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처방전 - 게임회사 직원이 밝히는
장범식 지음 / 이담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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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게임을 즐기는 편입니다. 오래된 갤러그, 제비우스와 같은 초창기 컴퓨터게임에 몰입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중독이라고 할 정도까지 빠져 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도 카드로하는 간단한 컴퓨터게임을 시작하면 쉽게 접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게임에 빠진 아이들 때문에 걱정을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심각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단계로 까지 발전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게임에 빠진 심하면,  게임중독이라고 할 지경의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하는 현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희소식이 될 만한 책이 나왔습니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분이 쓴 <게임중독처방전>입니다.

저자는 게임경력이 30년이 넘은 게임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오늘날 게임은 오락의 수준을 넘어서 산업의 하나라고 할만큼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게임에 빠져 삶이 왜곡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겠습니다.  특히 아직은 생각이 여물지 못한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 들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별 생각 없이 게임에 빠져들고 있는 청소년들과 그런 아이를 둔 부모님들에게 문제해결을 위한 길을 안내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게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재미요인 18가지를 설명합니다.  제2부에서는 게임회사에서  게임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게임중독의 문제점과 게임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합니다.

우리 옛 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과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게임중독에 빠지는 청소년들에게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단순하게 재미를 위해, 게임을 시작한 것이 중독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죠. 이는 게임 개발업체가 쳐 놓은 함정에 멋모르고 빠져 들어간 탓입니다. 사실 게임은 사람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18가지나 되는 요인들 모두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연관성을 심리학 연구 등의 자료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게임중독은 현실에서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지위를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은 수명이 있습니다. 정상의 수준으로 게임을 잘하게 되더라도 그 게임이 중단되면 모든 성과가 물거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대체할 수 있는 운동이나 독서와 같이 행하여 이로운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게임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운동은 게임과 닮은 점이 많고 운동을 통하여 체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책읽기를 통하여 스스로를 다 잡을 수 있었을 뿐아니라 책을 써내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저자의 책읽기 내공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중독 처방전>은 게임에 빠져있는 당사자나 그런 아이를 둔 부모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그런 책입니다.

물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단호하게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처럼 관련 업종에서 일하면서 실감한 문제점과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수 있는 해결방안을 생각해낼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라는 이야기를 별다른 배경 없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저자처럼 실제 경험을 통하여 필요성을 깨달아 권하는 경우가 더 효과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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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주광첸 지음, 이화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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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꽃을, 여성을, 심지어는 졌더라도 최선을 다한 운동선수를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왜? 혹은 무엇이 아름다우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의 현대미학의 아버지 주광첸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심미적 세계에 대한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구더기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기생하여 자기 배나 채울 궁리나 하는 세속적인 생각을 탈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광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만주사변이 발발할 무렵 현실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열다섯 통의 편지에 아름다움을 설파하고자 했습니다. 세속을 벗어난 심미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로써 삶과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을 갈고 닦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편지의 후반에서는 창작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주제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중국 고전의 명시를 두루 인용하고 있는데, 한시는 그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정도에 머물고 있어 그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콩대를 때서 콩을 삶는구나. / 솥 안의 콩은 흐느끼며 우네. / 본시 한 뿌리에서 났건만 / 어찌 이리도 급히 삶으려 하는고.(132쪽)’하는 한시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가마솥에 불을 때서 무언가를 삶아본 사람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만, 솥 안에 쌀이고 콩을 넣고 삶기 시작하면, 한참 만에 물이 넘치면서 솥뚜껑 사이로 보글보글 거품이 넘쳐 나오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김이 솥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곁들여집니다. 바로 그 장면을 콩이 흐느껴 우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여섯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그 배경에는 최근 몇 년을 두고 꾸준하게 이어왔던 책읽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만 권의 책을 읽으면 붓에 신이 들린 것 같다”는 두보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제 경우는 겨우 2천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정도입니다만, 정말 만권의 책을 읽어낸다면 꼬리를 물고 책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편지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옛 한시(漢詩) 뿐 아니라 서양의 철학이나 문학까지도 적절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무렵에 작가는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인용한 가운데,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등장했던 시기에 스페인은 엄청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 스페인에는 위대한 작가나 예술가가 탄생하지 않았다.(171쪽)”라고 적은 부분에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근대소설로 지목되는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그 시대의 스페인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 세르반테스의 위치는 셰익스피어와 견줄만하지 않을까요?

