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인은 왜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욕을 먹을까?
왜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청소년들의 희망 순위에서 최하위에 속하는 것일까?
기업가들은 전면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붓다가도 왜 뒷문에서는 그런 정치인과 연줄을 갖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가?
사람들은 과연 2~5년에 한 번 정도 투표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정치가, 정부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시민들이 정부와 정치권, 재벌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여 수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가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집권당과 대통령, 시장과 군수가 바뀌었음에도 왜 빈부격차와 재벌편중은 심해지고, 민주주의는 후퇴, 중소기업은 몰락, 고물가와 고실업, 사교육과 학력과잉, 자살자와 비정규직은 갈수록 늘어나는가?
.....
 
위 질문들은 최근들어 내가 사회와 정치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가 스스로 찾기 위해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우연히도 저자로부터 직접 책에 대한 짧은 강연도 듣게 되어 질문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몇 사람과 같이 토론도 했다. 이 책에서 연결된 여러가지 고민거리 중에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형성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정치가 우선한다>를 다음에 읽고 싶다. 
 
저자는 자신의 궁극적인 질문은 현실 속에서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지 않을 방법이 무엇일지, 떼레야 뗄 수 없는 정치의 세계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또 정치가 제공하는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누구에게 기대를 걸까를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단초를 구하기 위해 한국의 현실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좋은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발간한 것이다. 저자는 진보신당 전대표인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2010년 11월에 진행된 저자의 5회 강의를 이 책을 정리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하고자 한다." 
이 말은 저자가 자신의 선생이었던 최장집 교수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정치, 정당, 정치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대책없는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별다른 깊은 생각없이 답답하고 짜증나는 정치분야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드러낼 때 줄곧 사용해온 것이다.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태동했고 어떤 과정을 겪어 왔는지 돌아보면 독재자, 기득권자, 엘리트, 자본가, 권력자들이 태생적으로 민주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80년대에 대학가 주변 술집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던 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를 연상하면 된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대놓고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없다. 그 대신에 그들은 언론을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희화화시키고 구조적으로 민주주의가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책임을 특정세력에게 떠넘기는 것이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이 된 것이다.
 
1장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서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인간의 사회 활동 가운데 정치가 갖고 있는 특징은 어떤 것인지, 누군가 정치를 한다고 할 때 그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 문제들은 무엇이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대학가와 지식인 집단에서, 노동계와 사회 각층에서 태풍처럼 몰아치던 '혁명'의 열풍은 구공산주의 체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태풍과 같던 '혁명'이 필요하던 근원적인 상황과 '혁명'이 원하던 궁극적인 목적은 여전히 이 땅에 남겨져 있다. '혁명'이 사그라졌다면, '혁명'의 모델이 사라졌다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2장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에서는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민주주의가 열어 놓고 있는 가능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 권력에 대한 태도, 소통의 방법과 말의 힘을 깊이 자각해야 함을 말한다. 지난 번에 읽은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도 도움이 된다. 결국 이 장에서는 "정치와 운동은 별개다"를 말하고 있다.

3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우리의 민주정치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에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을 말한다. 그 출발은 보통 시민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은 갈등, 경쟁, 리더십, 그리고 조직이다. 문제는 대중권력의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를 조직하는 방법이다.

4장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들]에서는 민주주의 초기 단계에서 진보파들이 했던 정치적 경험을 다룬다. 먼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의 좌파 정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보고, 우리의 경우에는 어땠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치론을 이야기한다. 민주화 운동에서 민주주의 정치로 변해야 한다. 국가, 정당, 당파성, 이념에 대해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민중을 위한 것이며, 거꾸로 민중이 그러한 이념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원내 진입과 함께 어렵게 만들어진 진보의 정치적 자원이 탕진된 것은, 정파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부의 부재로 인해 정파의 폐해가 무제한으로 허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강한 정당의 부재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축소하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

5장 [이런 정치를 원한다] 에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가들이 가져야 할 문제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진보적이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좀 더 깊고 넓은 인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권력을 이해하고 선용해야 한다.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우리 모두 '정치적 이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불활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 기초위에서 진보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가 진보임을 내세워 민주주의와 정치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통해 얼핏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정치와 정당, 대의제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만으로 내뱉는 정치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몸으로 부딪혀서 정치와 정당 속에서 한계와 가능성을 알아내고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고 하고 있느냐이다.
 
