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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인문 기행 - 미학자, 신들의 도시에서 아름다움과 문명을 생각하다 ㅣ 쟝쉰미학 1
쟝쉰 지음, 박지민 옮김 / 펄북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5년전 쯤 앙코르와트의 경이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다녀온 여행이라서 짧고 두루 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구경한 느낌을 소략하게 정리해두긴 했습니다. 최근에 앙코르와트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여행사 상품이라서 다른 여행지를 고르고 말았습니다만, 언젠가는 시간제약 없이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앙코르에 관한 이야기라면 읽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앙코르와트에 대한 읽을거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앙코르 인문기행>은 제목이 주는 느낌대로 독특한 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인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이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미학자인 장쉰이 쓴 <앙코르 인문기행>은 저자가 앙코르의 유적에서 절친 린화이민에게 보내는 편지의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나라 사람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를 기본으로 하여 앙코르왕국과 유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 앙코르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미학 등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얻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어, 지금까지 앙코르에 관하여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큰 울림을 얻었습니다.
앙코르의 바이온사원에서 보았던 부처의 신비로운 미소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만, 작가는 부처의 모습에서 금강경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성인의 흐름에 드는 것을 일러 수다원이라 하지만 사실 드는 것이 아니라 들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헤아림에 들지 아니함을 일러 수다원이라 한다.(18쪽) 즉 앙코르와트 부처의 평온하고 안온한 모습에서 초월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앙코르와트 왼쪽의 연못에 비친 아름다운 유적의 모습을 보면서 경탄을 금하지 못했던 것인데, 저자는 이러한 건축학적 배치에 관하여 불경에 나오는 경중화(鏡中花), 수중월(水中月)에 비유하면서 실체와 허상, 있음과 없음을 논하는 심오한 동양철학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을 이끄는 인솔자나 현지 가이드를 뒤쫓으면서 설명을 듣는 형태의 여행에 익숙해진 제가 반성해야 할 점을 배웠습니다. 작가가 보기에 앙코르를 찾는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앙코르에 관한 책을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긴 앙코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주달관의 <진랍풍토기>가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도 1829년 프랑스 사람 레뮈자에 의해서이고, 이를 근거로 하여 뒤쫓은 끝에 밀림속에 숨어있던 앙코르유적을 세상에 드러낸 것도 프랑스 사람들이었습니다. 1920년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중국학자 폴 펠리오가 <진랍풍토기>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번역한 책을 출판하면서 프랑스사람들이 특히 앙코르의 신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에서 오래된 건축물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해지는 아름다움을 읽어야 한다는 설명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폐허 속의 고건축을 통해 세월의 흐름에 부서지고 삭고 난 이후에 남는 단순한 구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깨워준다네(169쪽)” 사실 지난달에 다녀온 그리스 여행에서는 이런 점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뒤처지는 저에게 쏟는 현지가이드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니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돌 위에 부조된 압살라 여신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부조로 새겨진 여신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돌 아래에서 전해지는 호흡과 맥박, 체온을 느꼈다. 수백 년 동안 버려진 땅의 넝쿨에 뒤덮여 있었지만, 인간 세상에 대한 결코 사라지지 않은 그리움과 미련이 느껴졌다.(186쪽)”
아무래도 앙코르와트에 다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