스에 가면 볼 것도 많은데 왜 섬이었을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리스 섬 여행이란 (…) 푸른 돔을 쓴 흰 건물 외에 산토리니에 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무정보의 백지상태로 떠나 몸과 마음을 더 깨끗이 비워 오는 여행을 강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 그렇다면 여섯 개나 되는 그리스의 섬을 돌아보는 강행군을 할 일은 아니고 그 가운데 하나를 정해서 느긋하게 머물면서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연구실에 있던 교수 한 분은 여름이면 북쪽 호수가에 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별만 바라보다 온다고 했는데, 어쩌면 몸을 쉬면서 마음을 비우기 위한, 진정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면, 케팔로니아, 미코노스, 산토리니, 크레테, 스키아토스 그리고 스코펠로스로 이어지는 섬여행을 하게 됩니다. 크레테는 이미 김진영님을 따라 다녀온 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특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http://blog.joins.com/yang412/12775771>를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그려보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산토리니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그리시 사람들의 친절함을 강조하고 있어 그리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가시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그리스를 주저 없이 꼽는 이유가 바로 그리스인들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배려심 때문이다.(33쪽)”

 

저자가 직접 묵은 숙소와 주인들의 친절함, 그리고 그 섬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시시콜콜하게 적고 있는 저자의 배려는 같이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좋은 여행은 좋은 숙소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교통편, 음식 그리고 구경거리라고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작가는 읽는 이를 위하여 넘치는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넉넉하게 담고 있는 현장감이 넘치는 사진들에 설명이 없어 본문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작가와 함께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정리하고 있는 돌아본 섬들에 대한 생각은, ‘그저 하루키의 북소리에 끌려 나섰던 여행이라서 충분한 정보를 사전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탓에 그림과 사진을 통하여 상상했던 그리스 섬의 모습이 매일 무너져 내리고, 대신 용감한 여행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감동이 넘치는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섬들의 대부분이 아직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탓에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읽고 난 느낌을 한 줄로 정리하면, “그 섬에 가고 싶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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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0시간의 법칙 - 무엇이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완벽하게 배운다
조시 카우프만 지음, 방영호 외 옮김 / 알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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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무엇이든 일단 벌이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무대뽀 정신으로 무한도전을 불사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으면서 보다 신중해진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면 독학전문가 조시 카우프만의 <처음 20시간의 법칙>을 읽으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시간과 기술을 꼽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내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기술의 문제인데, 어떤 일이든지 어느 정도의 기술수준이 되어야 재미가 증폭되는 단계에 접어들 수 있게 됩니다. 즉 ‘좌절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좌절의 장벽을 넘어서기까지 투자가 필요한 것인데, 저자는 그 기간은 2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20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적절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처음 20시간의 법칙>에서 첫 3장을 할애하여 법칙을 설명하고, 다음 4개의 장을 통하여 각각, 요가, 우쿠렐레, 윈드서핑 그리고 바둑을 배우게 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과정을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이건 세계 정상급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고도의 집중된 노력으로 1만 시간을 연습에 투자하면 가능하다는 법칙입니다. 세계정상급의 수준이라는 것은 대부분 먹고사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고, 먹고사는 일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1만 시간씩 투자해서 세계 정상급 수준에 이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20시의 법칙’을 읽다가 생각이 난 것인데, 20대 후반 무렵 우연한 기회에 사교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규 교육코스도 있고 관심이 있는 분들끼리 모여 즐길 수 있는 장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비밀교습소라는데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부르스, 지루박, 탱고, 트롯토, 월츠까지 모두 다섯 종류의 사교춤을 하루 한 시간씩 열흘에 완성시켜주고, 실전에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몸치이지만 그래도 눈치껏 열심히 배운 탓인지 기본 스텝에 더해서 난이도가 조금 높은 스텝까지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던 기술의 수준을 감안하여 ‘20시간 안에 새로운 기술을 마스터하기’의 원리는 일종의 목표수준 정하기에 해당하는, ‘기술을 최소 하위단계로 나누는 분리단계’, ‘하위단계의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에 이르는 한습단계’, ‘연습에 방해되는 물리적․정신적․감정적 요인을 없애는 제거단계’, ‘최소 20시간 동안 핵심적인 하위기술을 실습하는 연습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20시간의 법칙’을 적용하여 새로운 무엇을 배우는 열 가지 원칙이 중요합니다. “1.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선택한다, 2. 한 번에 기술 하나씩에만 에너지를 쓴다, 3. 목표성과 수준을 설정한다, 4. 목표 기술을 하위기술로 세분화한다, 5. 핵심도구를 입수한다, 6. 연습에 방해되는 요인을 제거한다, 7. 