* 책 속의 책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사울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샤츠 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마키아밸리 <군주론>,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데이비드 헬드 <민주주의의 모델들>
 
* 책 속의 문장

- 이 책에서도 필자는, 정치를 하게 되어 있고 또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정치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란 놀라운 분야이고, 소명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는 것은 도전할 만한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p.15)

-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중략) 권력은 삶의 진정한 본질이며 원동력이다. 그것은 몸에서 피를 순환시키고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의 힘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로 솟아올라 단결된 힘을 제공하는 적극적 시민 참여의 힘이다. (중략)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중략) 성 이그나티우스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p.59)
-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타협은 실질적으로 활동할 때 언제나 그 안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인데,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고르기, 크지는 않지만 보통 정도의 승리를 의미하며, 결국 타협은 획득하는 것이다. (중략)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중략)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p.60)

- 요컨대 갈등 없이는 그 누구도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고 또 갈등 때문에 존재한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다.(p.99)
- 샤츠 슈나이더에 따르면 "기존의 직접 민주주의 이론은 ‘인민’이라고 불리는 보통의 시민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이상화해 놓고는 정작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모두 이들에게 떠넘기는 일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사안에 따라 위대한 시민을 칭송하는 일과 욕망에 빠진 시민을 탓하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못 참아 했다.(p.106) - 이처럼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이른바 정치 부재론 내지 정치 종언론은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다. 오로지 혁명이 중요하고 혁명 이후에는 하나의 진정한 정치형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p.139)

- 혁명은 예술적 상상력과 같은 물리적 강권력의 위험성이 약한 곳에서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혁명론을 갖고 정치적 실천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혁명론은 무엇보다도 종말론적 사고를 강화하기 쉽고, 실제 혁명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갖는 반정치적인 사고 경향 때문에 혁명 이후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기 쉽다.
이상 사회를 위한 혁명적 단절론을 앞세워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삶의 모든 것을 걸라고 인간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평균적 한계 위에서 서로 협력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더 중시해야 한다.(p.140)

- 정치의 방법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학의 기본 전제는, 정치란 개인의 차원 나아가 운동성 내지 도덕성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갖는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초심’, ‘도덕성’, ‘운동성’과 같은 도덕률이 진보의 영역에서 정치의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정치를 현실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정치의 현실이 포착되지 않는 조건에서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도덕성은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강제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성이 정치적 행위를 규제하는 기준이 될수록 정치가 도덕적일 수 있는 기반은 파괴된다. 우리 사회처럼 도덕성이 강조되는 정치도 없지만 한국 정치가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한국의 정치가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성을 따지는 동안 실제 개선해야 할 정치의 현실을 놓쳐 버리고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정치 현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p.143)

- 내가 운동권 내지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은, 분명 그들 역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이용하고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투고 있는데도 늘 언어의 구사에 있어서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권력과 이해관계에 초연한 역사적 역할자로 정의하거나, 자신은 안 그런데 상대가 권력과 이해관계를 다툰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또 자신은 원치 않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권력과 이해를 다투게 되었다는 식의 자기 위선과 변명의 문법이 일상화되었다.(p.144)

- 요컨대 정치적 이성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 기초 위에서 진보가 진보다워야 할 것이다. 진보적인 것을 위해 정치를 부정하면 안 된다. 진보는 지금보다 더 그리고 제대로 정치적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하고 있는 정치라는 가능의 공간을 지금보다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인 기초 위에서 성장해 갈 때 진보 정치는 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매력을 갖게 될 때 진보는 한국 정치의 주변을 박차고 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심적 기여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p.173) 

[ 2011. 4. 10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라이더 -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 프리라이더 1
선대인 지음 / 더팩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제세공과금의 징수와 정부 예산의 편성 및 집행에 대해 기본적인 것들을 알아야 한다. 모든 국민은 근로소득세와 4대보험 등 직접세를 납부함과 동시에 수익에 대한 세금보다 취득, 등록, 소비, 부가세등 간접세금를 더 많이 납부하기에 ’납세자’이자 정부와 세금의 주인이다. 지금부터 왜 대한민국 납세자가 잘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한 책을 한 권 읽고 소개한다.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와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에 이어 세 번째로 저자의 저서를 읽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저자와 그 연구소는 야말로 한국 내 경제연구소 소속 전문가 중에서 정권이나 재벌의 ’나팔수’가 아닌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는 저자가 속해있는 [김광수경제연구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을 토대로 특정 개인이나 정파, 집단이익을 떠나 국가적인 관점에서, 국민적 이익을 토대로 경제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정치계와 교육계, 언론 등에서 ’복지논쟁’이 한참이다. 복지를 이야기할 때 가끔 ’무임승차’라는 표현도 나온다. 복지 논쟁의 경우, 이 표현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황식 총리, 이명박정권의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에서, 그리고 보수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임승차’가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인 프리 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란 말 그대로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경제학이나 정치학에서는 이 같은 무임승차자의 뜻을 확대해 공공재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정당한 몫 이상의 공공재를 소비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이 각종 국방과 교육, 건강보험 등 공공 서비스 혜택을 누리는 게 무임승차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무임승차 문제가 만연하게 되면 그 국가는 재원 부족 등으로 적절한 수준의 공공재를 제공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붕괴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국가는 납세의 의무를 규정하고 징병제를 실시하거나 자원의 남용 또는 훼손을 방지하는 규제를 만들어 시행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무임승차자 문제는 정부의 역할을 정당화해주는 기본 논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무임승차자’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취임 직후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언급한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진짜 악성 무임승차자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악성인 무임승차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의 노부모님들이나 가난한 이웃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가장 돈이 많고, 힘이 센 사람들이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숨겨진 정체와 행태, 그리고 그들 간 내밀한 이해관계의 연결고리를 고발한다. 또한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이 돈을 우리 호주머니에서 거둬 가는지, 국회는 왜 그것을 방치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거둔 돈을 이들 악성 무임승차자들을 위해 얼마나 흥청망청 쓰는지, 그 과정에서 부패와 뇌물의 사슬구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비밀을 누설한다. 





