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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는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친구 A와 모 신문사의 기자인 친구 B를 만나 늦은 시각까지 함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만남을 제안한 사람은 친구 B였는데 정작 약속 장소에는 가장 늦게 도착했다. 금요일 밤의 맥주집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젊은이들의 활기와 들뜬 분위기로 인해 콘크리트 건물은 금방이라도 통째 하늘 높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옆사람과의 대화도 어려운 그런 시끄러운 분위기의 술집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내가 술도 마시지 않으니 숫제 술집 자체를 싫어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술집에 가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끔 즐길 때도 있다. 비록 술은 입에도 대지 않지만 그저 분위기에 빠져들어 스스럼없이 즐기곤 하는 편이다. 그러나 어제와 같은 술집은 평상시라면 결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머리가 흔들려 머릿속에서는 윙윙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러나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친구 B의 음주 습관은 독특하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지 그는 맥주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다. 젊어서부터 그랬다. 깡소주로 낮술을 하면서도 기사 마감 시간은 지켜야만 했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의 시간에 대한 강박이 그를 그렇게 버릇 들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친구 A는 느긋하기 이를 데 없다. 맥주 500cc 한 잔을 들고 종일이라도 버틸 기세다. 친구 B는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라도 있었던지 급하게 맥주 몇 잔을 연거푸 마시고는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친구 A의 맥주는 아직 반도 비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겨 시작된 대화는 두서도 없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우리 대화의 주제는 마치 오래된 습관인 양 '책'으로 이어졌다. 책이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거나 주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둥의 시시껄렁한 이야기에서부터 리처드 도킨스나 알랭 드 보통, 움베르토 에코 등의 다소 철학적인 작가들로 옮겨갔다가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신진작가들 중에는 딱히 눈에 띄는 작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말인 즉슨 신진 작가들은 대체로 문장력이 쓸만하면 정서가 메말랐거나, 머릿속에 들은 게 많다 싶으면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작기는 자신의 글이 문학인지 비문학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듣다 못하여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쓰라고 했더니 두 사람 다 멋적게 웃었다. 덧붙여 말하기를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은 딱 두 종류란다. 문장력만 좋고 알맹이는 없는 '겉껍데기 글'과 문장력은 별 볼 일 없으나 내용은 그럭저럭 쓸 만한 '속 알맹이 글'로 나뉜다고 했다.

 

그 원인으로 그들이 꼽았던 말은 헤어져 곱씹어봐도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어려서 자연을 접하지 못한 채 자라는 게 주원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작가의 느낌이나 정서는 누구로부터 배워지는 게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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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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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오해를 받아본 적이 있으신지. 나는 있습니다. 최근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그닥 유쾌한 일도 아닐 텐데 어쩜 그리 해맑게 말할 수 있냐구요? 세상사라는 게 다 오해와 용서의 결합체이니까요. 누군가를 끝없이 오해하고 또 끝없이 용서하다 보면 우리 인생도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따금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이 오해하고 또 많이 화해하라고 말입니다. 칼부림이 날 정도의 깊은 오해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오해를 푸는 것도 좋은 경험일 테지요. 우리는 어차피 내가 아닌 너가 될 수 없는 까닭에 완전한 이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화가 당신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신문에서 자주 목격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극단적인 대립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불필요한 논쟁처럼 읽히지만 지구상의 두 세력은 이미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웃자고 쓴 글인데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빚어지는 크고 작은 오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올바른 대처 방법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만약 있다면)약간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용서는커녕 내 목숨까지 요구한다면? 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는군요. 자신의 운명을 탓하는 것 외에는.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극단적인 오해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1947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열세 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갔고, 1975년에 '그리스머'로 문단에 데뷔합니다. 1981년에 쓴 '한밤의 아이들'은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잘 나가는 소설가에서 도피자의 신세로 전락한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그가 발표한 '악마의 시'로 인하여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는 전 세계의 무슬림을 향해 그를 처형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수백명의 무슬림이 모여 ‘악마의 시’를 불태우고 폭력시위를 벌이며 살해 위협을 가했습니다. 작가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었죠. 그로부터 작가는 13년간의 기난긴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책 <조지프 앤턴>에서 자신의 도피생활 중에 겪었던 여러 일들을 독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입니다. 뜻밖의 결과에 당혹해 하면서도 작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 듯 보입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호메이니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루슈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더 비판적으로 쓸 걸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겻다. 그 말은 진담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이 이슬람교에 특별히 비판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p.17)

