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가라고 했지만 정말 많이 망설였다. 내가 놀이공원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의 두 배 가까운 하루이용료는 내 망설임을 더욱 길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게티빌라에서 나온 우리 가족의 다음 행선지는 UCLA 대학이었다. 일부러 학교 구경을 간 건 아니고 대학교에 가면 놀이공원 할인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는 말에 LA 시내에 있는 UCLA 대학 티켓오피스에 가서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끊었다. 티켓 사면서 잠깐 둘러본 학교는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도시 같았고, 백인보다 피부색이 좀 있는 학생들이 많아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마다 이런 티켓오피스가 있다는 건 신기했는데 기껏 할인받은 금액이 네 식구 달랑 10달러 정도여서 허무. 원래는 10세 미만이 59달러, 그 이상은 69달러였으니, 어린이 요금도 아들만 해당이었다. 네 식구 다 합치면 우리나라 놀이공원 연간 회원권도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으~ 너무 비싸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국 이틀 숙박비에 입장료까지, 우리가 미국 가서 돈을 제일 많이 쓰고 온 곳이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은 우리처럼 놀면서 천천히 가도 LA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네비 달린 차 타고 다니면서도 곧잘 길을 헤맨다. 그런데 100달러 아낀다고 미국에서 네비도 없이 차를 렌트했다. 속으로 걱정을 좀 했는데 딱 한 번 길을 묻고는 목적지에 닿아 전생에 미국에서 산 거 아니냐고 농담까지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첫날 밤을 보낸 숙소는 디즈니랜드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눈 돌리면 온통 호텔이랑 모텔 같은 것만 보이는 걸로 보아 완전히 디즈니랜드 덕에 먹고 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주는 간단한 공짜 아침을 먹고는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숙소에서 나와 키 큰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 디즈니랜드로 가는 중이다.  

 

  
디즈니 근처를 지나다니는 예쁜 버스들.   


입장권 사는 곳이지만 우리는 통과. 그런데 요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서 검문 비슷한 걸 받았다. 가방까지 전부 열어 보라고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9.11 테러 이후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검사하는 거라고. 대충 흉내만 내는 걸로 보아 도시락 폭탄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아낼 것 같은 사람들이었음.  

  디즈니랜드에는 테마파크가 두 군데가 있었다. 오리지날 디즈니랜드와 좀더 짜릿한 놀이기구가 많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우리가 끊은 입장권으로는 두 군데 중 한 군데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잠시 여기 서서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 디즈니랜드로 결정. 원조 찾아 왔으니 원조 놀이 공원으로 가야지!

   
아이들이 보도 블럭을 가리켜서 보니 사람 이름과 주소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 찾으러 평생 들락거릴 테니 훌륭한 상술이군.


디즈니랜드로 밀려 들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평일에 무슨 놈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궁시렁궁시렁.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좀 재미있겠다 싶은 놀이 기구를 타려면 한 시간 이상은 줄서서 기다리며 무한한 인내심을 키워야 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기차역이다. 우리는 바로 저기로 올라가서 디즈니를 한 바퀴 도는 기차를 타고 중간에 내려 놀이 기구를 탔다. 걸어다니기 싫어하는 나 때문에 우리 가족 계속 애용함.  


기차역 앞에서 만난 진짜 말이 끄는 마차다. 저렇게 한가할 때 탔어야 하는데 나중에 타자고 미루다 결국 못 탔다. 


스몰 월드. 좀 어린 아이들이 타는 놀이 기구들이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구석구석에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숨어 있어서 아이들이 찾으면서 신나했다.


니모를 찾아서. 니모가 살고 있는 바다 속을 구경시켜주는 잠수함인데 이거 타겠다고 한 시간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아이들은 좋아라 했지만 난 좀 유치한 걸 보니 이미 꿈을 잃은 게 확실해. 영화 장면에 맞는 대사가 나와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긴 하더라만. 


 
아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노란 차를 타고 싶다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 카의 주인공처럼 직접 운전을 해봤다며 좋아하던 아들. 별로 기대를 안 하고 탔는데 코스도 길고 중간에 세차장, 자동차 공원, 주유소 같은 구경거리가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차를 타기 전에 기분 내라고 일회용 운전면허증을 주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집에까지 곱게 모셔왔다.
오전에 마테호른 썰매나 빅 썬더 마운틴 레일로드처럼 짜릿한 놀이 기구도 탔는데 정작 사진이 없는 걸 보니 타는 데만 너무 집중했나 보군.