 
책 속에서 미국과 한국의 세금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비교하는 대목이 있다.
"1998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민주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참 궁지에 몰려 있었지만, 결국 그 해 열린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아메리카와의 맹약’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 정책 의제들을 이슈화해 당시 공화당의 스타로 떠올랐던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 하원의장의 탈세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자 미국하원윤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징계 권고안을 결의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고 사실상 정치권에서 추방됐다."


그렇다면 세금의 잣대로 본 한국의 정치권은 어떨까? 뇌물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을 안 내면 곱게 안 낼 것이지, 추징시효 만료를 몇 달 앞두고 300만 원을 납부해 지켜보는 국민들을 우롱했다.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강제집행이 면제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씨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의 3남 1녀는 수백 억 원대의 자산가다. 손자,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 소유자다. 그런데 이렇게 추징금을 안 내고도 그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너무나도 훌륭히 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그의 자택 주변을 가보라. 경찰 1개 중대가 주변에 좍 깔려 경호를 서고 출입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가 일찌감치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주변 주차 구역에 대놓은 차를 빼달라는 경찰의 재촉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의식과 도덕, 정의와 공동체감에 대한 뼈아픈 실례이자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례다.

전직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신들의 자녀들과 자신 및 부인인 김윤옥 씨의 운전기사까지 위장취업시켜 경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서울 강남권에 여러 채의 빌딩 등을 포함해 모두 수백 억 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2002년 동안 사실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를 월 1만 5000∼2만 3000원씩만 내기도 했다. 한 달 수입 100만~200만 원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이 대통령보다는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 그 밖에 그는 지방세를 체납해 여섯 차례나 재산을 압류당했으며, 고용산재보험료를 미납해 강제추징당한 전력도 있다. 미국이라면 이 가운데 단 한 가지 사실만 드러나도 대통령은커녕 정치권에서 사실상 추방당할 텐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는 게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통령뿐이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에서 10억 원대의 부동산을 3년 이내에 팔고도 등기날짜를 맞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낙마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시민권자인 딸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정부의 장관들이나 정치인들이 부동산 투기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 미납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엄정한 처벌을 비켜갔다. 당장 진수희 장관만 해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 최대의 부자로 손꼽히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2006년 기부 약정식 행사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부부와 함께 참석한 가운에, 부시 행정부가 실시하려던 기업의 법인세와 상속세 감세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세금 안 내려고 추잡한 짓 하지 말고 정당하게 돈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세요. 그것이 ‘우리나라’ 미국을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 기업인, 부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2006년 6월 27일 한겨레 기사 참조)

하지만 세금의 잣대에 대한민국의 재계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2008년 특검 과정에서 4조5000억 원에 이르는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냈다면 최소 2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돈이 넘쳐나서 주체도 못할 국내 최고 재벌이 뭐가 세금 안 내려고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이 회장이 막대한 재산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이리 빼돌리고 저리 빼돌릴 동안 도대체 이 땅의 국세청과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건희 회장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수조 원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달랑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다.
 
2010년 가을 잇따라 불거져 나오는 각종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과 탈세 의혹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일은 비단 삼성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천 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사고 있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선친이 남긴 재산 가운데 태광산업 차명주식 18%를 공식 재산 목록에서 누락했다가 800억원 가량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2009년 12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다 살인미수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재무2팀장은 공판과정에서 “본인이 관리하던 차명재산이 수천 억원에 이른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 일이 있은 뒤 CJ그룹은 1,700억 원이 넘는 차명재산 관련 세금을 납부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일가도 임원들의 차명계좌 형태로 수백 억 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이미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또 신한금융그룹 경영층의 내분사태 와중에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차명계좌로 50억원을 보유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2009년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만 언급해도 이 정도다. 그렇다고 비자금 규모가 모두 드러난 것도 아니니 비자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저자의 분석과 해법에 따르면, 매년 300조원이 넘는 정부예산 중 상당수가 생산적인 분야와 복지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OECD 국가 중에서 한국정부가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가장 방치, 조장하고 있다.) 현재 지극히 비생산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무상급식이나 사회복지 확대, 실업문제, 출산율 저하문제 등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여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제 왜 우리가 세금과 예산, 집행에 대해 두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고 조사하고 항의하고 분노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가끔씩 언론 기사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진 세금을 둘러싼 복마전과 ’무임승차자’의 전체적인 그림과 이야기를 알게 된다. 19세기 중반 정의롭지 못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며 세금납부를 거부하고 유치장에 갇힌(단 하루지만) 소로우처럼 우리도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거부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세수구조에서 바꾸어야 할 문제와 집행에서 바꾸어야 할 문제는 산적하다.
1. 세금징수 구조 혁신
  - ’생산경제 세금 > 자산경제 세금’을 비슷하거나 자산경제 세금이 더 많도록 변경
  - 금융실명제 강화, 주식거래 차익 과세, 개인사업자 과세 현실화 등
  - 징수 체계 간소화 및 미납세금 처벌 강화
  - 제세공과금 미납자에 대한 기본권 제한 강화
2. 정부/지자체 예산 집행 혁신
  - 예산 수립 및 국책사업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역할 증대 제도화
  - 예산낭비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처벌 강화
  - 건설경제에서 생산경제로의 대전환
  - 국책사업 집행에 대한 제도 변경 및 구조조정