 

연도별로 기술된 그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그가 태어난 1947년에서 '악마의 시'가 출간된 1988년까지의 기록인 1부 '파우스트의 계약'을 제외하면 모두 1년 단위로 부를 나누어 2002년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2년은 작가가 무장 경찰의 보호 속에서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으로 은신처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끔찍했던 시절에 종지부를 찍었던 해였습니다. 2001년 9ㆍ11 테러로 자신에 대한 처형 명령이 실질적으로 해제돼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해가 2002년이었지요. 작가는 그 해에 비로소 '조지프 앤턴'에서 다시 '살만 루슈디'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루슈디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보았다. 블라디미르 조이스, 마르셀 베케트, 프란츠 스턴. 그런 식으로 짝을 지어 목록을 만들어보았는데 모두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우스꽝스럽지 않은 조합을 발견해 나란히 적어보았다. 콘래드와 체호프의 이름. 그것이 앞으로 11년 동안 쓰게 될 이름이었다. 조지프 앤턴." (p.219)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이 나에게 각별했던 까닭은 따로 있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을 미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솔직해지려 했다는 점입니다. 계속되는 살해 위협의 공포 속에서 살면서도 연쇄적 불륜과 그로 인한 네 번의 이혼, 돈과 명성을 향한 끝없는 욕망,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철없음 등을 그는 자기조롱과 희화화까지 동원해가면서 대담하게 펼쳐 보입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인 양 다루기 위해 1인칭인 '나'를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 ‘루슈디 씨’ 또는 '앤턴 씨'라는 3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 이유를 “자기 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작가의 도피 생활은 힘겨웠던 듯합니다. 10여 년간 앞마당에 신문이나 우편물을 집으러 나갈 수도 없었고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거나 가족을 만날 수도 없었으며 거처를 끊임없이 옮겨다녀야 했던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떠올렸습니다. 애인에게 던졌던 농담 한마디로 인해 자신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던 루드빅이 살만 루슈디의 삶과 비슷하다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는 벌써 죽었어야 했다. 누가 봐도 당사자인 그는 납득하지 못한 게 분명했지만, 그거야말로 모두가 기사로 내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리는 헤드라인이었다. 부고는 이미 쓰여 있었다. 비극이든 심지어 희비극喜悲劇이든 등장인물은 초안을 고쳐 쓸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 있길 고집했고, 더 나아가 의견을 내고 변론을 하고,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믿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길 고집했으며 또한 (사람들이 그런 만용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자신의 인생을 조금씩, 고통스럽더라도 한 걸음씩 되찾길 고집했다." (p.539~p.540)

 

악의적인 의도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은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오해에 종종 부딪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매번 화를 내고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의 귀를 하릴없이 두들겨야만 할까요? 우리는 어쩌면 탄생과 더불어 오해를 경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리가 불편하다고 우는 아기를 서툰 엄마는 배가 고파 운다고 오해하거나 같이 놀자는 뜻으로 빼앗았던 친구의 장난감 때문에 빚어진 싸움 등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오해를 불러일으켰음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오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작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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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세상을 하나로 엮어 크고 더욱 깊어진 슬픔으로 우리를 이끌다가 질식할 듯한 심연의 슬픔에 이르게 합니다. 공유된 슬픔은 바람에 증발하지 않는 법, 힘겹고 느린 시간을 견디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길고 긴 울음으로 토해내는 듯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운동을 나섰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들리던 까치 울음 소리도 오늘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낙엽 밟히는 소리만 새벽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지요. 우리는 종종 슬픔으로 하나되는 슬픔의 연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연대를 마뜩잖아 하는 힘센 자들의 압제 때문만은 아닐 터, 저 벚꽃이 힘없이 지는 것처럼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름하는 팽목항 그 언저리의 어둠이 아릿한 슬픔으로 번져옵니다.

