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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주광첸 지음, 이화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꽃을, 여성을, 심지어는 졌더라도 최선을 다한 운동선수를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왜? 혹은 무엇이 아름다우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의 현대미학의 아버지 주광첸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심미적 세계에 대한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구더기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기생하여 자기 배나 채울 궁리나 하는 세속적인 생각을 탈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광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만주사변이 발발할 무렵 현실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열다섯 통의 편지에 아름다움을 설파하고자 했습니다. 세속을 벗어난 심미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로써 삶과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을 갈고 닦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편지의 후반에서는 창작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주제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중국 고전의 명시를 두루 인용하고 있는데, 한시는 그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정도에 머물고 있어 그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콩대를 때서 콩을 삶는구나. / 솥 안의 콩은 흐느끼며 우네. / 본시 한 뿌리에서 났건만 / 어찌 이리도 급히 삶으려 하는고.(132쪽)’하는 한시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가마솥에 불을 때서 무언가를 삶아본 사람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만, 솥 안에 쌀이고 콩을 넣고 삶기 시작하면, 한참 만에 물이 넘치면서 솥뚜껑 사이로 보글보글 거품이 넘쳐 나오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김이 솥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곁들여집니다. 바로 그 장면을 콩이 흐느껴 우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여섯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그 배경에는 최근 몇 년을 두고 꾸준하게 이어왔던 책읽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만 권의 책을 읽으면 붓에 신이 들린 것 같다”는 두보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제 경우는 겨우 2천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정도입니다만, 정말 만권의 책을 읽어낸다면 꼬리를 물고 책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편지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옛 한시(漢詩) 뿐 아니라 서양의 철학이나 문학까지도 적절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무렵에 작가는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인용한 가운데,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등장했던 시기에 스페인은 엄청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 스페인에는 위대한 작가나 예술가가 탄생하지 않았다.(171쪽)”라고 적은 부분에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근대소설로 지목되는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그 시대의 스페인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 세르반테스의 위치는 셰익스피어와 견줄만하지 않을까요?
심미안은 누구나 일상에서도 발견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냇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시내를 산책하면서 느낀 점이라고 합니다. “(산책길을) 동쪽 연안을 따라 올라갔다가 자리를 건너 서쪽 연안을 따라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동쪽 연안을 따라 걸을 땐, 서쪽 연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서쪽 연안을 따라 걸을 땐 오히려 동쪽 연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28쪽)”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양재천 산책을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만, 한때 개울을 북쪽을 따라 올라갔다가 남쪽을 따라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양쪽에서 바라보는 각각의 풍경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을 뿐 반대편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은 산책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북쪽 길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기울어가는 무엇이 남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