 
복지논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 세금이나 정부예산에 관심있는 사람, 부도덕한 무임승차자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프리라이더> 후속으로 나올 두 번째 저서가 벌써 기다려진다.
 
* 책 속의 문장
- 중앙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은 4대강 사업에 수십조 원을 투입하고, 고양시는 지금도 가동률이 50%에 불과한 킨텍스 옆에 제2 전시장을 짓는다며 3,500억원을 씁니다. 이는 고양시 전체 사회 복지 예산의 1.5배에 이르는 돈입니다.(
P.17)

- 2008년 특검 과정에서 4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차명 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도 않았다. 정상적으로 냈다면 최소 2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했다.(P.21)

- 뇌물 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미납한 추징금 1,627억 원을 안내면 곱게 안 낼 것이지, 추징 시효 몇 달 앞두고 300만 원을 납부해 지켜보는 국민을 우롱했다.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강제집행이 면제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 씨는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의 3남 1녀는 수백 억 원대의 자산가다. 손자,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 소유자다.(P.22)
 
[ 2011년 3월 3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1-04-0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대인 이라는 이름에 신뢰가 가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게을러서 ㅋ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 개정2판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 멘토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파크 블로그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책...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때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0년 초이고 내가 읽은 책은 1972년 3월에 재판으로 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한반도가 일제의 강점에서 시름하면서 한글마저 말살되고 있던 때에 유럽인들은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동양이나 한국보다 앞선 그들의 문화와 기술이 가끔 부럽다...
 
나는 200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300권이 넘는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대부분 내가 처음 읽은 책들이고(두 번째나 세 번째로 읽은 것은 5%도 채 안된다) 그 300권 중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두 세번 읽은 책 역시 10%가 채 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아무튼 작년부터 책을 읽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가 늘 고민이었다. 첫 번째는 ’셀 수 없이 많은 책 중에서 어떤 것을 읽을 것인가’였고 두 번째는 ’어떻게 효과적이고 성과적으로 책을 읽은 것인가’였다. 법정스님의 추천도서를 읽기 시작한 것과 공부모임에 참여한 이유 중 한 가지가 첫 번째를 해결하기 위함이었고 이 책을 읽은 것이 두 번째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방법, 이해력을 높여주는 독서법,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방법 등 적절한 독서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또 독서의 성공여부는 ’저자가 전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독서의 수준을 4단계(기초적인 읽기 - 살펴보기 - 분석하며 읽기 - 통합적인 읽기)로 나누어 올바른 독서법에 대해 설명하고 실용서적, 문학서적, 역사서적, 철학서적 등 각 분야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다. 
 
저자의 ’독서법’을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까지 대부분 책을 읽는 과정이나 책을 읽은 후 정리하는 습관, 서평을 남기는 전 과정이 아무래도 ’주먹구구’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책을 읽는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질문을 미리 준비하여 유지하는 것과 ’살펴보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책을 집어든 후 두서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버리는 내 독서 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저자는 책 읽기를 위한 4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1.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글인가? 2. 무엇을, 어떻게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가? 3. 전반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그 글은 맞는 이야기인가? 4. 의의는 무엇인가?"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저자가 개념으로 정리한 ’책 분류하기’, ’꿰뚫어 보기’, ’저자와의 협약’, ’메시지 찾기’, 그리고 ’공정하게 비평하기’ 역시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내가 취해야 할 관점과 방법론에 도움이 되었다. "1. 주요 단어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라. 2. 중요한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요 명제를 파악하라. 3. 연결된 문장들 속에서 명제를 찾거나 연결시켜 저자가 주장하는 논증을 파악하라. 4. 저자가 해답한 문제와 해답하지 못한 문제를 검토하고, 해답하지 못한 문제를 저자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파악하라."
’분야별 책 읽기’에서는 평소에 소설책을 읽는데 있어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았다. "소설을 읽을 때는 빨리 그리고 완전히 몰두한 채 읽으라. 이것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충고이다.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p.234)"
’통합적인 읽기’ 역시 비슷한 주제나 문제에 대한 책을 함께 읽을 때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특을 제시해 주었다.
저자의 독서기술이 생각보다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늘 ’독서법’을 염두에 두고 수 십 차례에 걸쳐 시도하고 검증하고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읽기 위한 ’독서법’을 다루고 있지만, 그와 함께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과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는 진정한 독서란 단순히 정보와 지식을 취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깨달음’은 교육기관에 들어가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스스로 읽으면서 연구, 조사, 깊은 사고를 통해 생각을 넓히고 지헤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혜와 ’깨달음’을 위한 책 선택 기준은 "능력 밖에 있는 책, 자신의 머리를 넘어서는 책을 읽어야만 생각을 넓히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이 고전이라고 분류한 137권을 책의 말미에 추천했다.
 