몰입할 수 있는 연습 시간을 확보한다, 8. 재빠른 피드백 고리를 만든다, 9. 스톱워치를 이용하여 잠깐씩 연습한다, 10. 연습량과 속도에 중점을 둔다.(37~38쪽)”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요가, 우쿠렐레, 윈드서핑 그리고 바둑을 실전연습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만, 개인적 선호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꼭 이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둑은 어렸을 적에 어깨넘어로 배웠기 때문에 초급수준은 넘어섰다는 생각입니다만, 저자가 윈드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읽다보니 어렸을 적에 요트를 배우는 과정이 정말 무대뽀였구나 싶습니다. 강사로부터 간단하게 턴하는 기술을 배우고는 바로 끌고 나갔는데, 구명조끼는 챙겨 입었다고는 하지만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저로서는 참았어야 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혼자서 독학으로)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데 얼마나 도전적인가 하는 점 뿐만 아니라,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주도면밀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전정신이 충만한 젊은 독자들은 사전준비의 중요성을, 새로운 것 배우기를 주저하는 분들은 도전 가능성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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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이종각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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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영국의 미술사학자 타이먼 스크리치교수가 쓴 <에도의 몸을 열다; http://blog.joins.com/yang412/12532034>를 [북소리]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에도를 중심으로 일본에 네덜란드의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의학, 특히 외과술이 전해진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학이 견고한 전통의학의 아성을 뚫고 일본에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중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하여 다양한 유럽 문화가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전통의학보다 우수한 서양의학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서양의학서들이 한자로 번역,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두술 이외에 서양의학이 중국에 뿌리를 내린 것 같지 않습니다. 역시 중국을 통하여 서양문명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 우리나라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오란다라고 부르던 네덜란드와 제한적인 교류를 하고 있을 뿐이던 일본에서 서양의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론컨대 유일하게 통상이 허용된 네덜란드 배를 타고 온 능숙한 외과의사가 때마침 만난 환자에게 외과술을 베풀고 효험을 얻은 것을 지켜보던 일본통역이 그 기술을 익혀 외과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의 통역수준으로는 내과기술을 익히기란 쉽지 않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병증에 대한 의학적 술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로 네덜란드에서 감초를 원료로 가래를 삭이는 ‘즈보토’나 외뿔고래의 어금니를 가루로 만들어 식중독에 사용했던 ‘우니코루’가 수입되어 팔리면서 난의학이 외과영역에서만 통한다는 선입견이 바로 잡히게 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스기타 겐파쿠 등이 번역하여 소개한 해부학책 <해체신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양의 전통의학서에도 인체의 장부의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중국의 최고(最古)의 의학서 <황제내경>에 실려 있는 추상적인 그림을 원전으로 하여 오래도록 이어져왔던 것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사형수의 사체를 부검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스기타 겐파쿠 등이 그런 부검자리에 입회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해체신서>를 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근․현대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이종각교수님은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에서 ‘일본 최초로 서양 번역에 도전 인체해부서 <해체신서>를 펴내 일본 근대화를 열다’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이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해체신서>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체신서>의 출간으로 난학은 근대일본의 변화에 촉매역할을 하면서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일본이 서양식 근대화를 이루는 토양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겐타쿠는 일본 근대의학의 개척자로 칭송되어 각급학교의 교과서에 등재되는 위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해체신서>는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Ontleedkundige Tafelen》을 저본으로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 등을 중심으로 하여 중역한 의학서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스크리치교수는 중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과 설(設)은 전부 해체에 관한 화란의 여러 책을 비교연구하여 가장 명료한 것을 채택하고 이를 베껴서 손쉽게 정통하게 한 것(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에도의 몸을 열다, 169쪽)”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학계가 다수의 의학서를 종합할 수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어에 정통한 의사가 있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쿄 우에노역 근처에 있는 미나미센주역 건너편에 있는 에코인(回向院)이라는 조그만 절이 있는데, 도쿠가와 막부시절인 1651년에 문을 연 고쓰가하라(骨ヶ原)형장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1868년 폐지될 때까지 210년간 무려 2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갔다는, 막부시대 에도(江戶)의 2대 형장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일본 근대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일이 일어난 것은 1771년 초봄의 일입니다. 