메인 거리에 있는 미키마우스와 디즈니 동상 앞에서. 생쥐가 들락거릴 정도로 가난했던 디즈니는 그 생쥐를 그린 캐릭터로 돈방석에 올라앉았고, 미국의 상징 인물이 되었다. 아이들이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월트 디즈니는 알 정도라고. 디즈니 동화책이랑 영화로 전세계 어린이들을 미국화시키고 있는 일등공신이니 대통령보다 훌륭한 거 맞네.  

  점심 먹고는 어드벤처랜드로 이동. 오전에 너무 유치한 데서 놀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테마가 많았다.


오전에 놀던 동화 속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  


인디애나 존스의 모험. 제대로 꾸며놓은 정글 안에 놀이 기구가 있었다. 캄캄한 곳에서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뭔가가 튀어나오면 스릴이 그만.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소리 지르기도 그만~



나무 위에 있는 타잔의 집. 올라가면 제인이랑 치타 캐릭터도 있고, 타잔 이야기를 큰 책으로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돌아다니다 보니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구경거리 천지였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3박 4일 디즈니랜드로 휴가 간다는 미국 사람들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구석구석 다니며 즐기자면 연간회원권 끊어서 주구줄창 가야 할 듯. 우리가 끊은 하루이용권의 두 배 정도면 연간회원권을 끊을 수 있다니 아, 억울하다.

  프론티어랜드에는 유람선 두 개가 있었다. 요건 콜럼비아호 .   

  요건 우리가 탄 마크트웨인호. 이 배를 타고 톰소여가 모험을 떠난 작은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결국 유람선에서 내려 저 섬에 들어가 한 시간쯤 놀다 나왔다. 유람선 위에서 볼 때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걸어다니기엔 정말 넓었다. 더구나 모험심으로 가득찬 아들과 함께 다니려니 뭐든지 들어가보고 만져보고 굴러보아야 직성이 풀리니 늘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톰소여가 살았던 나무 위의 집. 아들아, 아무리 모험이 좋아도 너무 어릴 때 집을 떠나진 말거라.


겁 많은 우리 딸이 왠일로 이런 데서 사진을 다 찍었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면서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하지만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큰 건가? 거기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한 군데 서서 구경하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놀이 기구나 타자며 빠져나왔다.    

   그때 미키스 툰 타운에 가서 좀 시시한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줄을 서 있다가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온 교포 가족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봄방학을 이용해 3박 4일 디즈니로 놀러 왔는데 디즈니랜드랑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를 왔다갔다 하면서 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솔직히 디즈니에 대해 광적인 환상을 품고 있는 미국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루만 놀아도 지치는구만. 역시 난 미국식이 아닌가벼.


밤이 되자 점점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추울 걸 예상하지 못한 우리 가족 두꺼운 옷을 준비했을 리 없고... 하지만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남아 불꽃놀이를 보고 오는 극성을 떨었다. 그런데 정말 이거 안 보고 왔으면 후회할 뻔했을 정도로 멋졌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하늘에서 팅커벨이 금가루를 뿌리면서 날아다니는데 환상 그 자체였다. 하루 동안 본전 뽑겠다며 돌아다닌 피곤이 다 사라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불꽃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11시 가까이 된 시간인데 엄청난 인파였다. 미국의 디즈니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우리나라에서는 60,70대 노인들이 손 잡고 놀이 공원 가는 거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미국엔 그런 노인들이 많아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 생각 하면서 민속촌 가고,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 생각하면서 디즈니랜드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내린 결론은 미국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는 것.


딸아이는 디즈니랜드에서 하루 더 놀고 싶다며 내내 아쉬워했다. 특히 디즈니랜드 건너편에 있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에 가고 싶다고. 디즈니랜드보다 일찍 문을 닫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딸에게 한마디. "딸아, 또 가고 싶거들랑 네가 돈 벌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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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너무 신났겠어요. 엄마는 다리 아파도 말에요.
인파가 보통이 아니네요.
마크 트웨인호, 타보고 싶어라~

소나무집 2009-06-16 10:2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하루 더 놀다 가고 싶다고 조르는데 잠깐 망설이는 마음도 생겼어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