책은 읽는 내내 제법 흥미를 주었다. 생각해 볼만 한 점도 많이 제시되어 있고 여러가지 관점이나 기술적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저자의 ’독서법’을 비평할 수준은 못되는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비평할 수준이 되려면 1,000권 이상을 정독하여 읽어야 할 것이고 읽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직접 책을 집필하여 출간해보아야 ’비평’ 수준이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서평’도 아닌 ’독후감’ 정도의 수준일 것이고...^^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서구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학생들이나 성인들에게 ’독서법’이 제대로 알려지거나 가르쳐지지 않는 것 같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대학에서도 1학년 교양과정에서 아주 짧게 작문을 가르치는 정도(아마도 리포트나 논문 때문이겠지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술세대들은 좀 다르기를 기대해본다.
 
* 추천 서양고전(古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1-06-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에 관한 책 가운데 이만한 책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붙여둔 '137명의 저자들과 저서들'도 참 좋더군요.
붉은구름님께서 이미지로 덧붙여 주셔서 새삼 고전들의 목록을 되짚어 보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있었습니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양장) - Rules for Radicals
S.D.알린스키 지음, 박순성 외 옮김 / 아르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이어 이 책은 내일 공부모임에서 이야기할 교재다. 공부모임에 참여 중인 박순성교수님이 직접 제안하셨고 공부모임 참가자들의 동의로 교재로 채택되었다.
 
저자인 알린스키에 대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시 민주당 예비선거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미국 대선을 전후하여 언론에 힐러리와 오바마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알린스키를 존경한다는 것이 기사로 보도된 적이 있다. 
힐러리의 경우 웨슬리 여대 학생회장 시절인 1968년 알린스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힐러리는 제안을 거부했다. 힐러리의 경우 웨슬리 여대 학생회장 시절인 1968년 알린스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힐러리는 제안을 거부했다. (힐러리는 졸업논문은 알린스키와 관련된 것이다.) 반면 오바마는 알린스키 사후인 1985년 알린스키의 이론을 추종하는 단체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다. 당시 컬럼비아대 졸업생 오바마는 박봉을 무릅쓰고 시카고 흑인 공동체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알린스키가 1940년대 이후 미국 시카고 지역 등에서 직접 진행한 지역빈민운동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지역운동 활동가들이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조직할 것인지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활동가들이 처음에는 올바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지만, 잘못된 언행을 보이고 조직화와 전술 운용에서 부적절함을 보이면서 좌절하거나 고립되는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나는 이 책이 오늘날의 급진주의자들의 교육에 기여하기를 그리고 거칠고 감정적이며 충동적이지만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진 열정이 계획적이고 목적지향적이며 효과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p.42)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흑인인권 개선운동과 기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고 전국의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이 활동가로 참여하였다. 알린스키는 "미국 전역의 수 백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밤샘 모임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가 나에게 물어왔던 경험과 조언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전투에, 곧 인생에 투신하고자 하는 바로 그 젊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서문에 썼다.
 
[지향]에서 알린스키는 이 책을 쓰는 목적이 힘(권력 Power)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조직하여 힘을 얻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제안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역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수단을 보다 균등하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곧바로 혁명이 종말함과 동시에 반혁명이 시작됨을 강조한다. 이 장에서 알린스키는 미국에서의 1970년대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적인 관점과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어떤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그는 보통 활동가들이 신념으로 삼고 있는 기성종교나 00주의가 아니라 ’민중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은 활동하는 사람들이 항상 독단과 교조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맞추어 자유롭고 유연하고 유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여야 함을 말한다. 두 번째는 활동가들은 자신이 바라는 사회나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 전제조건임을 말한다. 활동가들이 버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환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시켜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이라고... 이 말은 매우 철학적인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 "모든 긍정에는 부정이 있으며, 반드시 뒤따라 오는 부정적인 것 없이는 어떠한 긍정적인 것도 없고 부정적인 측면을 갖지 않은 어떠한 정칙적 낙원도 없다.(p.55)"
 