심미안은 누구나 일상에서도 발견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냇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시내를 산책하면서 느낀 점이라고 합니다. “(산책길을) 동쪽 연안을 따라 올라갔다가 자리를 건너 서쪽 연안을 따라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동쪽 연안을 따라 걸을 땐, 서쪽 연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서쪽 연안을 따라 걸을 땐 오히려 동쪽 연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28쪽)”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양재천 산책을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만, 한때 개울을 북쪽을 따라 올라갔다가 남쪽을 따라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양쪽에서 바라보는 각각의 풍경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을 뿐 반대편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은 산책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북쪽 길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기울어가는 무엇이 남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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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퀀텀리프 - 부.권력.지식의 위대한 도약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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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탈출, 99%을;https://blog.naver.com/neuro412/221400587735>이 있습니다. 중산층이 몰락하여 사라져버린 우리사회는 1%의 가진 자와 99%의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고 있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런 현상을 바꿀 수 있는 비상한 정책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들의 경제를 고려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것이 일반입니다만, 이번 정부에서는 과연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화수분을 어디에서 찾아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퇴조를 거듭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정책의 최우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든 새로운 변화가 있을 때는 그 변화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선 말기 빠르게 세력을 키워가던 외세와의 접점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차단하려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가져갔던 것이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을 논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라고 4차 산업혁명을 정의했습니다(다음백과 인용). 물론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정의가 맞는 것인지는 세월이 흘러 3차 산업혁명과는 차별되는 무엇이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차별되는 무엇이라 함은 3차 산업혁명의 시기와는 다른 변곡점, 즉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극명한 변화에 따라 변할 때는 이를 일찍 파악하고 이러한 변화에 동승해야 적어도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의 임춘성교수님은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어떤 자세로 맞을 것인가에 대하여 정리를 하여 <당신의 퀀텀리프>에 담았습니다. 퀀텀리프(quantum leap)는 양자도약이라는 양자물리학의 용어입니다만, 비약적 발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한우물을 파듯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하다보면 어느 덧 정상에 올라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임교수님은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변곡점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상식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와, 권력과 지식 등 세 가지 영역에서 비약적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영역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정당화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안빈낙도하는 자세도 좋겠지만, 가끔은 불끈하는 마음을 느끼는 누군가를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본적으로 뛰어야 하고, 나아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점프하라고 합니다. 부(富)와 권력(權力) 그리고 지식(知識)의 도약을 위해서는 각각 통해야 한다는 것인데, ‘부의 도약을 위해서는 통(通), 즉 생산하지 말고 연결하라, 권력의 도약을 위해서는 통(統), 즉 소유하지 말고 통제하라, 지식의 도약을 위해서는, 통(洞), 즉 공부하지 말고 통찰하라’라고 합니다.

흔히는 부와 권력과 지식은 상호의존적이라고 합니다. 부는 권력에 기대고, 권력은 지식에 기대며, 지식은 부에 기대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엄마의 지식과 아빠의 권력과 할아버지의 부가 합쳐져야 후손의 앞날이 보장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것을 보면 이 세 가지가 상호의존적이지 않고 모두 갖추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만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가지지 못한 99%는 결코 가진 1%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셈인가요? 어떻든 진짜 답은 <당신의 퀀텀리프>에서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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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99%을 - 존재의 조건이 찢긴 자들
신창용 지음 / 스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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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탈출>의 뒷이야기이지만, 전작을 읽지 않아도 <탈출, 99%을>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얽힌 인간관계라던가 배경이 되는 공간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전체 이야기의 윤곽을 그려내기에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것을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임이 분명한데, 굳이 로만과 파스란이라는 별개의 나라를 오가는 구조를 만든 것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화자인 파비안을 비롯하여 조카 마크, 로린, 스티븐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에게 외국 이름을 부여하면서도 주요 등장인물인 M은 이니셜로 처리한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탈출은 모든 것을 가진 1%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머지 99%가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가를 화두로 삼고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보수 세력이 무너진 틈을 타고 진보세력이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을 잡은 진보세력 가운데도 1%의 부를 쥔 자가 있음을 암시하고, 그 세력 가운데 하나인 M이 가족도 모르게 파비안에게 상당한 부를 유산으로 넘겨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유산으로 파비안이 99% 집단에서 1%집단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너졌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1%의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99% 두 집단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진다는 것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진보세력이 국민들의 인식을 모호하게 이끌어온 탓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누구든 가진 자 1%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도록 유도한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1%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결국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끊임없이 스스로의 희망을 업그레이드해가도록 부축인 것은 아닐까요? 제 경우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굳이 1%를 꿈꾸어야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살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작에서 큰 사고를 당했던 M은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국 파스란에서 궁지에 몰린 M이 로만으로 옮겨 재기를 노리는데, 그것도 자신의 능력보다는 매튜라는 인맥을 활용하고서야 일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힘을 쥔 사람이 뒷배를 보아주어 만든 자리인데, 그마저도 욕심을 부리면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게 되고, M과 파비인은 가구공장의 막일꾼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정말 우리사회는 이토록 가망이 없는 것일까요? 보수는 물론 진보(물론 작가님은 진정한 진보라고 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라는 세력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느낌이 남습니다.

