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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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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같지 않은 봄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우리 동네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맑은 날씨 사이 사이 비가 자주 내리더니 어제는 30여 분 동안 엄지손톱 만한 우박이 쏟아졌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난 3년 만에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고 있다.

 

아파트 응달 진 화단에서 피려던 백합은 2주째 봉우리를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서 봄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봄 같지 않은 날씨에 참았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 책을 쓴 메리 올리버 시인이라면 이런 날을 분명 나와는 다른 마음으로 즐겼을 것 같다. 

평생 자연에서 명상하고 수련한 올리버는 어떤 감성으로 요즘의 날씨를 관찰하고

얼마나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을까? 

좀 미약하긴 하지만  나 혼자 상상해 본다.

 

긴긴 겨울 난 봄을 기다리며 참 행복했다.

그리고 조용조용 봄이 왔다.

봄이 빨리 가버릴 것 같아 마음 졸이는 걸 알았는지 올해 봄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산수유가 피고 개나리가 피고 진달리개 필 무렵

여리고 여린 봄꽃들을 위해 가는 비가 내렸다.

목련이 피고 벛꽃이 필 때쯤 또 비가 내린다.

목련이, 벛꽃이 한꺼번에 져버릴까 봐 기온도 살짝이 내려준다.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세상에 엊그제는 우박도 내렸다.

봄이라고 얇은 블라우스에 슬리퍼를 끌고 딸아이 마중을 나갔다가 

옷을 뚫고 들어오는 냉기에, 슬리퍼 위로 쌓이던 우박에 발이 꽁꽁 얼고 말았다.

4월 말에 만나는 겨울 느낌이라니 이게 웬 행운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내가 이런 변덕스런 봄을 만나다니 아이가 걸음마를 처음 시작한 것만큼이나 놀랍고 행복하다. 

 

고요한 숲속에 앉아, 혹은 바닷가에 앉아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파도소리,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까지 자연의 사소한 모든 걸 느끼고 싶은 책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기억도 못하고 지나치는 풍경 하나도

올리버의 눈에 포착되면 의미 있고 귀한 것으로 변한다.

그녀의 생활은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갈 때

훨씬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넓어지며 생각에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행복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아이들 소리, 티비 소리로 시끌시끌한 집이나 차 안에서 주로 읽었다.

그래서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 마음이 참 평화로웠다.

나도 그녀처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작은 것에 집중하며 관찰하고

내면의 심오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탐색하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순수하게 살고 싶어졌다.

 

올리버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얼마나 따뜻한지 모르겠다.

"세상은 재미있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세상에 경쟁이나 명령이나 복종, 이해 타산, 논쟁, 비방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가자미>라는 시에는 나이에 대한 정의가 나오는데 정말 공감이 되었다.

 

날이 선, 반짝반짝 빛나는 십대는 자물쇠 채워진 시간. 단단한 이십대.

느슨해지는 삼십대. 초조한 사십대.

가끔은 희망과 약속의 시간이 있는 버팀의 오십대. 지금은, 육십대.

 

그녀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젊은 날의 초조함과 자물쇠 채워진 마음이 열리고 느슨해졌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초조한 사십대란다, 딱 요즘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희망과 약속의 시간이 있는 버팀의 오십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받아들여야겠다 싶다.

 

그녀가 관찰하고 기록한 자연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자연에 이런 세계가 존재할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에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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