[수단과 목적]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가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음식점에서 빵을 훔친 것과 관련하여 ’생존은 부의 증식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훔친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장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수단과 목적’에 대한 활동가들의 11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수단과 목적의 윤리에 대한 사람의 관점은 이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비례한다.
두 번째. 수단의 윤리에 관한 판단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우된다.(레지스탕스의 테러 등)
세 번째. 전쟁에서는 목적이 거의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네 번째. 판단은 행동이 일어난 바로 그 시점의 맥락에서 이루어져야지 전후의 다른 유리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다섯 번째. 윤리에 대한 관심은 이용 가능한 수단의 숫자에 비례해서 커지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여섯 번째.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덜 중요할수록, 사람은 수단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여할 여유를 더 많이 갖게 된다.
일곱 번째. 일반적으로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이 윤리의 주요 결정요인이다.
여덟 번째. 수단의 도덕성은 그 수단이 패배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 혹은 승리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에 따라 좌우된다.
아홉 번째. 모든 효과적인 수단은 반대세력에 의해서는 자동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평가된다.
열 번째. 네가 가진 것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서, 그것을 윤리적으로 포장하라.
열한 번째. 목표는 ’자유,평등,박애’, ’공공선을 위하여’, ’행복의 추구’, ’빵과 평등’ 등과 같은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단어들에 대해]에서 알린스키는 정치언어(힘, 권력, 자기이익, 타협, 갈등, 대립등)가 대중적으로 왜곡,변형되어 있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본래의 뜻을 되새기고 활동에 맞게 규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조직가의 교육]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을 조직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경험과 소통, 겸손, 호기심, 불경(不敬), 상상력, 유머감각,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약간의 희미한 전망, 조직화된 인격체, 정치적으로 분열적이지만 동시에 잘 융화된 존재, 자존심, 자유롭고 편견 없는 마음과 정치적 상대성, 창조성 등이다.
 
[의사소통]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자질은 ’의사소통’이라고 규정한다. "누구든지 조직가의 자질 중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조직가로서 유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자질 중에서 하나는 예외이다. 바로 ’소통의 기술’이다.(p.138)" 아마도 ’소통’의 중요성은 활동가, 조직가에게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에, 선생과 학생간에, 비지니스 사이에서, 단체와 모임에서 등 사람이 함께하는 사회는 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의사소통으로 모든 대화와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고 해결되지 않는 기초적인 이유가 소통 문제가 된다. 특히, 정치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유권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이명박정권처럼...ㅋㅋ)
 
[시작의 순간]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이 대중 속에 들어가서 시작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방법론 등에 대해 세세하게 다룬다. 다시 말해 그는 대중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기성질서가 자신을 공개적으로 ’위험한 적’으로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해, 주민들과 주민단체로부터 초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세부적인 지침과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조직화하는 과정과 조직화 이후의 행동 등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전술]에서 알린스키는 조직화한 이후의 힘(권력)의 전술에 대한 원칙과 적용방법을 제시한다. 전술의 규칙,
첫 번째. 힘(권력)은 당신이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적이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당신 편인 사람들의 경험을 결코 벗어나지 말아라.
세 번째. 가능하다면 어디에서든 적의 경험을 벗어나라.
네 번째. 적이 그들 자신의 교본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라.
다섯 번째. 비웃음은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여섯 번째. 좋은 전술은 당신 편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전술이다.
일곱 번째. 너무 오래 끄는 전술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여덟 번째. 여러 상이한 전술과 행동으로 압력을 계속 가하라.
아홉 번째. 보통 협박은 전술 핸동 자체보다 더 위협적이다.
열 번째. 전술을 위한 대전제는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일정한 압력을 계속 가할 수 있는 활동의 전개이다.
열한 번째. 만일 당신이 어떤 하나의 부정을 필요한 만큼 강하게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그 부정은 반대푠으로까지 뚫고 들어갈 것이다.
열두 번째. 성공적 공격의 대가는 건설적인 대안이다.
열세 번째. 표적을 선별하고, 고정시키고, 개인화하고, 극단적인 것으로 만들어라.
저자는 이 장의 규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활용했던 몇 가지 전술의 사례를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그 전술들은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기발하고도 창조적이다. 특히 연주회장에서 집단적으로 방귀 뀌기, 국제공항 화장실 집단 점령, 백화점 집단 쇼핑 및 택배주문, 집단적인 은행계좌 개설 및 해지 등의 전술은 읽으면서도 저자의 기발함과 유연함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킥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위임장 전술의 기원]에서 알란스키는 당시 이스트만 코닥회사에 대한 고용에 있어 인종차별 철폐투쟁을 진행 중에 중산층을 투쟁에 동참시킴과 동시에 중산층이 직접적으로 투쟁에 참여할 수 있는 전술로 주주총회 위임장을 대학재단, 기업, 금융기관, 공공기관, 단체, 개인들에게 모집하는 사례에 대해 설명한다.
 
[가야할 길]에서 알린스키는 미국 내 중산층의 조직화 및 급진화를 강조하면서 중산층 출신이 대부분인 활동가와 조직가들의 각성과 노력을 당부한다. 
 
