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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송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인류가 다음 세기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독일 작가 율리 체가 <어떤 소송>을 통하여 전망하는 다음 세기는 인간의 건강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입니다. 모든 질병이 퇴치되고, 위생과 청결이 지배하는 사회,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법이 정한대로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는 사회는 얼핏 보기에 인류가 꿈꾸어오던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금지하는 사항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면역체계가 다른 이성끼리의 사랑이 승인되지 않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교수가 타인의 타액을 마시면 중태에 빠지는 것는 체질적으로 기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소송>의 세계에서는 최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금지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어떤 소송>은 주인공 미아 홀에 대한 배심재판소가 내린 다음과 같은 판결로 이야기를 열고 있습니다. “I 피고는 테러 전쟁 준비를 포함한 방법적대적인 책동으로 유죄다. 국가 평화를 위태롭게 하고 독성물질을 취급하였으며 보편적 복리에 부담을 안기며 필수적 조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사실이 있다. II 고로 피고는 무기 동결형에 처한다. III. 피고는 소송 비용과 기타 필수 경비를 부담한다.(14쪽)”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체제에서도 규칙을 벗어나려는 개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평소 이 사회의 최고기관인 방법이 규정하고 있는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온 미아가 이토록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은 동생 모리츠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27세의 몽상가 모리츠가 소개팅 상대 지뷜레를 만나는 장소에 나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녀의 몸에서 발견된 정자는 모리츠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져 살인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동생이 죽기 전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 것에 마음을 쓰다 보니 방법이 정한 규정을 소홀히 하게 된 것입니다. 온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인류의 강박적 욕구는 기독교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거쳐 방법주의 체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통제하는 사회에 대하여 언론인 크라머는 ‘우리 사회는 목표에 도달했다.’라고 전제하고, “개체적이면서도 또 집단적이고 절대적인 생존 의지를 특징으로 하는 인간들은 모든 개인에게 가능한 한 길고 막힘없는, 즉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하나의 방법을 발전시키게 되었다.(40쪽)”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미아는 DNA검사의 신빙성을 의문시할 합리적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방법은 DNA검사는 틀릴 수 없다. 이와 같은 무오류성이 방법의 지주(支柱)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미아가 주장하는 것처럼 DNA검사의 완벽성에 허점이 존재했다는 설명이 제기됩니다. 즉, 모리츠는 어렸을 적에 백혈병을 앓아 줄기세포치료를 받았다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즉, 줄기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모리츠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설명입니다만,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혈구모세포를 이식하더라도 이식받은 사람의 정자에 담기는 유전정보까지 바뀌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대해석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모리츠가 만들어냈다는 이상적 애인은 만들어 낸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난주에 읽었던 <이매지너리 프렌드; http://blog.joins.com/yang412/13322931>에 등장하는 ‘상상친구’와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어두움 그림자의 하나인 마녀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마녀란 말은 ‘울타리를 타는 여자’라는 표현에서 나왔는데, 울타리는 경계선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145쪽). 그렇기 때문에 울타리를 탄 여자는 문명과 야생 사이 경계선에 머물러, 이쪽과 저쪽, 삶과 죽음, 몸과 정신 사이에, 긍정과 부정 사이, 신앙과 무신론 사이처럼 ‘사이’가 그녀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모리츠의 죽음에 방법의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아가 무기동결형에 처해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유죄로 확정된 것일까요? 가디언지는 개인의 자유와 일상생활이 통제된다는 점에서 율리 체의 <어떤 소송>이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된다고 했습니다만,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