 

싸리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봄인 양 환하게 말입니다. 봄비가 예보된 아침 하늘은 여전히 맑았습니다. 공유된 슬픔은 증발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싸리꽃 환한 아침의 숲을 아이들 웃음인 양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녕 기억된 슬픔을 되살리고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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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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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도 야구중계가 있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나야 뭐 야구에 목을 매는 사람도 아니고, 내 돈을 내고 야구장을 찾는 사람도 못 되지만 프로야구의 개막은 겨우내 우울했던 기분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야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구가 국민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계절이 바뀐 탓으로 돌리기에도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년시절의 나는 야구에 대한 규칙도 모른 채 동네 아이들 틈에 끼여 이따금 야구를 하곤 했었다. 변변한 배트도 없고, 글러브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신문지로 접은 글러브와 적당한 크기의 나무 몽둥이만 들고도 하루 온종일 야구를 했었다. 땅거미가 지고 '아무개야, 저녁 먹어라' 소리가 온 동네에 메아리칠 때까지. 야구공 대신 사용하던 털 뽑힌 테니스공을 들고 온갖 기묘한 자세로 공을 던지는가 하면 공터를 벗어난 테니스공을 찾아 한참을 헤매곤 했었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청룡기,봉황기, 황금사자기 등 지역과 모교의 명예를 걸고 참가했던 고등부 야구선수들의 꿈과 열정은 프로야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는 내용상으로는 박민규가 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했고,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천명관의 <고래>를 생각나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야마다 오쿠(王求)'의 부모인 야마다 료와 야마다 기리코는 만년 꼴찌팀인 '센다이 킹스'의 열혈팬이다. 오쿠가 태어나던 날 '센다이 킹스'와 '도쿄 자이언츠'의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센다이 킹스'의 감독 '나구모 신페이타'는 파울볼을 피하려다 머리를 다쳐 사망한다. 그 바람에 오쿠의 부모님은 '도쿄 자이언츠'팀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산부인과 침대에 누워 모유를 실컷 먹고 잠이 든 너를 바라보며 어머니의 머릿속에 반짝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활약하는 사내가 될 텐데 왕(王)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이상해." 왕이라는 한자를 쓰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는 게 어떠냐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섭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너의 아버지도 즉시 찬성했다. "그렇지!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원하게 될 존재니까, 왕을 원한다는 뜻으로 '오쿠(王求)'는 어떨까?" 라고 제안했다." (p. 34)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오쿠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초등학교 시절 프로야구 투수의 전력투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방과 후 야구 연습장에서의 배팅 연습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후 불량한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집에 돌아갔던 어느 날 오쿠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선배 한 명을 살해한다. 오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살인죄로 구속되고 비난을 견디지 못한 오쿠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연습을 계속하던 오쿠는 센다이 킹스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다. 프로구단의 선수가 된 오쿠는 투수들의 집중견제 속에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오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도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야구 천재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결국...

 

"그리고 그 말은 너의 부모가 심취했던 선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다시 한번 이름으로 말하자면, 나구모 신페이타가 현역 시절에 남긴 대사와도 겹친다. 잡지 <월간 야구팀>에 실렸던, 정말로 코딱지만 한 인터뷰 기사에 나온 말이다. "주위에서 '너희 팀은 너무 약하다, 최저다' 욕을 하면요, 필사적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요. 플레이를 하는 건 나니까 나는 나의 플레이를, 나의 야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내 인생에 대타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p.167)

 

작가는 마치 야마다 오쿠의 전기문을 쓰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하곤 한다. '그 시점에서 야마다 오쿠의 야구 인생이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p.242)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서도 작가 천명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신파극의 변사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던지는 족족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오쿠와 같은 천재의 출현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단지 걸림돌로 작용할 뿐 그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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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았다.

거저 주어진 볕이건만 허투루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내가 어렸을 때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고, 아까워라. 아이고, 아까워라.' 연발하며 그 좋은 볕에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곤 했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웬 호들갑이람.'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하셨던 어르신들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스레 맘이 바빠지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볕이라도 쪼이고 싶고, 옛친구라도 불러 하루 종일 햇빛 속을 함께 거닐고도 싶다.

 

이상의 수필 <권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記事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나는 봄볕 가득한 오늘의 여백을 앞에 두고 이상처럼 일망무제의 권태를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청명한 하늘과 찬란한 봄볕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욕심이 일었던 것이다. '아깝다'하며 나직이 옛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이상의 <권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런 대목은 정말로 '이상 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올 봄에는 맘에 드는 '한국 단편 소설' 몇 편 골라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봄볕 좋은 날에 나는 '이상'의 수필이 문득 떠올랐다. 이상의 소설과는 달리 그의 수필은 소탈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이상의 시와 소설에 비하면 그의 수필은 찾아 읽는 이가 드문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 쓴 수필은 감칠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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