알린스키에 대해 한국에 알려진 것은 많은 부분이 잘못된 정보나 과장된 정보에 근거해 있다. ’히피 선동가이자 미국 최대 노동조합의 창립자’,  ’시카고의 갱 두목 알 카포네의 부하 출신’ 등... 그가 알 카포네 밑에서 잠시 일한 것은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던 그가 단순히 책상에 앉아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폭력단과 어울려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일은 알린스키의 삶의 자세와 사물에 대한 접근방법을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이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절망의 늪에서 헤매게 되었을 때, 알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가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가난한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데 전념했다. 이후 그의 빈민조직 활동은 미국사회에서 신화를 만들어 갔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 차별, 사회적 천대, 종교적 멸시를 받아 바닥에 처져있는 사람들에게 알린스키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알린스키가 주장한대로 이 책의 발간시점인 1970년 미국의 시대상황과 사회의 조건을 2011년 한국의 상황과 조건에 그대로 맞출 수도 없고 맞추어서도 안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정치경제적인 구조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활동가에게 원칙과 기준으로 제시했던 많은 것들은 여전히 지금도, 이 땅의 활동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규칙"은 현대 한국사회 시민운동가들 본인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할 실천적 지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알린스키가 강조하는 ’사물의 양면성’과 ’독단과 교조의 거부’가 크게 다가온다.
’사물의 양면성’은 우리가 보통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 선호하는 자세,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상황,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게 했던 지난 날의 각종 교육과 철학적 자세, 그로 인해 사고와 행동을 분리시켜 왔다. 저자 말대로 어둠이 없는 빛도 없고, 밤이 없이 어떻게 낮이 존재할 것인가.. 악이 있음으로 해서 선이 존재하는 것이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값진 것이다. 우주와 우리의 삶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짝이라는 당연한 개념이 실제 삶과 활동에서는 분리되고 만다. 앙면성, 이원성, 상보성, 태극, 음양, 모순 등... 저자는 이러한 원리와 개념을 사회현상에서도 일깨워준다. 과거 미국 노동자들의 최고 투사였던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가 나중에 기성질서를 방어하는 요소의 하나가 되었고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였다. 한국의 현실은 미국과 다를까? 1970~80년대에 목숨을 걸고 대의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과 노동운동가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독단과 교조의 거부’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학생, 재야, 노동 등 사회운동가들이 보여준 노선투쟁과 파벌싸움, 그리고 ’주사파’나 ’민혁당’ 등의 조직에서 보여준 독단적이고 교조적이었던 기억들이 아프게 떠올랐다. 2008년 3월 민주노동당에서 집단적으로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만드는 과정, 2010년 지자체선거시 연합공천을 둘러싼 유시민씨와 진보신당의 태도, 제정당 사회단체 내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노선과 이념과 파벌의 잔재들, 1980년대 이후 그런 내부갈등과 싸움의 잔재가 21세기인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486세대 내에서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극복할 것인지 많은 생각과 논의와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처칠, 간디, 링컨 그리고 제퍼슨을 포함하는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유’, ‘모든 인간의 평등’, ‘인간이 만든 법보다 높은 법’ 등과 같은 치장으로 벌거벗은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도덕적 원칙’에 호소했다.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서조차 이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효과적인 행동은 도덕성이라는 통행증을 필요로 한다. [...] 소극적 저항은 다른 모든 전술이 선택되는 이유와 같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만큼의 도덕적, 종교적 장식물로 꾸며지게 된다. (p.87-88)
-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138)   
 
[ 2011년 3월 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키리크스는 정보의 주인과 정보공개에 대한 의사결정, 정보공개에 따른 책임, 정보 민주주의에 대한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다.
 