대체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정부가 몰락하고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인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상의 상황인지 아니면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는 또 다른 사실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들을 엮고 있어 이런 이야기를 팩션이라고 해야되나 싶습니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 적은 상당한 분량의 작가 후기를 말미에 붙이고 있는 점입니다. 이 후기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제목의 별도 책자로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후기는 이야기의 연장이 아나리 진정한 진보가 추구하는 세상이 과연 가능하겠는가에 관한 작가의 푸념처럼 느껴집니다. 즉 1%의 가진 자와 99%의 그렇지 못한 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정리한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엇이 분명 있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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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인문 기행 - 미학자, 신들의 도시에서 아름다움과 문명을 생각하다 쟝쉰미학 1
쟝쉰 지음, 박지민 옮김 / 펄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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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쯤 앙코르와트의 경이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다녀온 여행이라서 짧고 두루 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구경한 느낌을 소략하게 정리해두긴 했습니다. 최근에 앙코르와트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여행사 상품이라서 다른 여행지를 고르고 말았습니다만, 언젠가는 시간제약 없이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앙코르에 관한 이야기라면 읽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앙코르와트에 대한 읽을거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앙코르 인문기행>은 제목이 주는 느낌대로 독특한 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인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이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미학자인 장쉰이 쓴 <앙코르 인문기행>은 저자가 앙코르의 유적에서 절친 린화이민에게 보내는 편지의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나라 사람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를 기본으로 하여 앙코르왕국과 유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 앙코르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미학 등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얻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어, 지금까지 앙코르에 관하여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큰 울림을 얻었습니다.

앙코르의 바이온사원에서 보았던 부처의 신비로운 미소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만, 작가는 부처의 모습에서 금강경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성인의 흐름에 드는 것을 일러 수다원이라 하지만 사실 드는 것이 아니라 들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헤아림에 들지 아니함을 일러 수다원이라 한다.(18쪽) 즉 앙코르와트 부처의 평온하고 안온한 모습에서 초월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앙코르와트 왼쪽의 연못에 비친 아름다운 유적의 모습을 보면서 경탄을 금하지 못했던 것인데, 저자는 이러한 건축학적 배치에 관하여 불경에 나오는 경중화(鏡中花), 수중월(水中月)에 비유하면서 실체와 허상, 있음과 없음을 논하는 심오한 동양철학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을 이끄는 인솔자나 현지 가이드를 뒤쫓으면서 설명을 듣는 형태의 여행에 익숙해진 제가 반성해야 할 점을 배웠습니다. 작가가 보기에 앙코르를 찾는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앙코르에 관한 책을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긴 앙코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주달관의 <진랍풍토기>가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도 1829년 프랑스 사람 레뮈자에 의해서이고, 이를 근거로 하여 뒤쫓은 끝에 밀림속에 숨어있던 앙코르유적을 세상에 드러낸 것도 프랑스 사람들이었습니다. 1920년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중국학자 폴 펠리오가 <진랍풍토기>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번역한 책을 출판하면서 프랑스사람들이 특히 앙코르의 신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에서 오래된 건축물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해지는 아름다움을 읽어야 한다는 설명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폐허 속의 고건축을 통해 세월의 흐름에 부서지고 삭고 난 이후에 남는 단순한 구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깨워준다네(169쪽)” 사실 지난달에 다녀온 그리스 여행에서는 이런 점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뒤처지는 저에게 쏟는 현지가이드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니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돌 위에 부조된 압살라 여신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부조로 새겨진 여신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돌 아래에서 전해지는 호흡과 맥박, 체온을 느꼈다. 수백 년 동안 버려진 땅의 넝쿨에 뒤덮여 있었지만, 인간 세상에 대한 결코 사라지지 않은 그리움과 미련이 느껴졌다.(186쪽)”

아무래도 앙코르와트에 다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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