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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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출판사 블로그의 주인장 청미지기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황홀한 사람>의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의 이름이 낯익은 듯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첫줄을 읽자마자 이미 읽은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1995년에 쓴 첫 번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은색의 황홀>이었습니다. <은색의 황홀>1995년에 가나다라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소개한 책이었습니다. 아리요시 사와코가 1972년에 발표한 <恍惚>을 번역하여 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6년에는 <꿈꾸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지훈에서 다시 소개됐고, 2021년 청미출판사에서 원저의 제목을 살려 <황홀한 사람>으로 다시 번역하여 소개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은 고령인구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치매노인에 대한 복지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입니다만, 작가가 <恍惚>을 발표하던 1972년 무렵 만해도 치매가 나이 들면 그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질병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또한 치매환자에 대한 돌봄도 주로 가족들에게 맡겨져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恍惚>이 발표되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치매노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게 되었다고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발표하던 1996년 만해도 치매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1970년대의 일본 수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책을 내고는 방송과 대중강연을 통하여 치매가 나이 들면 생기는 망령이 아니라 질병임을 강조하고 진단, 치료, 간병 등에 대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방송과 대중강연을 통하여 설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은색의 황홀>을 소개하면서 치매에 걸린 시게조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치매증상, 식탐과 배회 증상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시게조의 간병을 전담해야만 하는 아키코처럼 치매환자의 주간병인의 어려움을 서로 도와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6년에 발표한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2003년에는 <치매 나도 고칠 수 있다>, 2017년에는 <치매 당신도 고칠 수 있다>에 이어 2022년에는 <치매 고칠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4반세기에 걸쳐 세 차례의 개정작업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치매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의 경우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간병에 주안점을 맞추고 잃어가는 기억력을 보완하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쳤지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완화시키는 약제가 개발되면서 치매 치료에 전환을 맞게 된 점, 그리고 치매의 원인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치료와 병행하여 예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황홀한 사람>에서는 치매환자는 가정 혹은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로만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영국의 치매환자 웬디 미첼은 <내가 알던 그 사람>,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생의 마지막 당부> 등에 이르기까지 치매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치매 환자를 치료와 간병 중심의 책에 더하여 치매환자 스스로 치매로 인하여 제약받고 있는 삶을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들도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호주 내무부의 제1차관보를 역임하던 중 치매증상이 나타나면서 퇴임하여 치매치료에 전념하던 크리스틴 브라이든의 투병기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녀의 두 번째 책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의 치매환자도 적극적인 투병 과정을 책으로 소개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홀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의 사연이라서 요양원 혹은 요양병원에서 치료와 간병을 맡길 수 있는 요즈음의 분위기와는 많이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요즘에도 아키코와 같이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의 간병을 전담하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간병에서 오는 피로와 좌절을 겪지 않도록 가족은 물론 사회에서도 책임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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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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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7은 서기 14년부터 37년까지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서기37년부터 41년까지의 칼리굴라 황제, 41년부터 54년까지의 클라우디우스 황제, 54년부터 68년까지의 네로 황제에 이르기까지 4명의 황제가 다스리던 로마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로마인 이야기8에 등장하는 7명의 황제들 역시 황제의 제목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다룬 4명의 황제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독특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인 이야기7은 카프리 섬에서 시작합니다. 로마제국 시절부터 나폴리만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아름다운 섬입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섬 전체가 황제의 사유지로 일반인은 입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나폴리에게 이스키아 섬을 주고 얻어 별장을 지었지만 나폴리에 오면서 잠깐 들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프리 섬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였습니다. 섬에 별장을 짓고 서기 27년부터 죽을 때까지 카프리 섬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았다고 합니다. 2018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카프리 섬도 방문했지만, 그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별장도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카프리 섬에 다시 가봐야지 싶습니다.


