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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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공주 동화를 읽은 기억 때문에 책제목이 낯익어 선뜻 손이 갔다.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재미있지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도 않았다. 재미만 기대하고 읽기엔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특히나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서천 세계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책장을 되짚어가며 다시 읽곤 했다. 이 대목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새겨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바리데기라는 작은 그릇에 너무 큰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화 속의 바리데기는 서천 세계에 가서 생명수를 구해 아버지의 생명을 구했지만 이 소설 속의 바리가 구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목숨이 아니라 전쟁, 이념, 빈곤, 다양한 민족의 문제까지 겹쳐 북한 소녀 바리가 보듬기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중국으로 런던으로 종횡무진 바리를 이끌고 다니면서 다양한 삶과 마주하게 한 작가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거기서 마주하는 이민자들의 삶도 분명 현실일 텐데 내겐 왜 그리 낯설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내가 알던 런던에 그들의 삶이 없었던 것은 너무 밝은 곳만 보며 살아온 탓이리라.

늘 큰 고통 없이 내 삶이 이어짐에 감사할 줄만 알았지 세상을 좀더 넓게 바라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정신이 확 들었다. 뉴스를 보면서 접하는 북한의 현실은 초등학교 시절처럼 지금도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솔직히 북한은 나의 관심 속에 놓여 있지 못했다. 아프리카 혹은 남미의 어느 나라 대하듯 지나쳤다.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금강산 관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만 '나도 한 번 가 볼까?' 하는 관심이 살짝 갔을 뿐이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바리에게 미안했다.

바리가 나와 같은 민족의 딸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든다.북한이 아닌 남한에 태어났더라면 인생이 그렇게까지 험난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리 나아진 것은 없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로 알려진 십여 년 전 북한은 정말 어려웠던 모양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는 것을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다. 작가가 북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까닭이 나처럼 무심한 사람들을 일깨울 목적이었음을 알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열두 살에 가족들과 헤어져 중국으로 영국으로 떠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하는 바리의 젊은 날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소설을 읽는 동안 바리가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디에도 그녀를 향한 희망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다. 내내 바리가 희망을 찾아 드나드는 서천 세계마저 손을 내밀듯 말 듯했을 뿐이다.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같이 울어줄 남편 알리가 바리 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바리가 새롭게 만난 이웃에게 배반을 당하고 어린 딸을 잃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할 그 미래가 모든 사람들이 찾아 헤매고 있는 생명수는 아닐지. 나는 나, 너는 너가 아닌 우리라는 넓은 개념으로 세상을 보듬고 함께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옛날 이야기 속의 바리가 되살아나 우리 곁으로 온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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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어요 정말 엄청 난 상황들이 전개되더군요

소나무집 2007-11-0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파키스탄에 난리가 났는데 바리 남편 알리가 파키스탄 이민자라서 애정이 가네요.

kyungmi 2008-03-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데기 읽고 한 인간이 어쩜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살 수 있나.. 싶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안정되게 살고 있는 현실에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