이날 스기타 겐파쿠를 비롯하여 에도에서 근무하는 각 번의 시의(侍醫, 다이묘 등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인체 해부를 처음 참관하게 된 것인데, 이들은 겐파쿠와 마에노 료타쿠가 들고 온 네덜란드어 인체해부서 <타펠 아나토미아>에 실려 있는 폐, 간, 장,위 등의 모습과 위치가 중국 의서에서 설명한 위치와 형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이날 해부를 통하여 인체와 하나하나 대조하여 확인하였는데, 어느 하나 틀리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에서 의사들이 인체해부에 공식적으로 참관하게 된 것은 이보다 17년 앞선 1754년의 일이고 당시 참관했던 막부의 관의 야마와키 도요는 참관결과를 기록하고 인체도를 그려 <장지(藏志)>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역시 중국의 오장육부설과 실제로 본 인체해부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의사들의 인체해부 참관이 이어졌지만, ‘중국인과 서양인의 인체구조가 다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곁길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만,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28465>에서 ‘현상(現狀)과 실재(實在)’를 구분하는 방법, 즉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과 사물이 사실상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물을 그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데서 머물지 않고 그 사물이 사실상 무엇인가를 풀어내기 위하여 사유하는데서 우리는 진일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겐파쿠는 분명 다른 의사들과는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체해부를 참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료타쿠와 같은 번에 소속된 번의 나카가와 준안에게 <타펠 아나토미아>를 번역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동의를 얻어낸 것입니다. 당시 료타쿠는 49세, 겐파쿠는 39세, 그리고 준안이 33세였다고 합니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실제로 본 인체 해부는 참으로 하나하나가 놀라움이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 이 <타펠 아나토미아>, 한 권만이라도 아무쪼록 새롭게 번역한다면 인체의 내외구조도 잘 알게 돼, 오늘날의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50쪽)” 그런데 문제는 이들 가운데 평소 관심도 있었고 나가사키에 유학도 다녀온 료타쿠가 그나마 네덜란드어에 조금 눈을 뜨고 있었을 뿐, 겐파쿠나 준안은 아예 ABC도 모르는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누가보아도 이들이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합류한 가쓰라가와 호슈까지 네 명은 료타쿠를 맹주로 하여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타펠 아나토미아>를 읽으면서 네덜란드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니 그 무모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번역작업에 도움이 될 자료는 료타쿠가 틈틈이 만든 네덜란드어 단어장과 아오키가 지은 <화란문자약고>의 필사본 그리고 나가사키 유학 때 구입한 프랑스-네덜란드어 사전 <블란사서>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모으고 문장을 이해하면서 번역을 조금씩 진행해나갔는데, 특히 료타쿠의 집념은 대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료타쿠가 조사해서 추정한 단어나 문구에 대해 겐파쿠 등이 의견을 제시하여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융통성 없는 료타쿠는 번역이 완료되어야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곤 해서 어려움이 컸지만, 머리 회전이 빠르고 요령이 좋은 겐파쿠가 그와 같은 결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번역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겐타쿠는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막부의 양서에 대한 감시와 규제입니다. 8대 쇼군 요시무네가 서양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 1720년 양서의 수입을 허용했지만 서양과 관련된 일본내 출판물은 심한 제약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번역작업이 시작된지 1년 반 정도 지나서 1차 번역이 완료할 수 있었는데, 역시 수완이 좋은 겐파쿠가 번역된 내용 가운데 해부도만 모아서 먼저 출간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본서에 대한 일종의 광고성 전단[당시에는 이런 광고성 전단을 히키후다(報帖)라고 했다고 합니다]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당시 중국의술 밖에 모르는 의사들이 갑자기 오란다 의학의 번역서가 출판되면 그 유용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이단으로 몰아 소동을 빚는 사태를 방지해보자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고심참담의 노력 끝에 이룩한 신성한 학문적 성과를 선전용 전단으로 사용하다는 겐타쿠의 제안이 료타쿠를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던 <홍모담>이 발매금지를 당하고 저자들이 처벌을 당했던 사례를 들어 납득을 시킨 겐타쿠는 한걸음 더 나아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 설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서의 제목을 정하는데 있어, 인체의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하고 해부도가 첨부된 의학서이므로 ‘해체(解體)’라는 용어가 원서의 내용에 부합된다고 해서 선택되었고, 일본에 새롭게 소개되는 학설이라는 의미로 ‘신서(新書)’라는 말을 붙이기로 정하였고, 선전용 책자의 이름은 해체약도(解體約圖)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해체약도>의 출간 이후 막부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한방의를 비롯한 세간에서도 부정적 반응은커녕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이들은 <해체신서> 발간을 서두르고, 겐파쿠는 번역작업의 가장 큰 공로자인 료타쿠에게 <해체신서>의 앞머리를 장식할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서문은커녕 번역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고사했다고 합니다. 나가사키유학길에 들른 덴만쿠(天滿宮)에 참배하면서 ‘난학을 공부하여 얻은 지식을 이름을 알리는 미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신명(神明)에게 맹세한 것을 지키겠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변변치 않은 네덜란드어 실력으로 서둘러 진행한 번역한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 즉 학자적 양심으로 부끄러워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한 것이고, 그 결과 겐타쿠가 받은 모든 영예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말았던 것이라고 하니 안타까우면서도 학자적 양심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겐타쿠는 번역작업에 참여한 호산의 아버지, 막부의 고위 의관인 호겐을 통하여 10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해체신서>를 헌상하는데 성공하여 막부의 동의를 등에 업으면서 한방의의 거센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니, 얼마나 용의주도한 인물인지 알만 합니다.