사실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렇게도 목을 매던 혈족이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외동딸 율리아가 낳은 가이우스와 루키우스를 양자로 삼아 황제위를 물려줄 요량이었지만 각각 23세와 18세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티베리우스가 55세임에도 불구하고 후계로 삼아야 했습니다. 단 조건을 붙였는데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옥타비아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결혼하여 낳은 딸 안토니아의 아들인 게르마니쿠스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삼으라는 조건을 달았던 것입니다.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가 황제가 될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맡긴 셈입니다. 당시 라인강 방위사령관을 맡고 있던 게르마니쿠스는 28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리우스는 명문귀족인 클라우디우스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을 다스리는데 있어 철학이 분명했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였던 것입니다.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신규공사의 발주를 금하였고, 라인 강의 방어선을 엘베 강으로 확대하지 않고 라인 강으로 유지한 것 등입니다. 한편 게르마니쿠스는 동방의 파르티아와의 갈등을 풀기 위하여 게르마니아로부터 오리엔트로 파병되는데, 시리아 속주의 피소총독과 갈등을 빚게 되고 마침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열병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아마도 말라리아와 같은 감염병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나 당대에는 피소총독에 의해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가 봅니다. 결국 피소총독도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가운데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티베리우스는 카프리 섬에 은둔하여 죽을 때까지 원격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 등이 그의 악명을 높였던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는 로마가 가졌던 가장 훌륭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죽은 뒤에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은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칼리굴라, 그리고 티베리우스의 직계 손자인 게멜리우스 였지만,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칼리굴라가 후계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우구수투스의 피를 제대로 받은 칼리굴라는 촉망되는 황제였는데, 젊은 혈기로 흥청망청하다가 근위대의 대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에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가 황제 위를 이어받게 되었지만, 소아마비를 앓아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연구에 심취한 관계로 황제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결점도 있었습니다. 해방노예 출신의 비서관들을 중용하여 국사를 처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방종한 생활을 하던 아내 메살리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재혼한 아그리피나는 게르마니쿠스와 아그리피나 사이에 태어난 딸 아그리피나였습니다. 결국 그녀가 독버섯을 먹여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남아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음을 맞고서 네로는 근위대 병영으로 가서 근위병들로부터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는 것으로 황제위를 취득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언장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네로를 후계자로 삼는다고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치세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어 여기에서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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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 되찾은 시간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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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새롭게 번역하여 내놓아온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이야기 되찾은 시간1권과 2권이 같이 나온 것을 모르고 2, 그러니까 마지막편만 사다 읽고 나서 보니 1권을 건너뛴 셈이라서 최근에서야 되찾은 시간1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작가가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되찾은 시간은 마르셀이 생루의 초대를 받아 콩브레 근처에 있는 탕송빌성에 체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콩브레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작가의 길을 꿈꾸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지병이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고, 그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파리에 잠시 머물기도 합니다.


특히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는 과정에서 문학에 대한 재능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적었습니다. “마치 문학이 심오한 진리를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듯 덜 유감스럽게 보였고, 동시에 문학이 내가 믿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게 행각되었다. 한편 책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내가 보았던 것들만큼 아름답지 않다면, 이제 곧 요양원에 갇히게 될 내 병약한 몸 상태가 덜 유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41)”


되찾은 시간(1)에서는 제1차 세대대전 기간 중에 파리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선에서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겠습니다만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프랑스군과 싸우고 있는 독일의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당대에 읽히던 많은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인데, 민음사 판에서는 작가가 다른 책에 나온 구절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주석에서 원전의 내용을 밝힌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민음사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구해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이제 전체 분량이 완간되었으니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최대한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독후감도 써보면 좋겠지요?


되찾은 시간<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이야기인 만큼 앞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정리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다루었던 주제인 동성애 문제, 살롱에 관한 내용들이 다시 나오고 질베르트, 게르망트 부인, 알베르틴 등 마르셀이 좋아했던 여성들과의 관계도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특히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앞서 동성애적 성향이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서 동성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되찾은 시간(1)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선으로 돌아간 생루가 부하들의 철수를 엄호하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사적인 부탁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은 마르셀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방 안에 칩거하면서 생루와 처음 만나던 장면부터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또한 되찾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생루가 생전에 했다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신뢰할만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생루는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 내 삶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마, 난 일찍부터 선고받은 자야.(301)” 이는 꽤 젊은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죽음이 어떤 법칙에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라고 한 듯합니다만, 죽음에 법칙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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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린위탕 지음, 안동민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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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역시 지난달에 시칠리아와 몰타를 여행할 때 가지고 갔던 책입니다. 여행길에서 마지막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로 여행하는 길에 쏟아지는 폭우를 만나면서, 임어당이 <생활의 발견>에서 인용했던 김성탄의<서상기>에 나오는 갑자기 우뢰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더니 검은 구름이 첩첩이 하늘을 덮고, 싸움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한 기세로 몰려온다. 이윽고 처마에서 비가 폭포처럼 퍼붓기 시작한다.”라는 대목을 여행기에 인용했습니다.(임어당 지음 <생활의 발견> 89)


<생활의 발견>1937년에 처음 출간되었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이 언제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제가 학생 때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론격에 해당하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은 사상과 인생에 관한 나의 체험을 밝힌 개인적 증언이다. 이 책에 밝힌 나의 입장은 객관적인 것도 아니고, 영구불변의 진리도 아니다라고 시작합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과감하게 밝히고 글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대인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모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대에는 쉽게 공감되었을 이야기가 이제는 구닥다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서관 잡지(Library Journal)>에서 1937년에 출간된 이 책은 “don't worry, be happy"를 강조하는 책의 원조 격이다. 중국인 철학자는 더욱 성공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개발하기 위한 사고방식을 자세히 설명한다.”라고 평을 해놓았습니다. 실제로 세 번째 꼭지의 이야기 인생의 즐거움을 보면 인생을 즐겁게 지내는 것 이외에 인생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75)’라고 한 대목을 가져온 것을 보입니다.


