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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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 자리에 꽂혀 있던 <외딴 방>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14년 만에 다시 읽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어머,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아이들 몰래 눈물을 훔쳐내곤 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울었던 기억은 없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이렇게 아픈 과거가 있었구나 하면서 좀 놀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사람이 가슴으로 들어왔고 자꾸만 눈물샘을 건드려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예전에 읽으면서 많은 문장들 아래 초록색 밑줄을 그어놓은 게 보였다. 하지만 난 그 초록으로 물든 문장들은 모두 건너뛰고 새로운 문장에 검정색 밑줄을 수도 없이 그었다. 14년이란 세월은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그 사이 아픔이나 기쁨 같은 것을 받아들이는 내 감정도 변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담담하게 읽힐 줄 알았던 <외딴 방>인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내 눈물의 정체는 그녀들의 아픔이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지만 이미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 양 까맣게 잊고 살아온 것들,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내게도 열여섯은 엄마, 아니 고향을 떠나온 시간이다. 작가보다 4~5년은 후배인 내가 살았던 곳 또한 한 반에 야간 고등학교를 가는 친구들이 대여섯 명은 되는 농촌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형제가 아주 많거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오빠의 대학 진학을 위해, 혹은 남동생을 위해 낮에는 돈을 벌어야 했던 착한 여동생 혹은 착한 누나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빠가 하나밖에 없었던 나는 그 아이들 틈에 끼지 않고 고향집에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도시에 있는 여고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고 3년을 보낸 주인집 옆에 딸린 작은 자취방은 나를 내성적이고 조심스런 인간이 되도록 가르쳤다. 그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옮겨 다녔던 자취방은 다들 어쩌면 그렇게 구석지고 허름했는지... 그래, 딱 <외딴 방>이라는 말에 어울리던 곳. 하지만 나를 서서히 철들게 했던 바로 그곳.

마당이 넓은 집에 살던 작가는 전철역 근처 서른일곱 개의 방이 미로처럼 붙어 있던 그곳을 집으로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하나의 점이 되어 스며들게 만들었으리라. 나도 그랬다.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져서 늘 왁자지껄했던 집을 떠나 도시로 가 보니 난 누가 보아도 가난하고 애처로운 자취생일 뿐이었다. 한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던 우리집을 대번에 가난하게 만들었던 재주 좋은 도시. 그 도시에서 구멍가게에 들러 찬거리를 사다 밥을 해 먹고 연탄을 갈게 된 열여섯의 내 삶도 갑작스레 초라해져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울먹였던 기억이 난다. 방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공장까지 다녀야 했던 <외딴 방>의 그녀들을 생각하면 난 참 부자였는데...   

가난했지만 <외딴 방>의 어린 작가는 내내 행복해 보였다. 사실 14년 전에 읽었을 땐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녀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내 '그녀는 참 행복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큰오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외사촌, 공장에서 항상 마음을 써주었던 노조지부장, 소설가의 꿈을 품게 해준 최홍이 선생님, 그리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희재 언니까지. 모두 그녀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준 행복감이 공단에서의 3년을 견뎌내고 작가의 꿈을 키우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동안 작가의 여고 시절에 보냈던 가여운 시선은 모두 거두기로 했다. 나도 이젠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돈도 권력도 아닌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YH 사건이 일어나고, 광주 5.18 이 일어나고, 이유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야 했던 당시 사회는 정말 불행했지만 작가와 함께 했던 공단의 그녀들 대부분은 동생과 오빠의 등록금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약값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작가로 유명해진 자신의 동료 신경숙을 빽삼아 한국의 억척이 아줌마로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녀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든든한 언니요, 누나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늘 수많은 그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또 외딴 방은 절망의 방이 아니라 희망의 방임을 가르쳐주고, 사회과학 책이나 다큐멘터리보다 더 현실감 있게 더 꼼꼼하게 당시 사회를 고발해준 작가 신경숙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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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8-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왜 이렇게 외딴방 리뷰가 많은 거죠? 무슨 대회라도...

소나무집 2009-08-11 13:20   좋아요 0 | URL
네, 리뷰 대회를 하고 있어요.

치유 2009-08-10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딴방 리뷰가 하도 자주 올라오기에 이 책이 이제또 한번 뜨나...했어요..^^-
그런데 리뷰 대회가 있었군요...
멋진 리뷰에요.
이 책 리뷰를 요즘 하도 많이읽어서 누가 잘 썼는지도짐작이 간다는;

소나무집 2009-08-11 13:20   좋아요 0 | URL
님, 고마워요.

2009-08-10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