 

<해체신서>가 발간된 이후 겐파쿠를 중심으로 난의학이 융성하게 되는데 겐파쿠는 난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을 담은 회고록을 집필해서 83세 되던 1815년 탈고하지만 따로 출판하지 않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필사본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겐파쿠의 회고록은 1869년에서야 후쿠자와 유키치(게이오대학의 창설자)의 눈에 띄어 <화란사시(和蘭事始)>라는 필사본의 제목을 <난학사시(蘭學事始)>로 바꾸어 목판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 책의 부록으로 덧붙여 있어 읽어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말미에 <해체신서>가 발간될 무렵의 조선에서는 서양의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에서와 달리 서양의학을 일찍 수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막부가 대외정책을 비롯하여 중앙행정을 통제하고는 있다고는 보건행정은 번주가 다스리는 지방행정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반면 중국이나 조선은 강력한 중앙행정조직이 지방행정까지 결정하고 있었고, 보건의료정책 역시 중앙에서 결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전통의학자들의 벽을 뚫고 전혀 새로운 체계를 가진 서양의학이 자리잡을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통의학을 하시는 분들이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는 <동의보감>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도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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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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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28465>에서 ‘현상(現狀)과 실재(實在)’를 구분하는 방법, 즉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과 사물이 사실상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에서 철학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 입니다. 장석주교수님의 <철학자의 사물들>은 그 실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권성우교수님은 발문에서 “<철학자의 사물들>은 제목 그대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존재하는 서른 개의 사물을 각기 서른 명의 철학자(사상가)의 문제의식과 절묘하게 연계시켜 설명하는 일종의 철학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273쪽). (…) <철학자의 사물들>은 장석주의 박람강기로 표현할 수 있는 드넓은 지식,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 인간의 욕망과 행위를 투시하는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충분히 개성적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 그 사물들의 존재와 특성 그리고 이에 연계된 인간의 실존을 걸출한 철학자들의 독창적인 사유와 연계시켜 해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적 사물들>은 로제 폴 드르와의 <사물들과 철학하기>의 심화이자 확대라고 할 수 있겠다.(275~276쪽)” 그러니까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드르와의 <사물들과 철학하기>를 벤치마킹한 글쓰기였던가 봅니다.