1895년 푸젠 성 룽시에서 그리스도교 장로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그리스도교도로 교육받고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니체처럼 그리스도교에 회의를 갖게 되어 신앙을 버리고 하버드대학을 거쳐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유학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귀국하여 베이징 대학, 칭화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중국의 고전은 물론 서양의 사상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나는 독창적인 글을 쓰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사상은 동서의 많은 사상가들이 몇 번이고 생각했고, 표현한 것들이다. 동양에서 빌려온 것은 이미 동양의 낡아빠진 진리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나의 사상이기도 하다.(7)” 자신의 뿌리가 중국의 전통 철학에 있음을 밝힌 셈입니다.


이 책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들은 살아가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 세대들이 구닥다리라고 치부할만한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노인의 특권이다. 젊은이들은 노인이 이야기하는 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 속담에도 있듯이 젊은이에게는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154)’”와 같은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속담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생활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여행의 즐거움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특히 두 가지 엉터리 여행을 꼬집어 놓은 대목에 공감한다. 첫 번째는 정신 향상을 위한 여행이다. 사실은 정신 향상이라고 했지만, 휴식을 위한 여행이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진정한 휴식은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후일에 이야기할 재료를 얻기 위해 여행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사진찍이에 여념이 없어서 모처럼 찾아온 관광지를 자신의 눈으로 집접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항상 방랑하는 즐거움, 모험심과 모험에 대한 유혹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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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 젊은 의사가 수술실에서 만난 기적의 순간들
라이너 융트 지음, 이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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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역시 지난달에 시칠리아와 몰타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책을 쓴 라이터 융트(Rainer Jund)는 독일 뮌헨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로 근무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계속해왔습니다.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는 그 과정에서 느낀 병원과 의료체계의 한계, 환자를 이해하는 일 등 의사라면 누구나 겪었을만한 일들을 솔직담백하게 적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인생은 쉼 없이 계속된다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하여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보험사로, 은행으로, 학교로, 혹은 사무실로 일하러 가는데 반하여 자신은 죽음을 만나러 가고 있다는 생각에 집중합니다. 아마도 해부학 실습을 처음 하는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400명이나 되는 뮌헨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을 위하여 기증된 사체를 두고 여덟 명의 의과대학생들이 동시에 해부학 실습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늬 의과대학처럼 첫날은 엄숙한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었고, 그 순간만큼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해부학을 공부할 때는 100명의 학생들이 50명씩으로 나뉘어 네 명인가 여섯 명이서 한 구의 사체로 실습을 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사체를 구하지 못해서 해부학 실습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건이 이런데 의과대학 정원을 2천명을 추가로 늘리겠다고 하는 정부는 과연 어떤 통계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의 병원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넓고 추운 병동에 마취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외상외과, 내과의 여러 분과, 방사선과, 종양학과, 병리학과 등 모든 학과가 있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병동은 대부분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입원 환자들이 대부분 같은과의 진료를 받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취과, 방사선과, 병리학과 등 지원진료과들은 수술실, 촬영실, 검사실 등과 소속되어 업무를 하게 됩니다.


신경외과 수련 기간이 끝나고 두경부 외과 병동으로 옮겼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수련의 시절의 이야기 같은데 병동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불려갔지만 환자를 구하지 못하고 말았던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환자를 수술실로 옮겨 지혈술을 시행했다고 하는데, 수련의가 그와 같은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나 병동 의사가 환자를 다시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지만, 병동환자의 심정지시에 출동하는 응급체계는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응급실 야간당직 근무를 하면서 응급환자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응급실로 뛰어갔다고 하는데, 응급실 야간당직의사는 환자가 없어도 응급실을 지키고 있어야 환자가 들이닥칠 때 바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한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사례에서 빠져 있는 것은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모든 의사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급이 낮은 의사에게는 치료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필요한 검사를 한다거나, 병력을 청취하여 바로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읽다보면 저자가 노르웨이 마법사라고 칭하는 동료는 뮌헨의과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것처럼 이야기가 시작되다가 뒤에서는 오슬로에서 의과대학을 마쳤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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