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고 있다고 확신했다.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

그러나 눈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감각기관이어서 사람에 따라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 똑같은 뜨거운땅이 데이비드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개, 해면동물, 해초들로반짝거리며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학생들이 안면을 트고, 서로 추파를 던지고, 길게 늘어선 침대 중 자기 자리를 고르는 동안, 데이비드는 슬그머니 해변으로 내려가 평생 처음으로 소금기 밴 바닷물에 손가락을 담갔다. 까맣고 부드러운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이어서 녹색을 띤 돌을 집어 들었다가 하는 사이, 그의 머릿속에는앞으로 평생 그를 따라다닐 다급한 마음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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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배운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단 잊어버린 것을 필요에 의해 다시 한 번꺼내려고 할 때, 전혀 배워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경험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별 고생 없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그런 측면이있다. 나는 그것을 ‘지혜의 넓이‘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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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누구나 깨닫된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크고 깊은 게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섬광처럼 짧은 행복의 기억을 보험금처럼 쌓아놓고 살아간다는 것을.

가끔씩 고단한 삶에 무릎 꿇고 ‘항복‘이라고 외치고 싶어질 때면 삶이 내게 준 것들을 생각하곤 했다. 삶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향해 뛰어들 수 있는 열정을 주었고,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도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갈 수있는 끈기도 주었다. ‘운명의 남자‘ 같은 건 보내주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고, 내가 본 세상을 그럭저럭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도 주었다. 한 번도 날씬한 몸매는 가져보지못했지만 오래 걸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 다리와 무거운 배낭을 견뎌내는 어깨를 주었다. 가족을 꾸리지는 못했지만 쓸쓸해질 때 찾아갈수 있는 벗들을 주었다. 나 또한 삶이 내게 주지 않은 것들을 원하던날들이 있었다. 그 욕망은 내 마음의 어두운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한번씩 깜빡거리면서 나를 흔들곤 한다.

독일인 신부님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선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공격적으로 질문하자 그는 이런 답을 들려줬다. "이제 이교도를 기독교도로 바꾸는 데 선교의 의미를 두어서는 안 돼. 각자 믿고 있는 종교안에서 불교도는 더 나은 불교도가 되게끔, 이슬람교도는 더 나은 이슬람교도가 되게끔 돕는 게 진정한 선교일 거야." 그런 경험을 자주했더라면 나도 교회나 절에서 안식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리석은 이는 목소리도 높아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띄었지만 겸손하고 지혜로운 신앙인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종교가 드리우는 빛보다는 어둠에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느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고,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으며,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

책을 읽어갈수록 그와 나의 맞닿은 지점이 하나씩 보였다. "편리를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디에선가 선을 그어야 하는" 일의 필요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삶"에 대한 회의. 극한의 환경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사람들을 향한 이끌림. 하지만 그는 내가 다다르지 못한 지점까지 나아간 사람이었다. 북극의 매서운 자연에서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체력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긴 고립을 자처할 줄 아는 용기. 마음을 준 대상에 집중할 줄 아는 끈기. 말하기보다 귀기울일 줄아는 겸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과장 없이 이야기를 건네는담백한 태도, 자신과 어울리는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고 기꺼이 삶의터전을 바꾸어버릴 수 있는 결단력까지. 그 책 때문에 나는 알래스카와 한 남자를 동시에 품게 되었다.

책과 여행은 닮았다. 가장 온건한 방식으로 지금까지의 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모두 안락한 일상을 흔든다. 당연하게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책과 여행이몰고 오는 내 세계의 균열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한 권의 책을이정표 삼아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책과 여행이 지핀 불과 함께 타올라 그 불과 함께 몰락하는 일생을, 시인처럼 나도 꿈꿀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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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책다운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읽는 사람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과 삶이 변화했다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변화로 끝났다면 진정으로 책다운 책을 읽은 게 아니다. 변화는 끝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책을 읽고 오늘 내 모습이 변화됐다면, 내일도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책의 힘이다. 그 힘을 끌어내지 못하면 어제 읽은 책으로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보다 읽다가 멈춘 사람이더 나쁠 수 있다. 변화되기를 멈추면 사람의 사고는 생기를 잃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끝없는 변화를 통해 생동감 있는 사고를 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관한 내 나름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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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을 이루고 있는 인터뷰에서 그는 "어찌 보면 세상모든 일이 번역일지도 모르죠"라며, 세상의 일들과 번역이 같은이치에 닿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하는데, 나는 슬그머니 ‘세상 모든 일‘이라는 말을 서점 일‘로 바꿔놓는다. 서점 일전체를 번역에 빗대는건 순진한 생각일지라도, 적어도 ‘책을 분류하는 일만은 번역과 유사한 프로세스를 갖지 않나. 저자의 작품이 독자의 시선에 닿을 수 있도록 텍스트를 해석하고 분류하는작업과, 출발어(외국어 화자의 작품) 도착어(독자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의 작업이 닮았다고 보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파스칼 키냐르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아침이란 이런 의미였을까. 막다른 밤을 보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매일 어떤 한계 앞에 멈춰 서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에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정의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사람)과 자신만의 ‘사회적 영토를 얻는 일‘(장소), 그리고 ‘환대‘. 앞의 두 조각은 환대라는 세 번째 조각을 통해 연결된다. 수년 전 처음 읽었을 땐 흥미로운 책이라는정도로 생각하며 빠르게 훑고 말았는데, 무례함과 친절함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와중에 다시 읽은 책은 자기계발서가 좀처럼다루지 않는 인간관계에 대한 심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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