 

어떻든 재미있습니다. 관계, 취향, 일상, 기쁨, 이동 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에 상응하는 서른 가지의 사물이 사유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특별한 원칙이나 규범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는 이 사물들이 이끈 그 사유 안에서 삶과 죽음, 주체와 타자, 꿈과 기대, 욕망과 무의식, 기호와 교환 따위에 대해 묻고 대답하려 했는데, 이 사물들을 오래 유심히 바라보고 사유하다보니 그것이 바로 철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설명하던 철학은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실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서른 가지의 사물에 대하여 사유하는 과정에서 주제에 부합하는 철학자 혹은 사상가의 생각을 인용하고 있습니다.(스티브 잡스를 철학자 혹은 사상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잡스의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배려한 것이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에 대한 사유는 현대 신용사회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부채를 늘리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음은 신용카드 발급에 제한을 두지 않던 시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던 부작용으로 입증되기도 하였는데, 신용카드의 이런 어두운 일면을 이탈리아의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에 나오는 “돈/부채는 인간 부품에게 신용도, 합의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기능하기만을 명령한다.(16쪽)”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신용카드는 부채를 만드는 수단이자 삶을 통제하고 통화그물망 안에서 파편화하고 기계적 노예화로 이끄는 방법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부채를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신용카드를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저자가 주장하는 부채인간이며 기계적 금융 시스템에 예속된 노예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기억과 망각의 관계를 수염을 자르는 면도기에서 발견한 것도 독특하다고 하겠습니다만, 여행가방에서 여행을 읽어낸 것도 대단한 착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인용하고 있어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는 보통의 말에서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장소와 만나는 놀라움에서 튀어나온다. (…) 멕시코에서 맞은 어느 추석날 새벽 한꺼번에 울려퍼지는 성당의 종소리들에서 내가 아는 세계가 결코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받았다.(236쪽)”라는 사유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서른 가지나 되는 사물들로부터 저자가 이끌어내고 있는 다양한 생각은 물론 관련된 철학자 혹은 사상가들의 생각을 덤으로 즐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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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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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과 자원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인류가 다음 세기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독일 작가 율리 체가 <어떤 소송>을 통하여 전망하는 다음 세기는 인간의 건강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입니다. 모든 질병이 퇴치되고, 위생과 청결이 지배하는 사회,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법이 정한대로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는 사회는 얼핏 보기에 인류가 꿈꾸어오던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금지하는 사항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면역체계가 다른 이성끼리의 사랑이 승인되지 않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교수가 타인의 타액을 마시면 중태에 빠지는 것는 체질적으로 기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소송>의 세계에서는 최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금지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어떤 소송>은 주인공 미아 홀에 대한 배심재판소가 내린 다음과 같은 판결로 이야기를 열고 있습니다. “I 피고는 테러 전쟁 준비를 포함한 방법적대적인 책동으로 유죄다. 국가 평화를 위태롭게 하고 독성물질을 취급하였으며 보편적 복리에 부담을 안기며 필수적 조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사실이 있다. II 고로 피고는 무기 동결형에 처한다. III. 피고는 소송 비용과 기타 필수 경비를 부담한다.(14쪽)”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체제에서도 규칙을 벗어나려는 개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평소 이 사회의 최고기관인 방법이 규정하고 있는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온 미아가 이토록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은 동생 모리츠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27세의 몽상가 모리츠가 소개팅 상대 지뷜레를 만나는 장소에 나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녀의 몸에서 발견된 정자는 모리츠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져 살인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동생이 죽기 전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 것에 마음을 쓰다 보니 방법이 정한 규정을 소홀히 하게 된 것입니다. 온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인류의 강박적 욕구는 기독교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거쳐 방법주의 체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통제하는 사회에 대하여 언론인 크라머는 ‘우리 사회는 목표에 도달했다.’라고 전제하고, “개체적이면서도 또 집단적이고 절대적인 생존 의지를 특징으로 하는 인간들은 모든 개인에게 가능한 한 길고 막힘없는, 즉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하나의 방법을 발전시키게 되었다.(40쪽)”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미아는 DNA검사의 신빙성을 의문시할 합리적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방법은 DNA검사는 틀릴 수 없다. 이와 같은 무오류성이 방법의 지주(支柱)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미아가 주장하는 것처럼 DNA검사의 완벽성에 허점이 존재했다는 설명이 제기됩니다. 즉, 모리츠는 어렸을 적에 백혈병을 앓아 줄기세포치료를 받았다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즉, 줄기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모리츠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설명입니다만,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혈구모세포를 이식하더라도 이식받은 사람의 정자에 담기는 유전정보까지 바뀌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대해석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모리츠가 만들어냈다는 이상적 애인은 만들어 낸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난주에 읽었던 <이매지너리 프렌드; http://blog.joins.com/yang412/13322931>에 등장하는 ‘상상친구’와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어두움 그림자의 하나인 마녀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마녀란 말은 ‘울타리를 타는 여자’라는 표현에서 나왔는데, 울타리는 경계선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145쪽). 그렇기 때문에 울타리를 탄 여자는 문명과 야생 사이 경계선에 머물러, 이쪽과 저쪽, 삶과 죽음, 몸과 정신 사이에, 긍정과 부정 사이, 신앙과 무신론 사이처럼 ‘사이’가 그녀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모리츠의 죽음에 방법의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아가 무기동결형에 처해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유죄로 확정된 것일까요? 가디언지는 개인의 자유와 일상생활이 통제된다는 점에서 율리 체의 <어떤 소송>이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된다고 했습니다만,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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