지난 3월 3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두 번째 강연 주제였던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를 수강하기 위해 읽은 다니엘 돔 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와>와 책의 이름만 같은 책이다. 저자는 독일의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의 두 기자이며, 다니엘은 위키리크스의 내부자로서 위키리크스의 취지와 목적, 내부 구조와 시스템, 소통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등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 책은 부제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위키리크스라는 폭로 사이트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위키리크스를 탄생시킨 줄리안 어산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프간,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문서와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유발한 비리 공개까지, 2010년을 거쳐 2011년까지 그 여파가 몰아치고 있는 위키리크스에 대한 지지자와 비판자 양쪽의 인터뷰를 모두 담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를 인정할 수 있는가? 그나마 국가의 3권분립이 이루어진 서구를 놓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만이 정보의 공개여부를 결정해도 되는가? 3부의 권력 엘리트들은 과연 어떤 정보가 국가의 비밀이 되는지, 언제 어떻게 공개할 지를 결정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가? 정보 공개와 관련하여 어디까지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위키리크스는 위 질문들에 대해 'NO'라고 대답하면서 아무것도 계속 비밀에 부쳐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만이 민주주의가 더 성숙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렇다면 먼저 국가가 공개하지 않아야 하는 정보가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정보가 인류와 개인들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핵무기나 화학무기 개발 기술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자동차 엔진기술은 특정 회사나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특정한 정보의 경우 테러리스트가 입수하게 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2007년부터 위키리크스가 폭로하여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들(율리우스 베어은행, 사이언톨로지, 카우프싱 은행,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 아프카니스탄 전쟁 기록,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 등)을 살펴보면 '인류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여러 국가의 정부가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를 반역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면서 체포하려고 하는 이유는 더욱 '인류의 재산과 생명의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위키리크스는 모든 것이 다 정당하고 적합한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위키리크스의 문제의식과 취지, 주요한 폭로 내용과 방식, 취재원의 보호, 금전처리 원칙 등에 대해서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전폭적으로 지지,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내부자였던 다니엘의 주장이나 위키리크스 비판자들의 애기 중 몇 가지는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은 어떤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 누가 결정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경우 어산지 개인이 모든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보독점'인 것이고 결국엔 '권력독점'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취재원 보호다. 아직까지 위키리크스의 취재원이 위해를 당한 사례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보독점을 지켜내고 어산지와 취재원을 추적하는 극우파와 정보기관들의 폭력적인 행태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느 언론에서 표현한 것처럼 위키리크스는 민주주의의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 것인가? 전 세계 부패 정치인들과 강대국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이 웹사이트의 정체와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위키리크스의 등장은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정치주체의 출현을 의미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 권력 즉, 정보의 독점적 소유를 문제 삼고 있다. 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고 나아가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권력투쟁인 셈이다. 위키리크스는 각국 정부들로부터 정치적 통제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통제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무엇이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가를 ‘함께’ 결정하겠다는 새로운 정치주체가 갑자기 출현하면서 이제 우리는 판단과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게 된 셈이다.
 
저자가 보기에 위키리크스가 분명히 비상하고 특출한 아이디어이지만 또한 디지털 혁명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비밀 폭로 플랫폼의 컨셉은 새로운 게 아니며 다양한 형태의 선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의 가능성을 어산지와 그의 협력자들만큼 실행에 옮기며 단기간에 국제적 명성을 쌓은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다. 저자는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고 판단한다. 위키리크스를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와 입장은 예상되는 바이기도 했고 많이 실망한 측면도 있다. 위키리크스가 태동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기존 언론의 역할이 수요자와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임에도 기존 언론들은 스스로 변하기 보다 위키리크스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기사 확보와 돈벌이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존 언론들이 기성 권력과 너무 접근하여 또 다른 권력의 범위안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가 부족한 나라의 경우에는 '권력의 범위'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그리고 이 문제적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 어떤 저널리즘에서도 시도한 바 없고.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폭로 사이트 또는 매체를 탄생시킨 사람은 바로 호주 출신의 기이한 해커, 줄리언 어산지라는 남자였다. 저자가 어산지를 처음 만났을 때, 어산지는 배낭과 여행가방 하나만 들고 있었으며 이것이 끊임없이 이동하면 살아가기 위해서 그에게필요한 전부였다. 그런 어산지의 모습과 방식은 68혁명 세대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가 체득한 그 만의 방식이었다. 어산지는 컴퓨터의 귀재다. 뿐 만 아니라 그는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신의 300달러짜리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또 하나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어산지는 급진적인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보통의 상식과 기준을 다르게 정의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산지에게는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다. 어산지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을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저자는 그의 비상한 카리스마가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저자의 어산지에 대한 평가는 너무 한 쪽에 치우쳐 있다. 슈피겔이 위키리크스와 밀월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자들은 기자로서의 중립성을 상실한 측면이 있다. 나는, 정보독점과 권력분산이라는 어산지의 이념과 취지는 충분히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지만 어산지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결정하는 방식,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산지가 동일한 방식을 계속 고집할 경우, 위키리크스가 네티즌과 취재원 또는 내부 협력자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위키리크스와 어산지가 또 다른 '독재권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나는 이 조직의 심장이고 영혼이며, 창립자이고 대변인이고 최초의 프로그래머이고 기획자이고 자금조달자이고, 그로 나머지 전부다. 이게 싫으면 네가 떠나라" (줄리언 어산지가 자신을 비판한 아이슬란드의 위키리크스 자원봉사자에게 채팅에서 던진 말) (p.225) 
 
* 책 속의 문장
- 위키리크스 조직의 역사를 우리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추적해왔다. 처음에는 경쟁상대로서 관찰을 시작했다. 탐사보도 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의 핵심 분야에 새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위키리크스 사이트와 그 운영자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스위스 은행그룹 율리우스 베어(Julius Baer)의 원본자료들을 위키리크스가 인터넷에 올리고 은행 측이 이를 불법으로 고발한 2008년에 들어서 분명해졌다. 2009년에 우리는 위키리크스가 독일연방정보국 에른스트 우를라우(Ernst Uhrlau) 국장과 교환한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위키리크스보다 연방정보국에 훨씬 더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Daniel Domscheit-Berg: 2010년 늦가을에 사퇴)와 접촉하였으며, 그 이후 줄곧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p. 7)
 
* 책 속의 책 : 쉴렛 트레이퍼스 <언더그라운드>, 스티븐 레비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 2011년 4월 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